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뒷면, 해석되지 않는 밤의 기록]

{소음 사이의 독백}

by 이승섭 대중문화평론가

필자는 일정 기간 타인의 문장에 밑줄을 긋고, 그 여백에 독설 혹은 찬사를 채워 넣으며 살아왔다. 나의 언어는 언제나 차갑고 명징해야 했으며, 대상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는 ‘언어의 화살’이어야 했다. 평론가라는 문패를 달고 사는 동안, 나는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왜?’라고 물었다. 이 구도는 왜 불안한가, 이 문체는 왜 이토록 서늘한가.

[이천 어느 한적한 호수가에서의 필자]

하지만 질문의 끝에서 마주하는 것은 언제나 논리라는 이름의 딱딱한 벽이었다. 정작 나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소중한 것들은 대개 ‘왜’라는 질문 앞에 침묵하는 것들이었음을, 나는 아주 뒤늦게 깨달았다.

서재 깊숙한 곳, 화려한 양장본들 사이에 끼어 있는 빛바랜 노트 한 권을 꺼내 본다. 그 안엔 비평적 문법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투박하기 그지없는 메모들이 적혀 있다. “오늘 엄마가 보내준 김치 상자에서 흙, 냄새가 났다.” “가로등 불빛 아래 흩날리는 눈발이 꼭 누군가의 한숨 같다” 같은 것들이다. 평론가의 눈으로 보자면 이 문장들은 형용사가 과하고 주관이 지나쳐 폐기되어야 마땅한 쓰레기들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나의 날 선 비평문들이 세월의 파도에 씻겨 내려갈, 때에도 이 서툰 감각의 조각들은 내 영혼의 가장 깊은 밑바닥에 앙금처럼 남아 나를 살게 했음을 말이다.



언젠가 한 원로 화가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는 평생을 ‘여백’에 매달려온 노장(老長)이었다. 나는 직업적 본능을 발휘해 그의 텅 빈 캔버스 앞에서 ‘공(空)의 미학’이니 ‘존재의 부재’니 하는 화려한 수식어들을 쏟아냈다. 나의 유창한 해설을 가만히 듣던 노 화가는 허허 웃으며 낡은 찻잔을 내밀었다.

“평론가 양반, 저 빈 곳에 무엇이 있는지 아나?

저건 내가 그리지 못한 것들이 아니라, 차마 그릴 수 없어서 남겨둔 마음들이라네. 말로 다 하면 향기가 날아가는 법이지.”

그 순간, 나는 내가 휘두르던 언어들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절감했다. 나는 대상을 이해한다는 명목하에 그것이 가진 ‘신비’를 난도질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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