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잘하지 못하는 가수, 연기를 못하는 배우, 재미없는 개그맨을 보면 안쓰럽다.
관객의 반응이 차가울수록 땀을 삐질거리며 준비해 온 것들을 더 열심히 한다. 그렇게 해도 객석의 리액션이 없으면 오버를 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냉정하게 평가를 하거나 욕도 하며 혀를 찼었다. 지금은 그러지 못한다.
티브이를 보다가 외면하는 경우도 있다. 조마조마하고 애처로워서 못 보겠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 보기가 불편하다.
요즘 나의 현상태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그렇다. 스스로를 보는 것이라서 안쓰럽고 애처롭다기보다는 화가 난다고 해야겠다.
되고자 했던 모습이 되지 못했고 이르고 싶었던 곳에 닿지 못했다. 나의 어중간한 재능과 실력이 못마땅하다.
뭐든 직접 해보지 않은 일은 쉬워 보인다. 나도 그랬다. 지금 하는 내 일을 막 시작할 그때는, 과정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고 목적지는 가까워 보였었다.
더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나만큼은 어중간하지 않고 특출 난 줄 착각했었다.
재능이던 소질이던 아예 없으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이 어중간함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면 어중간한 재능을 가진 내가 열심히 쫓아다닌 그 세월은 시간낭비였을까?
지금의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나는 잘못 산 것일까?
우리가 끝까지 가질 것은 기억뿐이다. 돈도 아니고 주식도 아니다.
강렬한 기억에는 희로애락이라는 감정의 분류표가 붙어 있고 그 크기가 함께 내 속에 입력되어있다.
잘 살았건 못 살았건 그 시간 동안 나는 희로애락을 느꼈겠고 크고 작은 기억으로 저장되어있겠지.
좋았던 날도 있었을 테고 슬펐던 날도 있었을 테다.
시간의 고마움은 미칠 만큼의 기쁨도 죽을뻔한 슬픔도, 높이를 점점 고르게 만들고 크기는 비슷하게 깎고 채운다는 점이다.
삶에서 지루한 부분을 들어내고 남는 이야기가 드라마라고 했다. 히치콕 감독의 말이다.
누구나 한 줌의 이야기만 남지 않을까? 먹고, 자고, 싸고, 만나는 반복되는 시간들을 빼고 남는 스토리(드라마)가 조금 더 재밌을 수도 조금 더 슬플 수는 있겠지만 다 거기서 거기 아닐까?
내가 지금 내 일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은 분명히 처음 시작하던 그때보다 나아졌을게다.
작게나마 성장을 했다고 믿는다. 경험을 통해서 조금은 나아졌겠다. 그 시간과 경험 속에서 기뻐하고 슬퍼하며 쌓았다.
나는 내 삶의 시간을 통과했고 성장했다.
누구의 경험과 성장이 더 좋은가에 대한 답은 없다.
각자의 몫이다. 손 끝이 바늘에 찔리는 아픔조차도 설명은 할 수 있지만 나눌 수는 없으니까.
오롯이 나만의 것이다.
그래. 낭비는 없다. 아무도 낭비하지 않았다. 그렇게 믿는다.
1 미리 건 1 미터 건 성장을 하니까. 나도, 너도.
시간이 감정을 비슷하게 만들듯이 재능의 차이도 비슷비슷하게 만든다.
일을 해도 잠을 자도 영화를 보고 술을 마셔도, 삶에서 낭비란 없다. 특별해도, 어중간해도.
이제 티브이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봐야겠다. 우리 모두 성장하는 사람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