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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들의 놀이터, 조치원

작가(라예진)_조치원 도시재생 청년 서포터즈 6기


내 청춘의 찬란함을 믿는다.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을 내 청춘의 찬란함을 믿는다. 

가장 뜨겁고 아름다운 청춘이길.

조그마한 감정에도 가슴 뛰는 청춘이길.

커다란 감정에도 함부로 흔들리지 않는 청춘이길.      

헤르만 헤세청춘은 아름다워」 중에서     


나에게 조치원은 대학 캠퍼스이다. 고려대와 홍익대 캠퍼스가 있는 곳으로 이미지가 강렬하다. 그리고 두 대학의 이미지 때문일까. 호랑이 같은 열정과 현대 미술 같은 세련됨이라는 상(像)이 마음속에 이어진다. 작지만 활기 넘치고, 세련된 감성이 묻어날 것 같은 동네. 조치원을 향하는 KTX안은 설렜다.              

                         

광명역에서 탄 KTX는 얼마 되지 않아 오송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로 환승했다. 드디어 조치원역 당도. 평일 한낮 조치원은 조용하고 아늑했다. 조치원역의 역사를 담은 전시 공간이 눈이 들어왔다. 조치원역은 1905년에 경부선 개통과 함께 건립된 역사가 오래된 곳이었다. 70호 정도만 거주하던 작은 시골 마을이 주요 거점 철도역이 되면서 영광이 시작되었다. 현재 신역사 이전의 과거 조치원역의 모습들이 정감있게 다가왔다. 필름 사진으로 남겨진 역사의 모습이 과거의 영광과 활기, 그리고 따뜻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2004년 경부고속철도 개통 이후 역의 위상이 다소 쇠퇴했지만 역사는 그대로 그 공간에 있었다.


시원하게 뚫린 역 앞 광장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띤 것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대학생들과 어르신들의 교차하는 발걸음이었다. 대학 잠바를 입고 이어폰을 낀 채 어디론가 가는 대학생들, 그리고 봄과 같은 옷차림으로 가벼운 걸음을 옮기는 어르신들. 역 앞에 큰 원의 로터리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마치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 간의 교류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젊은이들의 열정과 어르신들의 삶의 연륜이 한데 어울려져 다시 비상을 꿈꾸는 곳이 조치원이 아닐까 싶었다. 역사에는 ‘함께해요! 청춘 조치원 프로젝트’라 써진 큰 간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오랜 도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풍부한 청춘 자원을 활용해 도시를 재생하고자 하는 조치원의 의지가 느껴졌다.      


나에게 도시 재생은 ‘작은 발견’이다.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공간에, 작은 삶의 공동체가 다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발견할 때 작은 경이를 느낀다. 마치 물이 말라버린 볼품없는 계곡의 어느 바위 뒤에 생명의 기운을 강하게 뿜어내는 짙은 녹색의 이끼 무리를 볼 때처럼 말이다. 건물의 외관은 허름해 볼품없어 보여도 속은 시작과 설렘으로 생기가 넘친다. 조치원도 곳곳에서 도시 재생의 손길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었다.               

역에서 조금 걷다 보면 상업지구인 ‘왕성길’이 나온다. 이름처럼 과거 왕성한 상업 활동이 이뤄졌던 곳이라고 한다. 평일이라 사람이 적었지만, 잘 정비된 거리가 걷기에 알맞았다. 거리 바닥에 써진 위트있는 문장이나 명언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역 앞에 바로 위치한 ‘세종전통시장’도 즐거운 볼거리였다. 시장 역시 잘 정비되어 있었고, 여느 유명한 관광지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가벼운 옷차림에 밝은 노래를 들으며 햇살이 가득한 사진을 찍으니 여행의 즐거움이 차올랐다. 그렇게 넋 놓고 지나가다가 느낌이 남다른 골목 입구가 보여 호기심에 들어가 보았다. 골목을 들어서니 시장과는 완전히 분위기가 다른 거리가 펼쳐졌다. ‘52M 거리가 주는 행복, 조치원 테마거리’라는 글이 나를 반겼다. 거리는 따뜻하고 친근했다. 인근 대학생들과 협동해서 만든 다양한 포토존과 벽화가 멋들어지게 펼쳐졌다. 상점들도 특색 있었다. 과거 학창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소품을 파는 가게, 옛 교복을 대여해주는 가게 등이 인상적이었다. 푸른 식물이 가득한 카페도 발길을 머물게 했다. 그중 골목 지붕에 꾸며놓은 ‘마실 루프탑’이 가장 좋았다. 다양한 공연과 문화 행사가 펼쳐지는 곳으로, 누구든 시장 음식을 포장해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전통시장 안에 다양한 인문학 행사가 열리는 옥상 공간이 있다는 게 멋졌다. 잠시 그곳에 앉아, 해가 지는 저녁에 동네 주민들이 모여, 얼굴을 맞대고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이렇게 창의적인 공간에 사람을 더하니 도시 재생의 그림이 더욱 생동감 있게 완성되었다.          

평리 문화마을에서 만난 다양한 타일 벽화도 인상적이었다. 꽃을 주제로 한 타일 벽화가 봄 햇살에 반짝거렸다. 동물, 나무 등을 주제로 한 벽화도 정겨웠다. 낡은 담장에 어울리는 과하지 않고 소박한 벽화에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게 운치 있는 주택가를 쭉 걷다 보면 ‘조치원 문화정원’을 만나게 된다.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아담한 크기였지만, 감각적인 건축물들과 잘 꾸며진 정원이 시선을 사로잡았고, 효율적으로 공간이 구획된 느낌이었다. 기존 폐정수장을 리모델링하여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창조된 곳으로 2019년에는 대한민국 공간문화 대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문화 정원은 크게 4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양한 소통의 장인 ‘뜰’, 창작 공간인 ‘원’, 기억을 위한 전시 공간인 ‘터’, 그리고 마르지 않는 전시 공간인 ‘샘’으로 이루어졌다. 마을의 버려진 공간을 청년과 주민들을 위한 창조의 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문화가 절로 흐르는 것 같은 정원의 풍경이 어떤 행사가 열려도 멋진 아우라를 제공해줄 것 같았다. 하늘도 보고 싶어 정원 한가운데 벤치 위에 가만히 누워 봤다. 정원 한 켠에 마련된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이곳은 문화 공간이자 놀이터이자 작은 쉼터였다.                  

어느덧 어둑해진 조치원의 거리. 서울로 올라가기 전 아쉬운 마음이 들어 역 앞 영화관에 들렀다. 공교롭게도 내가 방문한 날은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개봉한 날이었다. 20대 청춘 남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에 나도 모르게 이끌려 보게 되었다. 조치원의 감성이 나를 이 영화와 연결시켜 주었나 하는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영화 속 강하늘은 밋밋한 우산에 그림을 그려 단 하나밖에 없는 예술 작품을 만드는 우산 공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기능만 있을 것 같은 우산에 예술을 더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준다. 우산 공방처럼 마술 같은 순간을 계속해서 꿈꾸고 시도하는 영화 속 청년들의 모습이 조치원의 공간과 한 데 어울려 여운이 깊었다.      


떠나기 전, 역 앞 광장이 잘 보이는 예쁜 카페에 앉아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동네가 이 움직이는 사람들의 역동을 충분히 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치원은 아직도 꿈꾸며 실험 중이라고 생각한다. 청춘들을 위해 조치원의 다양한 공간들을 그들의 놀이터로 만들어 준 어른들의 과감한 응원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내일의 조치원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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