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융합과 상생, 그리고 치유

작가(라예진) - 조치원 도시재생 청년 서포터즈 5기


융합과 상생, 그리고 치유

 - 라예진 작가 -


 

  도시가 재탄생하고 있다. 소위 ‘도시 재생’이 도시를 재건하는 데 있어 ‘힙(Hip)’한 문화가 되고 있다. 과거의 재개발·재건축이 도시의 골격 자체를 바꾸는 망치질 같다면, 원래의 건축물을 유지한 채 예술적 상상력을 더하는 도시 재생 사업은 섬세하게 어루만지는 손길 같다. 화려하고 깨끗한 외관을 포기한 대신, 기존의 것을 깨끗이 닦아 활용하고 다양한 문화요소를 들여놔 그 안이 꽉 차고 즐겁다. 겉으로 도시는 변화 없이 조용해 보이지만, 안을 유심히 살펴보면 즐거운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도시 재생은 그렇게 조용히 우리 일상을 바꾸고 있다. 


 나의 첫 강렬한 도시 재생에 대한 인상은 다시 찾은 문래동이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학교 동창이 문래에서 주말을 보내자고 했다. ‘어, 문래라고?’ 문래에 맛집이 있으니 소개해주고 싶다고 했다. 아무리 맛집이라고 해도 주말 내내 문래에서 보낸다는 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아빠의 손을 잡고 걸었던 문래의 거리는 으스스했다. 철물점에는 각종 철자재들이 정육점의 고기 덩어리처럼 전시되어 있었고, 거리는 기계를 자르는 소리로 요란했다. 구로공단 주변 지역을 걸어갈 때는 항상 아빠 뒤에 숨어 두려운 마음에 걸었던 기억이 난다. 지저분한 거리, 무시한 외관의 각종 기계 파는 상점들, 기계 절단 소리와 퀴퀴한 냄새. 문래는 거친 동네였다. 


 친구와 함께 휘황찬란한 건물들이 들어선 신도림역을 지나 문래로 걸어가면서 옛 기억의 건물들을 다시 만나게 됐다. 간판은 조금 바뀌었지만 변한 게 없었다. 허름한 철물점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친구가 과감히 문래동 거리 깊숙이 들어간다. 과거의 기계집들은 사라졌지만 움찔하는 마음은 여전했다. ‘심지어 식당이 이렇게 깊은 골목에 있다고?’ 하지만 골목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이곳이 예전의 문래가 아님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빨간 벽돌로 지은 건물 벽에 그려진 멋진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았고, 과거 철물점 지붕 아래 아기자기하게 리모델링한 가게들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철자재들 속에서 피어난 꽃처럼 가게들이 과거 무시무시한 거리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다양한 청년 식당, 수제 맥주집, 옷 가게, 악세사리 가게, 예술품 전시 등 다양한 가게들이 젊은이의 발길을 잡았다. 그대로 보존된 문래의 옛 건축물들이 오히려 상점을 돋보이게 했다. 레게 노래가 흘러나오는 루프탑에서 친구와 함께 문래 거리를 바라보며 마신 수제 맥주를 잊을 수가 없다. 그 후 한껏 나를 더 사랑하고 싶을 때는, 화려한 건물들로 상전벽해한 신도림역 주변이 아니라, 시간이 켜켜이 쌓인 문래로 가게 된다. 때마침 다시 유행하는 90년대 패션을 입은 젊은이들이 거리를 걷고 있어 문래의 시간은 오묘하고 깊다. 


 어느 새부터인가 서울에 이러한 거리가 많아졌다. 전쟁 후 피난민들이 모여 만든, 허름한 동네였던 남산 아래 해방촌은 새로운 동네로 탈바꿈했다. 어린 왕자 바오밥나무 벽화를 비롯해 동네의 외관은 화려한 도화지가 되었고, 다양한 상점들이 젊은이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가리봉 지구, 세운상가 주변 등 서울 곳곳에서 창의적인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동네뿐만 아니라 서울역 주변 고가도로 역시 ‘서울로7017 프로젝트’를 통해 도심 속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최근 나의 서울 나들이는 다름 아닌 도시재생 투어였다. 주말에 롱코트를 차려입고 휴대폰 셀카봉을 들고 나도 모르게 멋을 느끼며 걸었던 거리들이었다. 함께 걷는 친구에게 꼭 유럽의 거리 같지 않냐고 말한 것은 과장된 마음이 아닐 것이다. 사실 모든 유럽의 거리와 마을은 도시 재생 그 자체이지 않은가. 비록 도시 재생 자체가 법으로 규정된 의무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기꺼이 수백 년이 넘은 건축물이 주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 안에서 현재의 삶을 알맞은 모양으로 모색한다. 유럽 어느 건물에서나 느낄 수 있는, 수백 년을 아우르는 시간의 지층은 도시를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비록 유럽만큼 긴 역사의 건물은 아니지만, 비로소 유럽의 지혜를 담은 서울의 거리들은 시간의 겹침만큼 멋스럽다. 문래 거리를 걸으면서 옛 공장을 개조해 만든 영국의 테이트 박물관이 떠오른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쇠락한 산업은 잊혀지지 않고 다시 같은 자리에서 새 생명을 얻었다. 


