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디카페인 아이스 아메리카노 빅 사이즈를 한 잔 사 마셨다. 아침밥 대용이다. 이런 온도와 습도라면 산길을 걸어도 땀을 많이 흘리지 않겠다 싶게 서늘한 가을 아침이다. 며칠 후엔 아아 대신 뜨아를 마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의 기온. 상쾌하다.
공장 주차장으로 들어가는데 저짬치에서 어제 외박한 회사냥이 '통이'가 차소리를 듣고 쫓아온다. 자물쇠에 열쇠를 꽂고 철컥, 좌르륵 문을 여니 집순이냥 '쁜이'(안 예쁜 아이인데, 예뻐지라고 지은 이름이 이쁜이)가 입구에 오도마니 앉은 채 냐~냐아~ 반긴다.
야외활동 하기 딱 좋은 계절인데도 운동은 역시 단박에 시작하기 어렵다. 쾌청한 가을 하늘을 몇 번 올려다 보고서야 겨우 챙모자를 챙겨 쓰고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틀면서 산으로 향했다. 산책을 하고 나면 개운한 기분에 역시, 길 나서길 잘했다 할 걸 잘 알면서도 매번 이런다.
산책길 중간 즈음 고갯길에서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외계인을 생각했다. 인간은 아주 먼 옛날 지구에 도착한 외계인이 필요한 광물을 캐기 위해 만든 노예라는 썰이 떠올랐다.
우리 인간은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면 건강해진다. 간헐적 단식, 규칙적 운동, 비타민 D 광합성. 노예로 딱이지 않나?
게다가 하기 싫은 일도, 하다 보면 성취감과 보람 같은 게 퐁퐁 솟는다. 단순 반복 노동은 또 어떤가. 무슨 일이든 오래 하면 누구나 생활의 달인이 된다. 대충 손으로 딱 쥐어도 정확히 50그램이 된다거나,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물건을 휙휙 던져도 제자리에 딱딱 들어가는 일 같은 것들.
지구라는 푸른 행성에 도착해 보니 필요한 자원은 있는데 인력이 부족했을 것이다. 우주선에 동족과 장비를 잔뜩 싣고 오는 건 비효율적이니까. 초원을 살피니 외계인 자신들과 비슷한 외모에 이족 보행을 하고 도구를 쓰는 털이 많은 동물이 보인다. 잡아서 DNA에 자신들의 진화한 DNA 일부를 집어넣는다. 지능은 명령을 알아들을 만큼만 허용한다. 반란을 일으키면 귀찮아지니까. 기능은 위에 쓴 대로 설계했으리라.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면 망가지긴커녕 건강하게 작동하게끔. 채굴 같은 힘든 노동을 시켜도 반항은 고사하고 보람과 성취감, 자신감 같은 것들이 생성되게 만들었을 게다. 외계인 유전공학자는 아마도 큰 상을 받지 않았을까.
운동이 힘드니 별 쓸데없는 생각을 다한다.
가만있자, 이걸 소재로 SF 단편 하나 써볼까.
비슷한 소재의 책들이 이미 나와있긴 하다.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 (자카리아 시친 저), 별의 계승자 (제임스 호건 저) 같은 책들.
영화 프로메테우스 (리들리 스콧 감독), 배틀필드 (로저 크리스티안 감독) 세계관도 비슷하네.
어떻게 변주하면 더 재밌게, 아주 새롭게 보이게끔 쓸 수 있을까?
잡생각 잔뜩하며 걷다보니 어느덧 회사다.
아, 개운해.
나, 참 잘했어요. 칭찬해.
노예의 육신, 맞는데?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