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번째 상자: 박하사탕

사랑의 맛에 관하여

by 지현


여러분들은 형제자매가 있으신가요? 저는 나이로는 2년, 학년으로는 3년 터울이 지는 동생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퇴근이 끝나고 스쿼시만 몇 시간을 칠 정도로 튼튼한 녀석이지만, 어렸을 때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있기도 했고 도무시 살도 찌지 않는 연약한 녀석이었습니다. 게다가 한 달 한 달 급하게 자라는 아기들에게 2년 차이는 너무나도 컸습니다.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하는 이유는, 그런 탓에 저는 부모님과 부모님 친구들이 저보다 동생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슬펐거든요. 게다가 이 녀석은 원하는 건 가지고 마는 고집쟁이에, 주관이 뚜렷한 녀석이었는데 엄마가 이런 성격을 너무 좋아했어서 당시 온순했던 저는 비교적 주눅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고 싶었으니까요.

이런 와중에서도 누군가는 저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외할아버지였습니다. 제가 유치원생일 때 돌아가셨는데도, 아직도 할아버지가 저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가 다 기억이 나거든요. 제 또래로는 저랑 사촌 동생 그리고 제 동생이 그 집에 있었는데 남자아이 었던 사촌 동생도 제치고 제가 항상 일등이었었습니다.


당시에 할아버지는 몸이 좋지 않으셨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온다고 하면 꼭 시장에 가서 저 박하사탕을 사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린애가 박하사탕을 좋아하면 얼마나 좋아했을까요? 그래도 저는 할아버지가 꼭꼭 감추고 계셨던 사탕을 제게만 건네주시는 게 너무 좋아서, 그래서 박하사탕이 좋았습니다. 동생한테 왕왕 치이기도 하는 제게는 저한테만 몰래 주어지는 사랑이 너무 달콤했고 그래서 그런지 박하사탕도 맛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별로긴 했지만, 아마 먹다 보니 점점 더 좋아졌습니다. 비닐에 쌓인 것도 먹었지만, 제 기준에 최고는 저렇게 마름모꼴로 생긴 박하사탕이었습니다. 흰색 바탕의 마름모꼴의 사탕에는 굵은 설탕 입자들이 있었어서 조금 꺼끌꺼끌했지만, 매력이 있는 맛이었습니다.


저는 자세하게는 기억이 안 나지만, 할아버지가 새벽에 깨시면 저도 귀신같이 일어났던 몇몇 장면들을 기억이 납니다. 할아버지가 거동이 불편하시니까 그 새벽에도 일어나서, 지금도 크지만 그때에는 한참을 뛰어야 했던 거실을 가로질러서 화장실 불을 켜 드리고 신발을 앞에 놓아 드렸던 기억입니다. 식사 시간이 되면, 할아버지에게 '진지 잡수세요~'라고 말하러 가는 것도 저였고, 할아버지가 누워계셨던 방에서도 혼자 잘 놀곤 했습니다. 이건 기억이 잘 안 나는데 할아버지 볼에 뽀뽀도 엄청 열심히 했다고 하더라고요.


할머니는 제가 착해서, 그리고 핏줄이 무섭긴 한 다보다~하면서 저를 신기하고 착한 애라고 말씀하시곤 했었지만, 저는 그냥 할아버지에게 사랑을 듬뿍 받는 게 좋았고, 그 작은 몸으로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온전히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어서, 행복했던 기억이 바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아쉽게도 할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나셨지만, 지금까지도 그 박하사탕과 그 방만 생각하면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납니다. 누군가에게 듬뿍 사랑을 받았던 기억은 그렇게도 오래가는 것 같습니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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