  내게 도시 재생은 ‘융합’이다. 허름한 양옥집을 개조한 상점 안에서 예술 공방을 차린 젊은 청년들은 아이패드를 가지고 놀고 있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젊은이와 기성세대 간의 융합도 일어난다. 죽은 지역을 되살리고 지역주민들과의 상생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젊은이의 패기와 기성세대의 지혜가 자연스럽게 합쳐진다. 그리고 이 거리에서 자본주의와 예술은 대립하지 않고 서로를 지지한다. 각 지역의 도시재생 사업을 내실화하는 각종 사회적 기업의 출현은 상업성과 공공성을 결합한 새로운 자본주의 미래를 보여준다. 도시 재생은 단순한 리모델링이 아니다. 그 안에 여러 층의 융합이 있고, 새로운 미래를 잉태하고 있다. 


<중재> 조치원, 노인과 청년이 만나는 융합 도시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 역시 쇠락한 지역을 살리는데 도시 재생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예술가, 젊은이들과 협업해 지역주민들과 상생하는 다양한 도시 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젊은이의 발길이 점점 끊기는 많은 지방 지역들이 도시 재생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최근 조치원역 일원 도시재생뉴딜 현장지원센터가 대학생과 연합해 조치원 지역을 재건하고자 노력이 반갑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만나게 된 대학생 5명과의 만남을 온라인을 통해 가졌다. 대학생들의 팀명은 ‘조치원이 조치’. 학생들은 조치원 지역의 도시재생 아이디어로 ‘노인과 청년이 공존하는 셰어하우스’라는 공동 주거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흥미로웠다. 과거와 현재, 젊은이와 기성세대의 융합이라는 도시 재생의 정신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홀로 사는 노인과 청년의 공생 가능성을 모색하고, 도시 재생의 윤리성을 상상하는 그들의 아이디어가 참 귀하게 느껴졌다. 이 외에도 조치원 도심 내의 유휴공간을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구축해 지역 대학생과 주민 간의 상생을 도모하는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아빠와 함께 걸었던 연남동 연트럴 파크는 잊을 수 없는 추억 중 하나이다. 연남동 주변 맛집을 가자고 했을 때 아빠는 의아해했다. 내가 친구로부터 문래동을 제안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빠에게 연남동은 허름한 동네였다. 신선하게 탈바꿈한 연남동을 본 아빠는 매우 신기해했다. 그리고 아빠가 말했다. ‘그런데 경의선 철길이 어디 간 거지?’ 나는 크게 웃으면서 ‘아빠 바로 옆에 있잖아’ 하고 말하며 손으로 가리켰다. 공원으로 바뀐 경의선 철길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아빠로부터 연남동에 얽힌 당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었다. 연남동은 청년 시절 아빠 회사 주변으로, 아빠의 청춘과 고민, 그리고 열정이 스며든 장소였다. 경의선 철길을 걸으면서 낙후된 연남동을 순회하며 지역을 점검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철길을 걸으며 대화를 이어갔고, 그 끝에서 경의선 철길의 역사를 담은 표지판을 발견해 함께 읽었다. 연트럴 파크로 개발되지 않았다면 아버지의 젊은 시절과 나는 교감할 수 있었을까? 연트럴 파크에 과거와 현재가 있었고, 아빠의 젊은 시절과 현재의 내가 있었다. 


유럽에서 유독 배관공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긴 배관을 들고 백 년도 넘은 허름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그들. 도대체 왜 이리 많은 배관공이 필요한 것인가 의아했다. 이제는 그들의 불편함이 이해가 된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청춘에게 묻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