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스틱 짙게 바르고~
저희 엄마는 노래 가사 전체는 잘 모르시고, 알고 있는 부분만 가끔 부르시곤 하는데 그중에 하나가 '립스틱 짙게 바르고~'라는 구절입니다. 저도 이 노래는 모르지만 이 가사와 음만큼은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지요.
이 립스틱에 얽힌 재미있는 추억 하나가 있습니다. 지금도 집에 가면 내가 핑크색 립스틱을 입술뿐 아니라 얼굴 한가득 바르고 있는 사진이 하나 있습니다. 아주 어렸을 적, 아마도 엄마가 립스틱을 바르는 모습을 따라 하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예쁘게 보이고 싶었던 것인지 어떻게 바르는지도 모르면서 찾아낸 립스틱을 여기저기 가득 바른 것이었습니다. 입술뿐 아니라 거의 볼까지 타고 올라올 정도로 여기저기 열심히 발라댔던 것이지요.
나중에 엄마한테 들었는데, 당시에 누군가에게 백화점에서 선물 받은 꽤나 비싼 립스틱이었다고 합니다. 좋은 물건이라서 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새것으로 보관해 둔 것을 제가 기어이 찾아내서 발랐던 것이지요. 근데 그걸 그냥 바른 것도 아니라 얼굴까지 열심히 칠해놨으니 당연히도 립스틱은 더 쓸 수 없게 다 뭉개지고 없어졌다고 합니다.
엄마가 혼내려고 했는데 얼굴이 핑크색 립스틱을 잔뜩 묻히고 있는 모습이 너무 웃겨서 결국 혼내지 못하고 웃으면서 찍어둔 사진이, 바로 본가에 있던 사진입니다. 그 사진을 보면 정말 뭔가 잘못했다고 생각 안 하는 눈빛이 인상적입니다. 엄마도 어렸던 시절이니 아까울 만도 한 테 너무 웃기다면서 아직까지 좋아하시는 걸 보면 뭔가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는 에피소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초등학생 무렵, 아이들을 위한 메이크업 도구 같은 것을 선물로 받은 적이 있습니다. 과하게 핑크색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직도 핑크를 좋아하는 저에게는 딱 맞는 선물이었습니다. 네모로 되었는데 그때 즈음 엄마가 가지고 계시던 메이크업 박스랑 비슷하게 생겼었습니다. 상자를 열면 옆으로 계단처럼 층까지 나 있는 꽤나 멋진 장난감 메이크업 박스였습니다.
거기에 이것저것 들어있었던 것 같은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약간은 끈적한 느낌이 드는 몇 가지 색이 들어간 하트 팔레트였습니다. 그것의 용도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립스틱으로 사용했었던 것 같습니다. 나름 거울 보면서 그걸 바르고, 집게로 고정해서 나중에는 너무 아파지는 반짝이는 왕 귀걸이까지 걸면 왠지 나도 공주님이 된 느낌에 흠뻑 빠져서 상상을 하면 시간이 금방 가곤 했었습니다. 지금 보면 너무 귀여운 추억이죠.
그렇게 자라났건만, 피부가 약해서 대학교 때에도 거의 화장을 못했고 졸업하고 좀 지나서 어떻게든 하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멋진 화장은 못하는 어른이 되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긴 합니다. 그래도 어렸을 때 나도 어른이 된 것 같았던 그 화장품 세트의 짜릿한 기분과, 엄마의 사랑이 몽글하게 느껴지는 립스틱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