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발로는 마라톤을 할 수 없다.

브런치 오디세이아 (아저씨의 글쓰기 분투기)

by 수필버거


'글을 씁니다.'

'글을 쓴다.'

느낌이 완연히 다르다.


'글을 씁니다'는 독자가 먼저 보인다.

많이 쓰지도 자주 쓰지도 않지만 나는 '입니다'체로 썼었다. 약간 긴장감 있게, 상대를 의식하며 썼다. 배려로 볼 수도 있고, 읽는 사람의 눈치를 봤다고 할 수도 있다. 쓰는 일이 조심스러웠다. 나는 그랬다.

욕심이 무거워서 자주 쓰지 못했다.


'글을 쓴다'는 쓰는 사람이 먼저 보인다. 얼마 전부터 '이다'체로 쓴다. 쓰는 행위가 가볍게 느껴진다. 쓰는 일이 읽히는 일보다 앞에 선다. 글도 조금은 가벼워진 듯하고 긴장도 풀린다. 쓰는 빈도가 늘었다.


'가볍다'가 '나쁘다'일리는 없다. 그래도 '가볍다'는 가볍게 느껴진다.

묵직하고 울림 있는 글은 나도 좋다. 쓸 때마다 그런 글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매번 그런 글을 쓸 수는 없다. 포기하면 편하다. 편하니 자주 쓴다.

많이 쓰다 보면 좋은 글도 나올터이다.

가볍고 짧은 글도 쓰고 나면 기분이 좋다. 뭔가를 했으니까. 뭐라도 지었으니까.


몇 달 동안 내 일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방향을 틀어야 하고 목표도 재설정을 해야 하는데 잘 되지 않았다.

뭔가 큰 것을 추구해야 할 것 같았고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야 될 것 같았다.

잘 되지 않는 것을 계속 짊어지고 있으니 마음도 무거웠다.

무거워서 외면도 하고 회피도 했다.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매 순간이 아름답고 행복하다.

함께 하는 믹스 커피 한 잔도, 같이 걷는 한 정거장 산책도.

그 순간순간이 기적 같고 뿌듯하며 명치가 울렁인다.

전화 한 통만 와도 입이 찢어지고, 만나러 나가는 발걸음은 새털 같다.


처음 시작했던 그때 내가 얼마나 이 사업을 사랑했었던가를 기억해내고서야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권태기의 터널을 벗어난 느낌. 다시 사랑이 시작된 느낌.

마음이 찰랑찰랑 하니 가까운 작은 목표부터 보이고, 해야 할 일이 일목요연해지고, 정리된 일은 가볍게 쪼개진다.

일이 마냥 매일매일 재밌고 즐겁지는 않지만, 더는 무겁다고 피하거나 미루지 않게 돼서 좋다.

아침이 가볍다.


글쓰기도 평생 하고 싶은 일이다. 오랫동안 쓰는 사람이고 싶다.

애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자꾸 좋은 글 욕심을 냈다.

지레 읽는 사람들 눈치를 봤고, 잘 써지지 않으니 최대치로 미뤘다.

그냥 쓰는 동안 좋으면 충분할 것을. 가볍게 자주 즐기면 될 것을.

그래서 지금 '글을 쓴다.'


일도 글도 천천히 오래 달려야 한다.

오래 하기 위해서는 몸이 가벼워야 하고, 애써 치장하거나 흉내 내지 않아야 한다.

못나고 부족한 지금 내 모습대로 한 걸음씩 내디딜 밖에.

가볍고 즐겁게.


"까치발로는 오래 서 있을 수는 없다."

장자님이 말씀하셨다.


"까치발로는 마라톤을 할 수 없다."

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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