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를 격려하는 소설가가 있다

브런치 오디세이아 (아저씨의 글쓰기 분투기)

by 수필버거

어렵사리 브런치 작가로 선정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무렵으로 기억한다.

쓰고자 하는 의지는 충만하고 뭐라도 써야겠다는 조급증도 넘쳐나는데, 무엇도 자신 있게 쓸 수가 없었다.

가끔씩 끙끙거리며 한 꼭지씩 쥐어짜기는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런 글조차 자주 나오지 않았다.

의지와 의욕이 따로 논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길래 김중혁 작가의 '무엇이든 쓰게 된다'를 사서 읽었다. 재미는 있었으나 쓰고자 하는 내 욕구는 거기에 없었다.

그나마 유시민 작가의 '글쓰기 특강''역사의 역사'는 조금 나았다. 마중물 역할을 했다. 드문드문 글 몇 개는 써서 브런치에 올렸다. 쉽게 쓰는 유 작가의 문장에서 희망을 봤나. 물론 그의 지식의 깊이는 여전히 쉽게 따라갈 수 없어 보인다.


얼마 전, 무엇이든 쓰게 될 거라는 기대는 접고 여행이라는 키워드가 좋아서 읽은 책이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였다.

어릴 때와는 달리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별로 없는 요즘이긴 하지만, 코로나 19가 가지 말라고 막으니 외려 막 가고 싶기도 한 데 갈 수는 없던 차에 대리만족 같은 걸 하고 싶었나 보다.

역시 인생은 기대를 안 해야 한다. 김영하의 책은 몇 줄만 읽어도 뭐가 막 쓰고 싶어 진다. 좀 더 노력하면, 좀 더 훈련하면, 나도 '혹시나 그처럼' 하는 마음이 든다.


김 작가는 우선 단문에 대한 환상이나 압박이 없어 보여서 좋다. 유 작가는 단문이 좋다고 단정을 짓는다. '글쓰기 특강'에서 몇 번 반복해서 나온다. 나도 그랬다.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가 베스트셀러가 된 후 글쓰기를 시작하는 이들에겐 힘 있는 김훈식 단문을 따라 쓰고 싶은 욕구가 대단했다. 나도 그중 한 명이고.

김영하의 글은 길고 짧고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냥 생각을 따라서 써야 할 내용을 자연스레 쓴 듯해서 읽기도 편하다. 물론 그의 독서량은 방대해 보이고 관점과 연상이 녹아든 글의 깊이도 그윽하다. 그래도, 쉽진 않겠지만, 따라갈 수 있겠다는 묘한 자신감을 준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 희망적이다. 그래서 쓰고 싶어 진다. 내 글을.


내게 쓰고 싶은 욕구를 촉발하는 작가가 몇 더 있다.

한국의 브라이언 그린, 카를로 로벨리라고 부를만한 김상욱 교수의 책이 그렇고 칼 세이건처럼 인문학자인지 과학자인지 헷갈리도록 잘 쓰는 김대식 교수의 글이 그렇다.

이 두 작가는 쓰고 싶은 마음은 들게 하지만, 동시에 그들처럼 쓸 수가 없음을 금세 알게도 한다.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글쓰기를 하는 분들이다. 참고서이지 교과서는 아니라고 느낀다.


그래도 공통점은 있을 터이다. 적어도 내게만이라도 보이는 어떤 접점이 있겠다.

인용과 예시가 좋다. 비유도 좋다. 김 상욱 교수의 빛나는 은유도 좋다. (양자역학을 한 마디로 '울림과 떨림'이라고 표현하다니. 내 무릎을 손자국 남도록 쳤다)

풍성한 독서와 깊은 사색이 시간을 통과한 경험과 만나서 독특한 관점과 표현을 만들어 냈다고 봐야겠다.


내 발목을 꽉 잡고서, 나의 시간과 시선을 붙들고 있던 SNS를 뚝 끊고 매일 퇴근길에 동네 커피숍으로 재출근한 지 열흘이 좀 넘었다.

우선 습관부터 만들고 싶었다. 몇 분이라도 정해진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책을 읽는 습관과 읽다가 떠오르는 것들이 흩어지기 전에 붙들어서 한 문장이라도 노트북에 처넣는 습관.

무엇보다도 생각 하나, 글감 하나라도 잡아서 생각의 끝까지 끌고 가보는 습관을 들이고 싶었다.


오늘도 좀 이른 퇴근을 하고 예의 커피숍에서 김영하 작가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읽다 말고 급히 노트북을 열었다. 내가 왜 자주 쓰지 못하는지에 대한 대답이 떠올랐고, 생각이 날아가기 전에 글로 저장을 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생겼다.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오래 준비해온 대답 같은 것이 떠오른 것이다.


생각을, 사색을 끈질기게 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글감 같은 건 비교적 자주 떠오른다. 그러면 뭐하겠노. 떠오르면 잠시 머금고 있다가 이내 놓아버리거나 밀쳐놨다가 잃어버리고 마는 못된 습관이 있는 것을. 못됐다고 말하기도 뭐하긴 하다. 떡도 밥도 나오지 않는 생각 한 자락을 끈덕지게 물고 끝을 보는 것은 훈련이 필요하다. 생계가 걸린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지치는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그런 끈덕짐이 저절로 솟아나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데드라인이나 답을 재촉하는 칼이 목에 들어와 있는 상황 같은 절박함이 없었던 거다.


브런치의 내 글들이 균일하지 못하고 어떤 것은 흡족에 가깝고 어떤 것은 끝내 삭제하게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나마 내가 써놓고 다시 읽어도 괜찮았던 글은 경험이나 깨달음 같은 게 들어 있었다. 뭐라도 결론이 있는 글. 삭제하게 되는 글은 쓰고 싶어서 쓰긴 했으나 간식으로 괜히 먹은 과자 한 봉지처럼 과장된 맛과 헛헛한 포만감뿐인 글이었다.


순간적인 생각과 하루의 경험을 자세하고 깊게 겪으면 기억이 촘촘해지겠다. 촘촘한 기억은 어릴 때의 하루처럼 시간이 길게 느껴지게 하겠다.

글쓰기는 오래 사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구나.


좋은 말들, 옳은 말들은 옛사람들이 벌써 다해버렸다.

옛 말 틀린 거 하나도 없다.

김영하 작가의 인용을 재인용하여 결론 삼으며 글을 마친다.


고대 그리스의 수사학 학교에서는 좋은 연설에 다음 세 가지가 필수적이라고 가르쳤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든가 웃기든가, 아니면 유용한 정보를 줘라.

- <오래 준비해온 대답, 김영하> 중에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