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잘 통하는 사람은 귀하다. 소중해서 귀하고 드물어서 귀하다.
귀한 사람을 새로 만나는 기회는 더 귀하다.
흔치 않음을, 자라면서 배웠고 살면서 느꼈다. 어쩌다가 귀한 사람을 만나면 반가운데 불안하다. 놓칠까 봐.
알아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짧은 시간의 몇 마디 말과 주의 깊은 관찰이면 높은 확률로 맞춘다.
당연히 100%는 아니다. 헛다리를 짚기도 한다. 그래도 맞출 확률이 높으니 지레짐작으로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늘 서슴없이 먼저 다가간다. 아니, 다가갔었다. 혼자 훈련도 했고, 살면서 필요에 의해 다듬어지기도 했다.
어느새 태도로 굳어졌다.
다가감은 내 선택이다. 그러면 상대도 선택을 한다. 내미는 내 손을 맞잡을 수도, 뿌리칠 수도 있다.
서슴없이 다가갔다가 서슴없는 거절을 경험하기도 한다. 참 당연하다.
거절은 의견이다. 답이 아니다. 맞고 틀리고가 없다는 뜻이다. 의견을 받아들이기는 쉽다. 다치지 않는다.
가만히 내 속을 들여다본다. 거절조차 자연스레 받아들였던 원천은 뭐였을까?
자신감? 자존감? 딱 들어맞는 단어를 찾기는 어렵다. 그래도 내가 가진 무언가로 상처받지 않고 잘 살아왔다. 어느 시기까지는.
살다 보면 어렵고 힘든 시기가 있다. 누구나 그런 듯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다.
아무튼 나는 겪었다. 곤궁한 시절에는 내 발등만 보인다는 것을 겪으며 배웠다.
주변을 살피지 못한다. 나하나도 버거우니 누구를 챙기거나 담을 수 없다.
결국 외로워진다. 그리고 그 외로움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된다. 그래서 더 슬프다.
시간은 다시 구름을 걷어간다. 모처럼의 맑은 햇살 아래서 겨우 나를 다시 본다.
상처도 보이고 흉터도 보이고 홀로 서 있는 내 그림자도 보인다.
어라? 혼자구나. 내가.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아주 가끔 결이 맞는 귀한 사람을 발견한다.
반갑다. 달려간다. 상대의 손바닥이 보인다. 반기는 손이 아니다. 멈추라는 표현 같다.
그리고 멈칫한 내게 말한다. 그러면 안 된다고.
"당신이 상처를 받을 거야."라고.
"상대가 거절하면 다칠 거야."라고.
다치게 하거나 다치지 않으려면 차라리 미지근하게 가만있으라고.
시간을 들여서 찬찬히 주위를 살폈다. 그제야 보인다. 다들 움츠리고 있는 모습이.
내가 청춘이 아니듯이 내 또래들도 푸른 청춘이 아니다.
이제 상처에 대한 내성이 줄었다. 회복도 예전보다 더디다.
그러면 안 다쳐야 한다. 상대가 여하한 이유로 나를 거부하거나 떠나도, 내가 얼른 잊고 추스를 수 있는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안전하다. 일정 거리 유지.
'나도 그래야 하나... 그래 볼까...' 그게 맞아 보였다.
과연 맞을까?
나는 어떤 사람을 좋아했을까? 며칠 동안 생각했다.
얼굴만 겨우 알아볼 거리에서부터 환한 미소와 함께 성큼성큼 걸어오는 친구를 보면 기분이 일순 좋아진다.
칭찬으로 힘을 북돋워 주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스르륵 열린다.
징징거리는 내 얘기를 들어주다가도 칭얼거림의 뿌리를 읽어주는 이를 만나면 춤이라도 추고 싶다.
무엇보다 한결같은 사람이 참 좋다.
내가 그렇다면 남들도 그럴 것이다.
당신은 왜 그렇지 못하냐고, 그렇지 않냐고 따질 시간이 없다.
없거나 귀하면 내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게 빠르다. 예전에 그랬었다고 추정되는 '나'처럼.
아... 그래... 내가 잃어버린 것은 그런 여유였군. 타인을 위한 마음의 공간.
무엇을 잃었는지를 알았으니 되찾는 것은 시간문제일 거라고 믿는다.
다치기 싫어서 놓치긴 싫다.
다칠까 봐 감추기도 싫다.
그럴 시간에 내 마음속 여유공간을 낑낑거리며 넓혀 놓겠다.
결이 맞는 동안(그 시간이 얼마라도)만큼은 나는 친구가 있을 것이고 행복하겠지. 뭐....
또 그렇게 성큼 다가가고, 함께 즐거워하고, 변함없이 내 자리를 지키겠다.
그게 마음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