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제가 어렸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비디오 가게가 있었습니다.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서 텔레비전 밑에 있는 기계에 넣으면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법비디오들을 시청함에 따라 비행청소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하는 경고 문구와 함께 나오는 영상이 나오고 그 뒤에 내용이 시작하고는 했습니다. 빨리 감기로 이 부분은 넘기곤 했는데 생각보다 은근히 맞추기 까다로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하던 시리즈는 '하얀 마음 백구'였습니다. 엄마가 비디오 가게에서 맨날 이것만 빌리니까 '이번에도 백구 보면 다음에는 안 빌려줄 거야.'라고 해서 카운터를 보고 있던 제 또래즈음이었던 비디오가게 언니가 '이것도 재미있어~'하면서 인어공주를 보여줬었습니다. 백구를 보면 또 안 빌려준다는 말이 치사하게 느껴지면서도 다음 화가 너무 궁금해서 결국에는 백구를 빌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끝까지 봤는지 기억이 다 나지는 않지만 백구가 친구들과 함께 멋지게 싸우던 모습은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집에 있는 비디오테이프도 있었습니다. 몇 개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미라'입니다. 정말 계속해서 돌려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보물을 발견하기 위해서 떠나고, 그 과정에서 이모텝과 아낙수나문과 같은 인물들과 갈등이 있기도 합니다. 당시에 영상이 꽤나 징그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낙수나문이 전갈 떼에 빠져서 끌려 들어가던 장면도 있었는데 너무 끔찍해서 그 장면만큼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크면서, 제가 미이라를 좋아했던 것은 생각이 났지만 자세한 내용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겁도 많으면서 그걸 본 건 심심해서 그랬던 건가?'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이 의문은 몇 년 전 미이라의 남자주인공이었던 브랜든 프레이저가 다른 영화를 찍으면서 풀렸습니다. 당시에 브랜든을 브라운관에서 잘 보지 못했던 이유, 변한 모습등을 조명했었는데 과거의 모습이 너무 멋있었습니다! 영화를 검색해 보니 여자 주인공인 레이첼 와이즈의 충격적인 아름다움에 혼미해질 지경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제가 어린 시절 그 영화를 그렇게나 본 이유는 예쁘고 잘생긴 주인공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꽤나 오래된 취향이었나 봅니다.
연예인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을 담을 수도 있었습니다. 아빠가 어느 날 충동적으로 비싼 캠코더를 사 왔고, 엄마는 속이 터지셨지만 그래도 덕분에 저와 동생의 모습을 남길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테이프에 기록이 남고, 그것을 커다란 비디오테이프에 복사도 가능했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집에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을 때에는 가끔 보면서 동생 돌잔치 하는 모습, 저를 혼내는 것처럼 놀리는 모습, 공부하는 모습 등이 담겨있었습니다. 지금처럼 동영상이나 사진을 많이 찍지는 못해서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얼마 없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추억이기도 합니다.
그 후로 디스크, CD, USB 등이 나오다가 이제는 클라우드를 통해서 실제 기계 없이도 상상도 못 했던 방대한 영상과 사진을 저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한 세대에 기술이 발전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모든 빛나는 순간들을 저장하면서 클 수 있는 요즈음의 아이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 손을 잡고 주기 적으로 비디오 대여점에 갔던 기억. 무슨 테이프를 볼까 고민하고, 별 게 없어서 외울 때까지 한 작품을 볼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새로운 물건들이 나왔을 때 놀랐던 감정 등은, 조금은 아쉬운 그 마음을 단단히 채워주는 것 같습니다. 아, 특히 몇 백, 몇 천 개가 되는 콘텐츠에 허우적거리면서, 볼 만한 영상을 찾는데 한참을 쓰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그 시절 그래도 한정된 공간과 콘텐츠가 있었던 쪽이 스트레스가 덜 하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