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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글이 말하는 몰상식 현실]

『상식이 무너지는 사회』

이승섭 시평집 <문학의 혼을 말하다>대학교제 선정

자기를 넘어서는 행동이 바로 허세 하고 허풍스럽다고  한다. 또한 빈 깡통이 요란하다고도 한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한 행동이  지나쳐 조롱을 받거나 변죽만 울리며  아무 가치가 없을 때 이런 말들을 한다.

물론 자기만큼의 금도(襟度)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러나 자기만큼의 기준을 갖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하며 스스로 상식의 행동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정치가는 정치가의 도리, 지식인은 지식인의 도리, 국민은 국민의 수준의 도리가 사회에 일반적 상식으로 “자기를 알 수 있을 때” 비로소 삶의 가치, 혹은 걸치는 의상이 맞는 사회적 일원이 되는 것이다.

여일 하게 자기를 수양하고 다듬는 수행을 게을리한다면 허세가 판치는 세상이 되기 때문에 꾸준한 일관성의 절대 명제인 것이다.

작금의 시대는 “운영 정상화” “기지 정상화”를 해야 할 때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사실 지금 세계적으로 국제적 국내적 정치, 경제, 사회 모두가 어려운 현실에 모두가 한마음으로 일치단결해도 모자랄 판에 서로 물고 뜯으며 상식을 저버린 행동에 반대만 하는 정치 속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가장 거짓말을 잘하는 직업이 무얼까 하면 아마도 정치꾼들이 아닐까 한다.

보여주기 식 정치, 그 자리만 벗어나면 되는 안일한 생각 등등이 사고의 구조적인 형태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꾼들만의 정치를 하고 있으니 이러한 난맥상을 보이는 것이다.

지금의 여당을 보자 무슨 나이 40세 안된 젊은 대표가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성 상납, 또는 증거인멸 교사) 등은 

한마디의 언급도 없이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자기는 잘못이 없고 오로지 상대방이 잘못한 것이라는 안하무인으로 자신의 치부는 감추는 데에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것을 보며 탄식을 금할 수가 없다. 과연 이것이 정당성이 있는 행동인지는 글쎄올 시다이다 .

국 힘당은 그렇게도 어른이 없단 말인가.

그 많던 지식인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것이 진정 집권 여당인지 묻고 싶다.

이름이 거론된 정치인은 당장 국민에게 용서를 빌고 그 자리에서 내려오기 바란다.


한편 민주노총이라는 단체는 타이틀을 걸고 서울 한복판에서 북한에서 보내온(북한은 노조도 없지만) 노동단체라 하며 내려온 선언문을 백주대낮에 낭독하며 북한을 찬양하는 이 현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21세 시대에 이러한 광경을 목도하고 있으니 나라가 제대로 운영되는지에 정당한 나라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통일은 요원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북한이 좋다면 북한으로 가서 북한 집단과 함께해야지 이런 해괴망측한 짓을 하는지  의식 이하 수준을 보는 것 같아 심히 우려스럽다.

참혹한 북한의 백성들을 위해 인권법을 미적거리는 혹은 자신들의 이득을 계산하면서

미래를 예상하는 허풍의 바람 소리가 미명으로 호도되는 일은 특히 야당의 경우 자심(滋甚) 한 것 같다.

정치가의 계산은 애국이고 이 애국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릴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하지만 우리 경우 맹목적으로 이익에만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집착해오는 현실을 국민들은 똑바로 알아야 하겠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판단이 미숙하면 그 영향은 오래고 오래 백성의 아픔과 혼란을 부추기는 일이 한국 정치사에서 엄연히 보지 않았던가? 마치 가장의 잘못은 결국 집안 구성원이 떠맡는 아픔이다.

햇볕을 쬐면 옷을 벗지만 북한의 김정은 집단은 오히려 그를 이용하는 비열한 일이 얼마의 고통인가를 몰랐다면 너무 순진한 것이고 아니면 교활한 정략적 사고 중 하나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지난 정부가 과연 누구를 위해 북한에 말 한마디 못하는 현실이지 않았던가.

정말 사상적 이념으로 함께한 것인지 분명히 묻고 싶다.

모조리 위선적이고 국민을 속이는 과장의 헐렁한 옷을 걸치고 국민을 우롱한 일이 더 이상은 안 되는 것이다.

이제 문제는 국민의 판단이 많아져야 하는 답안이지만 쉽게 궤도를 잡을 수 없는 뿌리 깊은 사상적 이념이 사회 전역으로 진행되어 있으니 하루빨리 민주주의를 회복시켜 법을 원칙대로 실현하여 메스를 대야 한다.

어떻든 북한의 참상을 외면하면서 당리당략에 몰두한다면 이는 민족사에 큰 죄인이 될 것이다.


가끔 무슨 지식인이며 무슨 평론가, 교수 들입네 하며 종편에 나와 말의 성찬만 늘어놓는 현실에 오 골(傲骨)만이 보이니 어찌하랴.

다시 언급 하지만 철학이 빈곤함을 부추기는 것은 곧 권력이다. 국민을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 선으로 출발하지만 결국은 권력의 유지를 위한 목적으로 귀환한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정권에서 보지 않았던가?

이러한 점을 명심하여 이번 정권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굳건히 세워야 할 것이다.

자신만의 희생은 편한 정리가 되지만 모두에 영향을 미칠 때는 바로 잡아야 한다는 논리이다.



시간은 지나가고 그 지나가는 결정 과정을 거치면서 나타나는가의 따라 전혀 다른 정치와 사회적 이미지를 생산한다면 집권자들은 사회구조에서 공존의 숨소리가 때로 거칠어질 수도 있지만 깊은 지혜와 이성이 공평성을 갖는 가의 여부가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기준이 될 것이다. 이제는 정서를 찾아야 할 때이며 국민의 정서가 무너지면 불행이 검은 장막을 치는 것이다. 물론 미래는 현실의 바탕 위에서 오로지 공고한 성곽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에 충실하고 강한 신념으로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야 한다.

우리는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으므로 내일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를 묶어 국민의 미래 세상을 구축하는 임무를 충실히 해야 할 때이다.

원칙적 미래의 사고는 평범하지만 평범을 넘어서려는 의지로의 국민들일 때 나를 이끌고 내일의 높이에 이를 수 있다는 사유(思惟)의 길이보다 더 명확하게 나타난다고 보기 때문에 가일층 몰 상식을 벗어나 공정, 상식에 대한 입지를 굳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나가려 한다.    

 

2022. 08. 17.


금요 저널 강변 일보 주필/칼럼니스트/

문화연구위원/이승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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