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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가분

by 수필버거

버리는 것도 일이다. 벤딩도 풀지 않은 골판 박스를 고물상에 파지로 팔았다. 3열 시트 접은 카니발로 네 번, 레이 벤으로 한 번 실어 날랐다. 오만 원 받았다. 아까움보다 후련함이 컸다. 아깝다고 이고 지고 산 세월이 아깝다. 언젠가 쓸 거라고, 어떻게든 쓰일 거라고, 때 되면 아쉬울 거라고 믿었는데, 망상이었다.


시절인연 (詩節因緣)이 박정한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어찌 사람 인연이 짧은 한 시절로 퉁 칠만큼 가볍단 말인가, 생각했었다. 젊은 날 먹던 음식이, 듣던 음악이 그리운 건 그 시절의 자신이 그리운 거라고 했다. 관계란, 거울에 비친 내 조각을 보는 것과 같다. 한 시절이라도 즐겁게 지냈으면 됐다. 그것조차 쉬운 일 아니다.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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