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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버거 Oct 11. 2020

눈먼 길냥이와 처음 만난 날

맹묘 삼년지 교 (盲猫 三年之 交) #맹묘와의 3년 교류기 2편

강아지를 두 번 키웠고 두 번 다 슬픈 이별을 했다.

내가 어릴 때 키웠던 '해피'와의 이별은 많이 아팠고, 신혼 시절 함께했었던 '삼돌이'와는 미안한 이별을 했다.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두 번 그러고 나니 다시 반려견을 키우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귀가면 방방 뛰며 반가움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강아지의 살가움이 좋았던 기억은 있다. 반면 집사가 돌아와도 낭창하니 '너 왔니' 정도로 쳐다보기만 하고 지가 필요할 때나 겨우 곁을 내주는 까칠한 이미지의 고양이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다시 강아지를 키우겠다는 마음도 안 드는데, 그런 쌀쌀맞은 느낌의 고양이를 키우겠다는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지금 우리 집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산다.

큰 냥이는 심지어 앞을 보지 못하는 맹묘, 장애묘다.

어쩌다가 이리되었을까.


봄부터 가을까지는 자전거를 탄다. 운동삼아 동네를 맴도는 수준이라서 라이딩이라고는 못하겠다.

그냥 '탄다'가 맞다. 주중에는 날씨가 좋으면 가끔 새벽에 타고, 주말엔 조금 멀리까지 다녀오기도 한다.

삼 년 전 한 여름의 토요일 아침이었다. 그날따라 뭔 바람이 불어서인지 자전거로 멀리 시 경계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사람과 차의 왕래가 적은 구도로를 달려 집으로 가는 길. 꽤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데도 검은 물체 하나가 길 중간에 있는 게 보였다. 큰 쥐거나, 작은 고양이 사체 아닌가 싶었다. 로드킬을 당한 고약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대로 두면 가끔이라도 지나는 차에 치일 위치였다. 갓길 쪽으로 치우기라도 하자 싶어서 자전거를 돌렸다.

노견으로 밀어낼 요량이었다.

툭.

꿈틀.

그리고 들리는 희미한 소리. '미야~ㅇ'

살아있다. 아주 힘겹게 일어다. 내 신발에 빰을 문지르고 비칠거리며 자전거를 한 바퀴 돈다.

처음 만난 날.
아, 살아있구나.

몸은 비쩍 마르고 눈은 염증인지 뭔지 고름이 굳어서 잔뜩 들러붙어있다.

힘은 하나도 없지만 본능대로 발톱을 내세우는 새끼 냥이를 손으로 들어 올렸다.

깃털처럼 가볍다. 숨소리도 거칠다. 죽어가는구나. 처리에 대한 고민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새끼 냥이를 받쳐 들고 한 손으로는 자전거 핸들을 잡고 가까운 편의점으로 내달렸다.

어디서 주워들은 바는 있어서 게맛살을 하나 사서 잘게 쭉쭉 찢어 입 앞에 놔줬다. 

킁킁거리고 몇 번 핥더니 기운이 없는지 다시 쓰러지듯 눕는다.

생수도 입에 대지 않는다.


한참 고민했다. 어쩌나... 어쩌나... 에라 모르겠다.

허리춤에 두른 벨트쌕에 있던 지갑과 휴대폰은 바지 주머니에 욱여넣고, 손바닥 만한 새끼 고양이를 거기에 넣고 힘껏 페달을 밟았다. 30분쯤 걸릴 집까지 남은 거리를 거의 15분 만에 주파했다.

티브이를 보던 아내는 깜짝 놀란 표정이다.

빈 박스를 찾아서 수건을 깔고 일단 눕혔다.


안쓰러움과 난감함이 겹친 묘한 표정의 아내는 어쩔 거냐고 묻는다.

당연히 나도 아무 생각이 없다. 일단 살리고 보자는 생각뿐.

아내가 우려하는 바를 알고 있다. 마음이 약하디 약한 사람이라서 훗날 있을 이별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정든 후 떠나보내기보다 지금 짧게 미안한 게 낫다고 자위하고 있을 터였다.


강아지는 그나마 키운 경험이 있어서 조금 알지만, 고양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냥이는 월요일 병원부터 데려갔다가 반려동물보호 시설에 맡기기로 결정하고, 주말 동안은 코딱지만 하지만 집보다는 공간이 넓은 우리 회사에서 케어하기로 했다.

회사로 향하며 고양이를 키우는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무엇부터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후배가 시키는 대로 두꺼운 박스의 높이를 낮게 잘라서 담요를 깔고 참치캔을 물에 씻어서 옆에 놔줬다. 시원한 물도 함께.


하루 종일 잠만 자다가 저녁이 다서야 겨우 눈을 뜨고 참치와 물을 찔끔 먹었다. 이 녀석이 살려나보다 했다.

통화를 했던 후배 부부가 모래와 스크래쳐(그런 게 있는지 처음 알았다), 아기 고양이 사료 포대 등을 바리바리 싸가지회사로 왔다.

고양이 상태가 아무래도 허피스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그건 또 뭐야... 독감 같은 거라는데, 고양이가 많이 걸리는 돌림병 같은 거란다. 눈은 아마도 회복되기 힘들 거라고 했고, 생후 두세 달쯤 돼 보이는데 어미가 나머지 새끼들을 살리기 위해 도태시켰을 거라고 했다. 길냥이들은 대개 2~3개월이 되면 독립한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고양이는 뺨에 분비선이 있고, 뺨을 비비는 행동은 영역 표시이며 애정표현이라는 것도 처음 들었다.

진짜로 나와 아내는 고양이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삼 일을 죽은 듯 잠만 자다가 깼을 때 찍은 사진과 그림을 배우고 그린 세 번째 그림이다.
냥집사가 냥이들 초상화를 그려요. (그림 : 수필버거)

애처로워서 못 보겠다는 아내를 집으로 보내고 나는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을 꼬박 회사에 있었다.


키우겠다는 결심은 아직 못했었다.

정든 후의 이별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그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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