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필버거 Feb 12. 2023

당신들의 발견, 나의 구독

11시 예약. 11시 도착. 미용실 원장은 '빠마'를 말고 있었다. 어라?

사람 하는 일이 분 단위로 딱 떨어지게 시작하고 끝내기 힘들다. '오셨어요''미안해요' 중간쯤의 어중간한 미소를 얼굴에 얹은 채 쳐다보는 원장에게 나도 씩 웃으며 소파에 앉았다. 1초도 안 걸린 무언의 대화. 역시 단골.

나는 관대하다. 느긋한 일요일 오전이 주는 마음의 여유가 있으니까. 화 낼 일도 없고 이해 못 할 일도 없다.

어정쩡한 빈 시간이 생겼다. 이럴 땐 브런치지.


앱을 열고 '발견' 카테고리로 들어갔다. 브런치 어쩌고 저쩌고 욕하고 탓하거나 고마워하는 제목의 글들이 많았고, 출간 소식과 직장인 에세이 류의 제목들보인다. 브런치 알고리즘의 취향이다. 브런치에 관한 글이 유독 많아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시기 탓일까.

브런치를 칭송하는 사람, 브런치에 실망한 사람의 글 제목을 보며 슬쩍 웃음이 났다.

작가 선정에 환호. 다음 메인 노출과 조회수에 서프라이즈. 출간의 기대. 지지부진함에 대한 실망. 앱 개편의 당혹. 지루한 제자리걸음의 환멸. 라이프사이클처럼 브런치 작가가 되고 글을 쓰다 보면 누구나 겪는 주기적 현상인 것 같다. 글쓰기로 빨리 무엇을 이루고 싶은 작가들의 조급증 증상일 수도 있겠.

대부분의 글을 건너뛰다가 그래도 몇 개는 제목에 끌려 터치를 하지만 한두 줄 읽고 빠져나오는 글이 태반이다. 내게는 별로인 글이라도 브런치 메인의 힘인지 작가의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라이킷과 구독자 숫자는 어마무시하다.


'구독' 카테고리로 들어갔다. 낯익은 필명들이 보인다. 그들의 다양한 글이 줄지어 서있다. 하나씩 읽었다. 오래 구독한 작가의 글은 제목만 봐도 내용이 살짝 짐작된다. 구독하며 그이의 삶을 병아리 눈꼽만큼이나마 알게 되었다는 뜻이리라. 책, 영화, 독립서점, 이웃, 가족을 다룬 다채로운 글들이 반갑다. 라이킷과 구독자 수는 메인에 노출된 글 못 미쳐도 품질은 훨씬 빛난다고 느낀다. 평온한 그이들의 글은 한가롭기까지 하다. 내가 좋아서 구독을 눌렀으니 내 취향 기준임은 당연하겠고, 독자로 오래 살아온 내 이력으로 봐도 좋은 글들이다.


글 몇 개 읽지 못한 것 같은데, 원장이 '앉으세요' 한다. 어슬렁 파카를 벗고 자리에 앉아 '늘 깎던 대로요' 다. 원장의 실력을 아니까, 믿으니까.

머리를 맡기고 브런치에서 내가 구독하는 작가들을 생각했다. 작은 텃밭을 둘러보며 낮은 담장 너머로 다정한 이웃들과 인사를 한 기분이다.

내 글쓰기가 다급하지 않고 느긋해서 그럴 게다. 그저 좋아서 쓰고, 읽으며 좋고, 이런저런 글쓰기 형태를 경험하며 성장하는 느낌이 좋다.


내 글쓰기의 지향은 맥연회수다.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매지 않아도, 문득 돌아보면 인파 속에 그녀가 보이듯이.    



매거진의 이전글 일종의 길티 플레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