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찾기

#3. 왜 쓰는가 (브런치 오디세이)

by 수필버거

태산 같던 아버지였다. 어린 눈에 비친 당신의 성취가 태산 같았고, 항상 멀리서 바라만 봐서 태산 같았다.

그 태산이 너무 일찍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소년기의 끝을 통과하던 해의 2월 어느 추운 날, 나는 지도와 나침반을 잃었다.


생각과 충동을 구분하지 못하고 여태 살았다. 지금도 그렇다. 된장처럼 생긴 똥 맛을 자주 보고 살았다.

참으로 곧은길은 굽어 보인다고 했다. 삶의 작은 갈림길을 만날 때마다, 미미한 경험과 짧은 생각 그리고 어쭙잖게 듣고 읽은 말들에 기댔다. 곧은 지름길만 택했다고 믿었건만, 결과적으로는 참 많이 돌고 돌아 여기에 이르렀다. 다른 복도 없겠거니 하지만, 사람 복도 없나 보다 한다. 아니면 사람 보는 눈이 없거나. 좋은 멘토들이 많이 스쳐갔을 텐데 알아보지 못했겠지.

빨리 멀리 가려다가 제자리 곰뱅이를 하고 만 기분.


돌아가고 모로 가도 무슨 길이던 걸었으니 내가 지나온 길을 운명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누군들 혼자이지 않냐고, 누군들 홀로 결정하며 살지 않냐고 눈을 흘겨도 틀리다고 항변은 못하겠다. 다들 그리 산다고 해도 틀리지 않은 말이지만, 그래도 아쉽다. 애정과 경험이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으면 좋은 일이다. 그게 아버지였으면 더 좋았을게다.


아버지의 부재는 나이가 들수록 삶의 곳곳에서 허전함과 아쉬움으로 출몰한다. 나름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아쉬웠다. 당신의 생각과 경험을 묻고 싶은데.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던 나는, 쉬운 길도 돌아가고 늘 한 박자 느리게 결정하는 사람이었다.


이제부터 글을 쓰면 블로그, 브런치 그리고 또 어딘가에 올리겠지? 글은 생각이니, 내 생각의 흔적을 남기게 될 터이다. 만약 책이라도 출간을 하게 되면 아주 큰 흔적을 남기게 된다.

아들만 셋이다. 녀석들이 나중에 내가 의도적(?)으로 흘린 단서로 나의 글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지금의 내 나이가 돼서, 지금 내가 쓴 글을 읽게 되기를 바란다. '아빠는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기를 바란다. 더 훗날, 아이들이 지금의 내 나이를 추월해서도 읽게 되길 바란다. 제 놈들보다 어린 아빠가 쓴 글이, 아빠의 유치한 생각이 귀여워 보일 수도 있겠지.

아이들이 살며 만나는 질문과 의문에 직접적인 대답이 되지는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물 찾기의 힌트 쪽지처럼 아이들 삶의 갈림길에서 만나는 생각거리나 단서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내 흔적을 보물로 만드는 일은 아이들의 몫이다.


두 번째 이유다. 왜 쓰고 싶은지에 대한.

쓰고 보니 목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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