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두근거림)_조치원 도시재생 청년 서포터즈 5기
- 두근거림 작가-
누구에게나 설레는 순간이 있다. 한낮의 햇살을 머금은, 호숫가의 물빛처럼 반짝이는 시간이 있다. 핸드폰에서 다음 브런치 알람이 울릴 때가 나에게는 그중 하나이다. 문자가 도착했을 때와는 다르게 긴 진동이 특징이며, 오랜만에 울리는 신호음으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누군가의 제안이 도착한 게 아닐까. 브런치에 등록된 이메일을 서둘러 확인했다.
조치원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담당자로부터 메일이 도착했다. '도시재생 청년 서포터즈' 활동에 대한 제안이었다. '지역(조치원)과 도시재생 그리고 원동력, 청춘'이라는 주제의 글 한 편과 서포터즈 활동 지원이 주된 활동이었다. 글을 꾸준히 썼다거나 책을 출간한 것 이외에 별다른 이력이 없는 내가 '작가'로서 대학생 서포터즈들과 활동할 수 있을까. 이전에 서포터즈를 했던 사람들의 글과 현장지원센터 홈페이지를 살펴보며 고민했다.
하루를 내리 고민하고 수락한 데에는 '청년(대학생)과 청년(작가)의 만남, 언텍트 상황의 가장 강력한 콘텐츠 글'이라는 컨셉에 있었다. 대학생(청년), 작가(청년)가 아닌 '청년'이라는 묶음으로 함께 발맞추어 활동한다는 취지가 좋았고, 글을 강력한 콘텐츠로 인식한 점 또한 좋았다. 글은 적어도 '나'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꿔놓았고, 바뀌어가는 과정을 사람들과 나누며 글은 때때로 글쓴이가 의도한 것 이상의 의미를 서로에게 전달한다는 걸 깨달았기에, 글을 주제로 한 대학생들과의 만남을 ‘청춘스럽게’ 도전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이내 샘솟았다.
첫 번째, 청춘과 청춘의 만남
'BIRTH'와 '좋지원'이라는 팀과 한 조가 되었다. 이 사실을 사전 질문지를 받으며 알게 되었다. 화상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기로 약속한 하루 전, 그들의 궁금증이 도착했다. '나에게 무엇을 물어볼까?', '만약 내가 답할 수 없는 내용이라면 어떡하지?'를 파일을 열어보기에 앞서 고민했다. 내용을 확인하며 번져가는 미소를 이내 실감하게 되었지만. 모든 관계는 서로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한다. 호기심 어린 눈빛과 애정이 담긴 목소리에서 친밀함이라는 싹이 튼다. 그들의 관심을 느끼며 질문들에 꼼꼼히 답을 달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어떤 글을 가장 쓰고 싶으신가요?"처럼 오래 고민해보아야 하는 물음도 있었고, "혹시, 어디 출신이신지 알 수 있을까요?"와 같은 재미난 물음도 있었다. 40여 가지나 되는 물음 중에서 눈에 띄는 건 역시 도시재생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혹시 조치원에 가보신 적이 있으신가요?"라든지, “도시재생에 대한 글을 쓴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키워드 3개가 무엇인가요?"같은 물음에서는 작성을 잠시 멈추었다. 안 가보았다고 대답하고 인터넷으로 찾아서 대답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의 가치관과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한 가지를 약속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서포터즈들과의 만남 때 함께 나누었다.
만남은 1시간 넘게 진행되었다. 사전 질문에 응답하는 형식으로 대부분의 시간이 흘러갔다. 여러 질문들에 답변을 적으며 스스로 얻은 것도 있지만, 말로 꺼냄으로써 얻은 게 더 많았다. 내가 하는 말에 눈을 맞추고, 묵묵히 끄덕이는 그들을 보며 수용받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글 또한 마찬가지이다. 글을 작성하면서 얻는 것도 있지만, 작성한 글을 사람들과 나누며 얻는 것이 클 때가 많다. 글을 쓰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글을 주제로 서로의 생각이나 감정을 함께 나누는 데에 큰 의의를 두는 나에게는 그 순간이 더없이 특별하다. 이들과의 만남은 경험의 중요성을 체감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간접'보다는 '직접'이 더욱 값진 경험을 주며, 조치원에 가 보지 않고 조치원을 이야기하는 건 역시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확신을 갖게 하였다.
두 번째, 청춘과 지역의 만남
조치원으로 가는 새마을호에 탔다. 기차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낯선 도시로 간다는 사실에 설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창에 비친 나의 표정만큼이나 생소했다. 한 지역을 알아가는 과정은 관계와 유사하다. 지역에 대한 관심이 클수록 애정은 늘어나기 마련이니까. 홍은동 토박이인 나는 우리 동네에 대해 많은 걸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공용주차장으로 변한 그곳이 왜 포방슈퍼라는 정거장으로 불리는지, 현재는 피씨방이지만 영어학원이었던 그곳에서 들었던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에 이르기까지 동네가 변화되어 온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며 경험했다. 서른세 해 동안 달라지던 모습, 그 역사를 체험한 나에게 달라져가는 동네는 새 친구를 만나는 기쁨도, 옛 친구를 떠나보내는 아쉬움도 들게 했다.
