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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버거 Aug 22. 2023

상추 빌런 통이

지난주였다. 삼겹살 친구 상추 사러 마트에 갔다가 기함하는 줄 알았다. 그리 크지 않은 비닐봉지 한 봉에 3,980원. 그날은 도리없이 그 값에 사 먹었고, 며칠 후 다시 간 마트에서 본 가격은 오천 원에 육박하고 있었다. 태풍이 원인이라는  알겠는데, 그래도 그렇지란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상추가 스무 장쯤 들었나? 장 당 얼만가, 삼겹살 한 쌈 단가는 얼마일까 계산하다가 말았다. 소나기는 피하고 보랬다고 한동안 안 먹으면 되지, 뭐.


며칠 전 팔공산에 공연 보러 같이 가자고 친한 후배를 꼬시고 있었다. 자질구레한 일이 많아 못 간다고 했다. 그 체크 리스트에 상추 모종 사기가 있다고 지나가듯 말했다. 고뤠? 공장 뒤뜰 텃밭이 쑥대밭 된 지 오랜데, 사서 심어볼까?

-어디서 파노?

-형님 집 근천 데요.

-오잉?


상추 씨를 달라니까 분주히 뭔가를 만들고 있던 주인아주머니가 바쁜 손을 멈추고 흘끗 본다. 싹 틔우는 거 힘들어요, 모종으로 가져가세요, 한다. 씨 뿌리고 물 주면 금방 자라는 거 아닙니꺼? 했다가 주인의 웃음을 샀다. 옆에 있던 주부 고객크게 웃었다.


7개씩 3줄짜리를 샀다. 상추 모종 21개를 뒷좌석에 싣고 팔공산을 갔고, 몽환적인 솔숲에서 환장할 모기와 꿉꿉한 더위와 싸우며 공연을 봤고, 집에 서 맥주 세 캔을 마시고 잤다.    


다음날, 공장 뒤뜰에 상추를 심었다. 출근해서 시원할 때 해야지 해놓고 귀찮아서 몇 시간을 개기다가 슬슬 더워지는 열 시 반에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서 심었다. 오와 열을 맞추려고 제일 시들하고 파리 작은 모종 개는 버렸다.

꼴랑 10분 남짓, 모종 스무 개 심는데 땀이 뽀작뽀작 났다.

아침에 서늘했는데, 일찍 할걸... 맨날, 뭘 해도 이런다.

그래도 생산적인 농사 활동을 했다고 땀도 솟고 보람도 살짝 솟았다.


심었으니 자랑질을 해야지. 가족 단톡방을 시작으로 서너 군데 SNS에 올렸다.

니도 늙었네, 나이 들었네, 반응이 주를 이룬다. 그중 댓글 하나가 눈에 쑥 들어왔다.  

고양이가 다 뜯어먹을 거란다. 아, 맞네. 그 생각을 못했다. 고양이들도 풀을 뜯는다. 그루밍할 때 체내에 들어온 털 배출을 위해 그런다고 들었다.

공장에서 키우는 냥이 두 녀석 단속은 어쩌나.

모종 옆에 걱정도 같이 심었다.



다음 날 아침, 담배 피울 겸 물도 줄 겸 공장 뒤뜰 문을 열고 나가는데, 호기심 천국 냥 통이가 쏜살같이 따라 나왔다. 뒤뜰에는 잡초 포함, 온갖 풀들이 많아서 상추 모종까진 입을 대지 않으리란 계산을 했었다.


새것에 대한 관심일까? 못 맡던 냄새가 난 걸까? 늘 씹던 껌 같은 풀 나부랭이는 다 제쳐놓고 텃밭(?) 테두리 벽돌에 앞발을 터덕 걸치고 코를 박고 킁킁 거린다.

-어... 어...

입 대는 거 잠깐이겠다 싶었다.

-야 인마!

냅다 소리를 치고 달려가서 덥석 안아 올려 내가 앉아 쉬는 파란 플라스틱 의자 앞에 내려놓고 야단을 쳤다.

-니가, 어이, 그라마 되겠나, 엉? 그 어린것들을!


핀잔 먹는 표정 맞나? 눈 모양이 역삼각형이다. 신나게 놀다가 장난감 뺏긴 아기 표정 같다.

긁어 부스럼이랄까. 암튼 일이 늘었다.

물도 줘야 하고.

감시도 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수확까지 무사하기만 바랄 뿐.

뜯어먹혀도 나한테 뜯어 먹히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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