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여다볼까, 내다볼까

브런치 오디세이아 (아저씨의 글쓰기 분투기)

by 수필버거

메일 도착 알림이 울리고. 흠칫. 그리고 멈칫.

'지금 볼까? 나중에 볼까.' 2초쯤 고민을 했다.

'못 참겠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도착한 메일 제목이었다. 지난 6월.

'에이, 씨....' 사람이 너무 좋아도 이런 혼잣말이 나온다.

'아, 감사합니다!' 라거나 '신이시여~' 이런 건 드라마에서나 나온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이고. 이런! '작가님'이란다.

한 이틀 정도 시골 마을 입구에 누구네 집 자식 사법고시 합격 현수막 걸듯이 동네방네 자랑질을 했다.

그것도 이틀하고 나니 시들시들. 더 이상 자랑할 데도 없다.

이젠 써야 한다. 작가라고 불러주시는데. 써야지! 오예!


19일. 메일 확인하고 첫 글을 발행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왜일까?

3일. 두 번째 글과 첫 글 사이의 간격이다. 이거는 비교적 짧았다. 첫 글 후 마음이 좀 급해졌었다. 글의 수준이나 질은 어떨지 몰라도 발행 글의 숫자는 좀 늘려놔야지 했다.

그리고는 8일간 또 못 썼다. 8일 후 겨우겨우 세 번째 글을 발행하고 네 번째 글이 되는 오늘 이 글을 쓸 때까지 또 16일이 흘렀다.

왜일까?


작가 선정이 되기 전까지는 브런치를 드문드문 억지로 읽었다. 어떤 이는 너무 잘 써서 질투가 났고, 누군가의 글은 '나'보다 못해 보이는데도 작가라서 화가 났었다.

독자의 시각이 아닌 시기심 많은 단골 탈락자의 시선으로 읽으니 편할 리가 없다. 읽다가 앱을 꺼버리기도 했고, 한참 후에 다시 찔끔 읽다가 또 말다가를 반복했다.

통과 후에서야 비로소 편안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나도 작가다 하는 안도감? 그런데 그게 중독 수준으로 갔다.

추천 글들을 읽다가 계속 구독을 누른다. 글이 너무 좋으니까. 포털 다음을 보다가도 브런치 글을 만나면 반갑게 읽고 파도타기로 또 다른 작가의 글로 흘러들어 간다.


처음 한 동안은 기가 죽어서 못 썼다. 작가들이 너무 잘 써서. 어떤 작가가 쓴 글은 모조리 찾아 읽기도 했다. 필사도 해봤다. 부러워서, 그렇게 잘 쓰고 싶어서.

브런치 메인의 추천 페이지를 다 읽으면 깊게 파고들기도 했다. 특정 주제로 검색도 하고, 구독 작가의 구독 작가 글을 읽기도 했다.

재능 있는 작가와 좋은 글이 차고도 넘친다.


어느 순간이 되니까 내 기준에 못 미치거나 취향과 다른 글들도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렇지! 모두가 좋은 작가이거나 훌륭한 글 일수야 없지!' 했다.

이제 슬슬 다시 써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조금 안심과 안도를 했으니까.

쓰고자 하는 스스로의 욕망이 나를 브런치로 데려왔으니 계속 타인의 글과 생각만 들여다보고 있을 수는 없다.


오래전에 읽은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 노트'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막상 차를 타보고 놀랐다. 포르셰에 탔더니 포르셰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신호 대기하는 동안에 빌딩 쇼윈도에 내가 탄 포르셰가 비치는 것을 보고서야, “ 역시 포르셰는 멋있구나” 하고 기뻐했을 정도다.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어서 친구를 불러냈다. 포르셰의 열쇠를 건네면서 부탁했다.

“이 차로 고속도로를 달려줘.”

나는 택시를 타고 그 뒤를 쫓아가며 내 포르셰가 달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택시 조수석에 앉아서 “좋죠? 저 포르셰, 내 거요”라고 했더니, 기사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왜 직접 안 타십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바보군요, 내가 타면 포르셰가 안 보이잖아요.” --- p.122]


브런치가 되었던 등단이 되었던 작가라는 호칭이 일단 좋았다. 뭔가 인정받은 기분. 인증받은 느낌.

다케시가 개그맨으로 성공한 후 가장 먼저 포르셰를 산 것도 스스로의 성공을 확인하는 방법이었겠지.


나 : 나 브런치 작가 됐다!

친구 : 축하한다. 근데 브런치가 머꼬?

나 : 브런치는 말이다........ 블라블라........ 됐다. 고마하자.


한은형 작가의 말처럼 그냥 작가라는 상태에 도달한 것뿐이었다.

쓰면 작가. 안 쓰면 여전히 독자.


그 후 다케시는 어떻게 되었을까? 차를 바꿨을까? 글쎄....

20여 년 전에 지인의 포르셰를 잠시 운전해 본 경험으로 유추해 보면 차를 바꿨을 것 같다.

스포츠카는 불편을 감수하고 운전하는 차더라. 기사를 둘 수도 없는.

타인이 운전하는 나의 포르셰는 의미가 없다.

차는 내 목적지로 가는 수단이다. 드라이빙하는 동안 경치를 보고 즐겨야 한다. 악천후도 견뎌야 하고.

작가라는 타이틀도 그렇겠지? 나의 꿈에 다가가는 도구다. 쓰면서 성장하겠지?


오늘 이 네 번째 브런치 발행 글로 무슨 차가 되었던 내가 직접 운전하는 계기로 삼기로 했다.

독자의 눈에는 포르셰일 수도 봉고트럭일 수도 있다.

내 차가 무엇일지는 읽어 주는 사람들이 판단할 영역이다.


어느 날은 람보르기니라고 믿으며 또 어느 날은 경차라고 생각하며 내 스타일대로 드라이빙한다.

쓰는 것보다 읽으며 살아온 시간이 기니까, 여전히 좋은 작가들의 생각은 계속 들여다볼 것이다.

그래도 이제 운전석에 앉을 수 있는 '상태'에 도달했으니 이 기회를 묻어 둘 필요는 없다.

내 똥차의 시동을 건다. 운전석에 앉아서 핸들을 쥔다.

앞에 길이 보이고, 옆으론 풍경이 보인다. 살며시 액셀을 밟는다. 언젠가는 이 차가 포르셰가 될 거라고 믿으며.


읽으시는 분들이 원하는 '차'를 보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가끔 쇼윈도가 되어서 내가 운전하는 모습을 비춰주면 좋겠다.

언젠가 포르셰를 운전하는 내가 비치면 깜짝 놀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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