조치원은 어떤 곳일까. 처음 방문하는 외지인에게 어떻게 비칠까. 조치원은 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지역으로 철도와 함께 성장해왔다고 한다. 고려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분교가 위치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조치원은 보다 살기 좋은 지역으로 거듭나기 위해 2018년부터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였다. 도시재생은 인구의 감소, 사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주거환경의 노후화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도시를 경제적, 사회적, 물리적, 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조치원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까. 기차에서 내려 조치원역 광장으로 나아가는 걸음이 가볍게 느껴졌다.
조치원의 첫인상은 낯설지 않았다. 버스정류장, 택시, 식당, 카페 등 기차역에 내리면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조치원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는 게 좋을까. 주민들이 사는 곳곳을 살펴보고 싶다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호기심이 이끄는 곳으로 자연스레 걸어갔다.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 따르면 세종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36.5세라고 한다. 젊은 사람들이 예상보다 많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역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세종전통시장에는 돌고 돌아 도착했다. 반찬 가게, 채소 가게, 정육점, 분식집 등 시장하면 떠오르는 여러 가게들이 양쪽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따금씩 상인과 주민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얼굴의 반은 마스크에 가려져 있었지만 함께 한 세월만이 전할 수 있는 정겨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시장의 규모로 보아 평소 많은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전국 각지에 대규모 마트가 들어서며 시장은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뜸해지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세종전통시장은 조치원 상권의 중심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만약 코로나-19가 유행하지 않았다면 더 활기를 띄었을 것이고, 소란스럽고 분주한 틈에서 피어나는 사람들의 구수한 웃음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뒤늦게 지도를 확인하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조치원역과 조천천을 사이로 명동초등학교, 조치원 문화정원, 조치원 성당에 이르기까지 두루 살펴보았다. 일반 동네처럼 인적이 많은 곳도, 적은 곳도 있었다. 사람들의 움직임은 대체로 여유로웠고 분위기에 적응이 된 나는 제 걸음으로 골목, 골목을 누볐다. 번화가에서 벗어날수록 낡은 외관의 건물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조치원스럽게 보였다. 도시재생사업은 오래되거나 낙후된 도시를 처음부터 새롭게 만드는 재개발 사업이 아닌, 정말 필요한 부분을 하나씩 고쳐서 그 지역을 살기 좋게 만들어 가는 사업이라고 한다. 옛것과 새것이 함께 공존하며 지역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곳부터 점차 발전해가는 과정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기대가 되었다. '변화'라는 커다란 길목에서 '열정' 가득한 서포터즈 청년들이 희망의 '새싹'을 함께 심고 있기 때문이다.
육교를 건너 둘러보았던 곳에서 '변화'를 더욱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침산리라는 지명으로 불리던, 조치원역 광장의 반대편에는 듬성듬성 위치한 아파트들이 눈에 띄었다. 멀찍이 보았을 때는 도시적인 느낌이 풍기기도 했지만, 걸음을 옮길수록 ‘조치원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새뜰마을에 발길이 이르자 새 단장한 듯한 벽화를 만날 수 있었다. 조치원의 특산품 복숭아가 먹음직스럽게 열린 담벼락을 구경하며 숨을 골랐다. 고요했다. 사람이 없는 쾌적한 거리 위에서 올려다보는 푸른 하늘이 걸음을 멈추게 했다. 다시 길을 따라 오르니 침산공원이 나왔다. 충령탑 옆에 위치한, 늘어선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돋보이던 공원 벤치에 앉아 욱신거리는 다리를 주무르기도 하고, 탁 트인 경관을 넋 놓고 바라보기도 했다.
조치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길에 이르렀다. 미세먼지가 걷힌, 청명한 날씨와 함께 펼쳐진 전경에 탄성을 자아냈다. 지역의 예스러움과 새로움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듯한 경치는 '변화'에 대한 나의 생각을 확고하게 했다. 변화는 어느 한순간, 특별한 계기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춧돌을 발판 삼아 덧대고 입혀가며 서서히 시작한다. 조치원은 변화 한가운데에 있다. 지역의 도시화가 아닌 터전 그대로의 모습을 보전하며 조금씩 탈바꿈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는 청년들이 한몫을 하고 있다. 대학생 서포터즈들이 도시재생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지역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청년 중 한 명인 나는 조치원의 오늘과 만났다. 내일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는 걸 보니 어느새 정이 들었나 보다.
조치원의 변화는 거주하는 주민들이 더욱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조치원의 하루를 보았지만, 주민들은 변화의 과정을 여러 해에 걸쳐 생생하게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기대된다. 대학생 서포터즈들과의 활동을 '작가'로서 잘 해낼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을 감내하고 '도전' 하였기에 나는 조치원과 만나고, 알게 되고, 애정을 갖게 되었다. 도시재생사업이 지속되는 한, 청년들의 '관심'과 '애정'이 식지 않는 한 조치원을 살기 좋은 도시로, 시대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조치원스럽게' 바뀌어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