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게 아등바등 산다.
사내아이 셋을 키우니 일찌감치 일인일닭의 시대다.
호식이가 참 좋다. 두 마리가 세트라서.
한 명당 한 마리씩. 남는 한 마리는 우리 부부 몫. 합이 네 마리!
형제가 많으니 밥상도 경쟁터다. 그렇게 자란 우리 집 삼 형제는 언제나 맛있는 부분부터 먹는다.
맛난 부위를 아껴뒀다가 맨 마지막에 먹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아이들이 닭을 입에 욱여넣다가 흘끗 아내와 내 몫의 닭을 쳐다본다.
'흠칫.'
"닭다리 더 무라." 내가 선수를 친다.
이 놈들이 양심은 있네. 우리 닭은 다리를 잃고 가슴이 늘었다.
좀 자라더니 가끔 묻는다.
"닭다리 드실래요?" 우리 아이가 염치가 생겼어요.
"아이다. 너그 무라. 난 퍽퍽 살 좋아한다." 내가 답한다.
"난 목이 좋다." 아내가 말한다.
우리 닭은 두 다리를 다 잃고 가슴살만 쌓인다.
가끔 상상한다.
우리 아들놈이 장가를 가고, 애를 낳고, 어느 날 밤에 치킨을 시켜먹겠지?
내 아들 : 닭다리 무라.
아들의 아들 : 아빠 드세요.
내 아들 : 아이다. 난 닭다리가 싫다. (잠시 창 밖 응시, 눈가가 촉촉, 티슈 한 장 스윽)
내 엄마는 짬뽕을 좋아하셨다. 짜장면보다. 취향이다.
난 퍽퍽 살을 좋아한다. 닭다리보다. 입맛이다.
퍽퍽 살에 따끈한 흰쌀밥 한 숟갈과 아삭한 김치 한 조각을 곁들여 먹는 것을 좋아한다.
아내는 목살을 좋아한다. 목살의 쫀득함을 좋아한다.
내가 오래 봐서 안다. 닭다리를 싫어하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우리 집은 그렇다.
세상 사람 모두가 닭다리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내 입맛을 자세히 설명할까 하다가 입을 닫았다.
닭다리의 추억은 네 것이다. 느낀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새기렴.
너의 기억과 추억을 믿어라. 부모님이 애써 양보한 걸로 기억한들 뭐가 나쁘겠니.
내가 좋아하는 퍽퍽 살도 아낌없이 줄 수 있을 만큼 너희를 사랑하는 것은 진실이다.
어젯밤. 가슴살 양보를 시도한 밤.
나 : 가슴살 물래?
아들들 : 싫어요.
나는 퍽퍽 살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곁들여 캔맥주 한 모금.
캬~시원하다!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