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했어'라고 눈으로 말했다.

보고 읽고 생각한다. #라라랜드

by 수필버거

뒤늦게 라라 랜드를 봤다.

뮤지컬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대사 하다가 갑자기 노래하고 춤추고 하는 게 영 와 닿지가 않았다. 대사로 하지 왜 굳이.... 여태껏 뮤지컬을 대하는 나의 생각이었다.

라이언 고슬링도 선호하는 배우가 아니다. 연기력이 뛰어나서 엄지 척할만한 그의 출연작을 못 만나서 일까. 내가 선호하는 선악이 공존하는 배우상의 얼굴도 아니다.

엠마 스톤과 셔젤 감독에 대한 호감은 있지만 내 편견을 꺾고 극장으로 갈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저런 뮤지컬 영화들 중 하나쯤으로 치부하고 젖혀 둔 영화였다.


JTBC의 방구석 1열을 좋아한다. 아내가 본방사수, 재방송까지 열심히 본다.

덩달아 보다가 나도 그들의 수다에 반해버렸다.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수다는 늘 즐겁다.

그리고 탁월한 중매쟁이다. 설명과 해석만으로 어떤 사람을 보고 싶게 만든다.

'한 번 볼까?'


일과가 끝나고 왓챠에 접속했다. 모두가 퇴근한 회사의 내 방에서 혼자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한다.

극장보다는 많이 못하지만 모니터로 보는 영화가 태블릿이나 폰보다는 집중이 잘 된다.

잠시 멈추고 딴짓을 할 수 있는 것도 좋다.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글감 메모를 한다거나 멈춤 하고 궁금한 부분 검색도 하고.

라라 랜드는 딱 1번 멈추고 푹 빠져서 봤다.

내 편견은 바사삭. 이제부터 좋은 뮤지컬 영화를 찾아봐야겠다. 세상 간사한 게 사람 마음이다


영화가 끝나고. 잠시 사무실 밖에서 바람 쏘이고 유튜브로 OST를 찾아서 틀었다. 음악이 다 좋다.

영화는 참 좋은데 마음은 무겁다. 영화라는 환상이 막을 내려서일까.

성장은 통증을 수반할 터인데. 도대체 사람의 성장은 언제 완성이 돼서 마음이 평온해지는 걸까?

낮보다는 견딜만한 여름 바람 한 줄기를 맞으며 생각을 했다.


골디락스. 라라 랜드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딱 이 표현이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세바스찬과 미아의 성장 스토리이다.

사랑도 한다. 그런데도 영화는 과하지 않다. 뜨겁지 않다. 베베 꼬지도 않는다.

한 해 두 해 이 세상에 머무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책 조차도 과한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재능 없는 코미디언의 오버액션을 보는 듯 불편하고, 소화할 수 없는 슬픈 노래를 부르는 어린 가수의 감정과잉이 듣기 괴로운 것처럼.

라라 랜드는 적절했고 적당했다.

다 담았지만 흥분하지 않는다.


셉과 미아는 각자의 꿈을 향해 가망 없어 보이는 노력을 한다.

미래를 보장받은 젊음은 없다.

정통 재즈를 지키고 싶어서 재즈바를 오픈하는 꿈을 가진 셉. 배우로 성공하고 싶은 미아.

그리고 둘은 사랑을 한다.

윤종신 씨의 해석은 '드라마로는 진부하지만, 뮤지컬이라서 성공한 영화'였지만, 나는 '진부하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을까' 하며 셉과 미아를 공감했다.

이들의 사랑이 좋았던 건 각자가 상대의 첫 팬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되는 지점이다.

셉의 모든 것인 재즈를 사랑하게 되는 미아. 미아의 꿈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셉.


모든 사랑이 그렇듯이 이들도 사랑하고 엇갈리고 오해하고 실망한다.

그런 장면들을 영화는 가볍게 흘러가듯이 보여줘서 좋다. 꼭 구구절절해야 공감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이들의 사랑이 좋았던 또 하나는 상대의 인생에 티핑포인트를 만들어 주는 부분이다.

셉은 미아가 좋아할 것으로 믿고 퓨전 재즈 밴드의 '정규직' 피아니스트가 된다.

추구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타협을 하는 과정이다. 원치 않는 음악을 하는 것은 힘들다.

그래도 미아를 위한 길이라 믿고 견딘다.

미아는 셉의 격려로 스스로 각본을 쓴 일인극을 무대에 올린다.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는 오디션은 이제 그만!

꿈의 첫 고개에서 성공을 하는 건 기적 중의 기적이다.

당연한 듯 실패를 한다.

이제 의심하며 견디는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기약 없는 다음 기회를 아파하며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어디쯤에 있을까?" 미아가 묻는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 셉이 답한다.

나에게는 영화 전체를 요약하는 대사로 들렸다.

청춘은 늘 불안하고 먹먹하다.


미래를 보장받은 젊음은 없지만.

열정이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지만.

꿈이 있으면 한 걸음씩 내디뎌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는지 조차도 확신할 수 없지만 가야만 한다.

랜드마크 하나 없는 사막 한가운데처럼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 가고 있는 이 방향이 맞는지도 확인할 수 없지만. 그래도 뭐라도 해야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하고 1mm라도 성장을 한다.


어릴 때 나는 인생은 당연히 점진적으로 나아지는 것이고, 때가 되면 모든 것이 안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막연한 기대였다는 사실만 살면서 점점 선명해지지만.

청년도 중년도 항상 불안하고 확인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더라. 확신은 신기루 같기만 하다.

어디쯤 서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목적지로 가는 뚜렷한 길 위를 있다는 확신은 도대체 누가, 언제쯤 가질 수 있을까?

길이, 목적지가, 있기는 한 건지.

그나마 젊으면 시간이라는 우군이라도 있을 텐데.


여배우로 성공한 미아는 남편과 함께 우연히 들른 큰 재즈클럽에서 그곳 오너인 셉을 본다.

그렇다.

이 둘은 각자의 꿈을 이뤘다. 벌써 종착지 일리는 없겠지만. 더 나아갈 수 있는 단계에는 도달했다.

멀리서도 미아를 한눈에 알아본 셉은 피아노를 친다. 추억이 깃든 'City of stars'

둘의 사랑이 지속되었다면 함께 했을지도 모르는 장면들이 회상씬처럼 흐른다.

간결하고 아련하다.


현실의 미아는 남편과 함께 클럽을 나선다.

문 앞에서 잠시 뒤를 돌아보는 미아. 셉도 피아노 치며 떠나는 미아를 바라본다.

서로의 노고를 아는 사람들의 옅은 미소와 담담한 눈빛.

서로의 어깨를 다독여주는 느낌으로 마음에 남는다.


인생을 의인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시간의 마지막 즈음에 '내'가 '내 인생'과 주고받고 싶은 눈빛과 미소다.


"어지러운 시간을 잘 통과했다."라고.

"그 길이 옳았어."라고 말해주면서.


잔상이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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