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집게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

사소하게 아등바등 #사는 이야기

by 수필버거

내 어머니는 한여름에 세상을 떠났다. 몇 년 전이다.

작년 이맘때 아침이었다. 둘째가 새벽에 혼자 펑펑 울었다고 했다.

나는 '왜?'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고, '요, 까칠한 녀석이 울어?' 했었다.

아이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갑자기 보고 싶어서 울었다고 했다.

잔잔하게 쌓인 그리움이 터졌나 보다.


아들 셋이 모두 초등학생일 때다.

내가 아내에게 뜬금없는 제안을 했다.

매주 토요일에 교대로 둘 씩 짝지어 할머니 집에 보내자고.

아내는 뜨악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갑자기 왜?"

"하루쯤 당신도 쫌 편하라고."

내 대답이었다.

"나야 조오오오치!" 아내가 그제야 긴장을 푼다.

"어무이 힘드실 건데. 괘안캤나?"

아내가 '될까?' 하는 표정으로 묻는다.

"내가 여쭤볼게."

그즈음 우리 집과 불과 5분 거리의 빌라에서 혼자 지내던 어머니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첫째와 둘째가, 둘째와 막내가, 다시 첫째와 막내가 할머니 댁으로 교대로 갔다.

토요일 저녁 무렵에 가서 늦은 일요일 아침밥을 먹고 오는 일정.

매주 토요일 집을 나서는 두 아이들이나, 보내는 엄마나 모두 표정이 밝았다.

할머니 댁은 아이들에게 해방구였다.

일찍 주무시는 할머니는 지들이 밤늦게까지 게임을 한들, TV를 본들 크게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엄마와 할머니는 결이 다르다.


아내와 나 그리고 집에 남은 한 녀석은 주섬주섬 밤마실을 나선다.

타코야끼도 먹고, 파전도 먹고, 막걸리와 콜라도 마셨다.

아이도 아내도 편안하고 느긋해 보였다.

할머니 댁으로 가는 아이들도, 엄마 곁에 남는 아이도 좋아했으리라고 믿는다. 지금도.


어머니는 나를 볼 때면 저 놈들이 얼마나 잘 먹는지를 늘 얘기했다.

뭐를 해 줬더니 거덜을 냈고, 또 뭐를 해달라고 해서 장을 봐야 한다고 했다.

"힘드시마 애들 보내지 마까요?" 염려가 돼서 내가 몇 번 물었다.

"아이다. 일주일에 저녁 한 끼, 아침 한 낀데. 뭘...괘안타." 얘기하는 어머니의 표정에 생기가 돌았다.

토요일 밤에 손주 놈들한테 '뭐 맛난 거를 해 먹이나' 하고 일주일을 생각한다 하면서도, 즐거워 보여서 안심을 했었다.


"근데 와 갑자기 이런 생각을 했노?"

몇 주가 지났을 때 아내가 물었다.

"이래야 정든다. 저거들 애기 때 할머니가 돌본 거는 기억도 못한다. 지금 저래 놔야 나중에 할머니 돌아가시면 눈물이 펑펑 나지." 내가 답했다.

식구는 같이 밥을 먹고, 같이 부대껴야 정이 든다.

정의 깊이는 같이 보낸 시간에 비례한다.

미운 정이든, 고운 정이든.


둘째는 새벽에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거실 건조대의 빨래집게를 보고 눈물이 터졌다고 했다.

할머니 집에서 형, 동생과 빨래집게로 담요 쪼가리들을 여기저기 걸어놓고 총싸움하면서 놀았던 추억이 아이의 쌓인 그리움을 터뜨렸다.


얼마나 길고 깊게 울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나도 슬그머니 티슈 통을 더듬더듬 찾았다.

"마이 보고 싶나?"

"응....."

아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몹시 더운 오늘 오후.

회사 앞 산을 걸으며 땀을 뻘뻘 흘리다가 갑자기 빨래집게와 둘째가 떠올랐다.

그리고 어머니 생각이 났다.


내려와서 회사 뒤뜰에 한참 동안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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