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필버거 Oct 15. 2020

그래, 우리 같이 살자

맹묘 삼년지 교 (盲猫 三年之 交) #맹묘와의 3년 교류기 3편

(2편에서 이어진다. 3년 전 여름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토요일 아침에 자전거를 타다가 만난 아픈 아기 길냥이를 월요일 아침에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 치아 발달 상태로 보아 태어난 지 두세 달쯤 돼 보인다고 의사가 말했다. 아픈 원인은 허피스가 맞다고 한다. 심하단다. 염증으로 성대도 상해서 정상적으로 소리를 내지 못할 거란다. 눈은 이미 각막이 많이 상해서 더 나빠지지 않게 하는 게 최선이라 한다.
"다시 볼 수는 있겠지요?"
"글쎄요... 큰 기대는 마시고 약을 꾸준히 줘보시죠."
이런 상태로 보호시설로 보내면, 안타깝지만 안락사시킬 확률이 높다고 굳이 덧붙여 말했다.
주사를 맞히고 약을 받아서 회사로 다시 데리고 왔다.

출근을 하면 밥을 채워주고, 똥을 치웠다. 다음은 투약. 고양이를 안아봤던 기억도 없는 내겐 참 낯선 일이었다.
장갑을 끼고 배운 대로 턱을 살짝 눌러 입을 벌리고 물약을 주사기로 조금씩 먹인다. 한 번으로 되지 않는다. 몇 번 반복한다.
다음은 안약. 눈을 아래위로 잡아서 크게 벌리고 안약을 두세 방울 넣고 엄지 손가락으로 감은 눈을 살살 눌러준다.
시간이 꽤 걸린다. 그래도 조금씩 익숙해진다.  
토요일부터 삼사일 동안은 내처 잠만 잔다. 죽었나 싶어서 손가락으로 살짝 찔러보거나 쓰다듬으면 반응은 해서 살아있구나 하고 안심을 했다.

계속 잠만 잔다...


아기 길냥이를 데려 오고, 냥집사 후배 부부가 다녀간 후 소문이 천리, 만리를 갔나 보다.
아기 냥이 안부를 묻는 많은 문자와 톡 그리고 각종 선물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이만큼 받지는 못했던 거 같은데.....
외출할 때 쓰는 케이지(?)부터 사료, 장난감 등등 엄청나게 받았다.
이건 뭐 입양을 하라고 압박을 주는 것인가?

아니지. 약간 차가운 평소 내 이미지와 냥이 집사와 매칭이 안됐나 보네.

새끼 냥이는 회사에 머문 지 일주일쯤 지나고 조금 원기를 회복한 듯 보였다. 물에 불려준 사료도 잘 먹고, 배변도 정상인 것 같아 보다.
자리를 마련해 준 사무실을 살짝살짝 벗어나서 회사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눈 상태는 몹시 나쁘다. 빛이 있는 방향은 아는 것 같다. 눈 앞에서 손을 흔들면 반응 한다. 한 뼘쯤 앞부터는 안 보이는 것 같고. 소파에서는 한참을 앞 발 허우적거리다가 뛰어내린다. 높이를 몰라서일까, 철퍼덕 거리며 착지를 한다. 관절 상하겠다.
그런 눈 상태이니, 회사를 돌아다녀도 사부작사부작이다. 조금씩 반경을 넓혀나가는 눈치다.

수발을 든 지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 문득 얘가 많이 답답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여름이지만 이른 아침과 저녁은 그래도 견딜만한 온도일 때였다.
사람은 만사를 의인화하는 습성이 있다. 달을 보고 외로워 보인다고 생각하거나, 사슴과 소의 눈이 슬퍼 보인다고 느끼는 것처럼. 달이 외로울 리가 없고 사슴과 소가 맨날  슬플 리 없는데도 우리는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하고 대한다.
답답할 거야. 아무리 영역 동물이지만, 그래도 답답할 거야. 나 같으면 돌아버렸을 거야.

회사 뒷 뜰로 나가는 문을 살짝 열어놨다. 낯선 공기 냄새를 맡은 걸까, 강렬한 햇빛에 이끌린 걸까. 살살 문 쪽으로 다가간다.
선뜻 나가지는 못한다. 코 킁킁거리다가 물러서고 또 다가서기를 몇 번 반복하더니 문 밖으로 조심스레 한 걸음 내딛는다.
눈이 온전치 못하니 후각에 기대는 것 같다. 걸음마다 냄새를 맡으며 조심조심 몇 걸음 나아간다. 그러다가 다시 돌아와서 물 한 모금하더니 누웠다. 신경을 곧추세워서 피곤했나 보다.

며칠 반복하더니 뒷 뜰 끝자락의 작은 텃밭까지 나간다.
형체는 보이나 보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작물의 이파리를 잡으려 한다.
뜨겁고 찬란한 햇빛 아래서 앞 발을 휘적이는 새끼 냥이를 보는 데 문득 눈 가장자리가 뜨끈해다.

제법 건강해진 모습. 지금 봐도 마음이 지릿하다.


그랬겠지?

문득 깼을 때 어미와 형제들이 곁에 없었을 거다. 소리를 내봐도 아무 반응이 없었을 거야. 배도 고팠겠지. 왜인지는 모르지만 몸은 점점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을 테고. 여기가 어딘지 볼 수도 없었겠지.

가족을 찾아서, 먹을 것을 찾아서, 익숙한 냄새를 따라 한 걸음씩 발을 옮겼을 게야. 그러다 지쳐서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쓰러져서 잤겠지. 그러다 누군가 톡 하고 몸을 쳤고, 난데없이 들어 올려졌을 테고.

어딘가로 옮겨졌고, 뭐를 조금 먹었고, 긴장을 풀고 오래 못 잔, 길고 편안한 잠을 잤겠지.

그리곤 몸이 조금 나아진 것 같고, 다시 햇볕이 느껴졌고, 오랜만에 풀 냄새를 맡았고, 팔랑거리는 이파리가 다시 보였겠지.
저 아이는 풀잎을 가지고 놀려했으려나.

안 되겠다. 못 보내겠다.
그래.

내가, 우리가 키우자.
대체 얼마큼의 희박한 확률의 우연으로 나와 만났을까.
안락사라니..... 그건 더더욱 아니지.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가 키우자고 했다.
그럴 줄 알았다고, 궁금하고 눈에 밟혀서 회사에 자주 다녀가면서 벌써 입양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단다.
이별은 저만치 밀어놓고 생각지도 말자고, 키우는 이쁜 순간에 집중하자고.


퇴근길에 집에 데려 오라고 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작가의 이전글 눈먼 길냥이와 처음 만난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