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툴툴 털며

신발끈을 다시 죄며 #2. 공포의 추억

by 수필버거

망한 적이 있다. 팔 년 전이다.

망한 직후 한 사 년 정도는 기억이 흐릿하다.

기억에 남을만한 사건이 거의 없어서 일게다.

눈뜨고 일하고 먹고 싸고 잤으니까.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다시 비치고, 내게 다시 수다를 떨고, 심지어 소리 내어 크게 웃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사 년이다.

거울 속의 내 얼굴은 흙빛이었다.

자신감 따위는 애저녁에 사라지고 없고.

중년의 남자에게 자신의 얼굴은 이력서라 한다.

여기에 내가 하나 더 보탠다.

중년의 남자에게 아내의 표정은 성적표다.


그 세월 동안에도 소주 한잔씩은 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그나마 남아있던 친구 하나, 지인 한 명이 꾸준히 사줬다.

지금도 고맙다.

쓸데도, 쓸모도 없는 내 넋두리와 흰소리까지 들어주느라 애쓴 사람들. 미안한 마음도 크다. 그들의 돈과 귀에.

내겐 숨구멍이었다.

만날 사람도, 만날 시간도 없던 나는 그렇게 그 세월을 견뎠다.

아내와 아이들은 어찌 견뎠을까. 아직도 물을 용기가 없다.


아내의 웃음소리가 예전의 그것에 근접하다고 느낀 날, 동네 시장통 테이블 3개짜리 선술집에서 혼자 소주 한 병과 천 원짜리 부추전 한 장을 먹었다.

이제 쌀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게 좋았고, 아이들 학원에 가라고 등 떠밀 수 있어서 좋았다.

좁은 거실이지만 온 식구가 같이 삼겹살을 넉넉하게 구워 먹을 수 있어서 좋았고, 잠자리에서 끙끙대거나 식은땀을 흘리지 않아서 좋았다.

살만했다. 뭐를 더 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조금씩 미뤘다.

'조금만 더 있다가 하지 뭐.'라는 마음과 '괜히 또 저질렀다가 지금 이거라도 잃으면 어쩌나'라는 마음이 컸다.


내가 지난 일 년, 아니 더 길었을지도 모르는 시간 동안 푹 퍼져 있었던 원인은 두려움이었나 보다.

다시 망하면 어쩌나 하는 공포와 이러고만 있어서는 내 인생도, 가족의 미래도 고만고만하게 끝날 것만 같은 조바심 사이에서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내 마음을 흩은 놈은 공포였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겨우 다시 손에 쥔 것들을 잃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인생에서 지루한 부분을 덜어내면 드라마가 된다 했다.

책 '박완서의 말' 마지막 장을 덮으며 그 생각이 엄습했다.

덜어내고 잘라내고 보니 기억 속의 내 인생은 세 문장을 채우지 못하더라.

내게 남은 시간은 길지 않은데, 어쩌나. 어쩌나.

책에 박혀있는 박완서 님의 미소가 호통 같다.

지금까지 내 뒤춤을 잡고 있던 재실패에 대한 공포보다, 아무것도 아닌 인생으로 끝날 것 같은 예감이 더 무서워졌다.


오래 쉬었다. 예정보다 길게 안주했다.

갑자기 내 삶이 드라마틱지기야 하겠냐만, 내 마음에라도 흡족한 스토리로 만들려면 지금이라도 다시 신발끈을 죄야 한다.

으라차차. 이제 일어나자.

시간과 정성을 다시 쏟기 위해, 이제 정리할 건 딱 하나 남았다.


헤매는 마음 사이에서 그냥 가만히 웅크리고만 있지는 않았었다.

뭔가를 하며 지냈겠지.

그것을 정리하겠다는 결심이 오래도록 어려웠다.

왜 어려웠을까.


글이 또 길어진다.


다음 글에서 잇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