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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와 트렌드, 그 사이 어디쯤에서

작가(유승민)_조치원 도시재생 청년 서포터즈 6기

서울에서 가장 낡고 오래된 동네창신동     


허름한 외벽, 옛날 간판,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전깃줄. 아찔할 정도로 가파른 경사에 다닥다닥 붙은 벽돌집.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법한 좁은 골목길.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하는 동네다.      


이곳을 찾는 이들에겐 아날로그적 감성을 동반한 고즈넉함이 전해지지만, 이곳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주민들에겐 그저 골칫거리인 낡은 동네다. 갈림길에 선 정부의 고민이 시작된다. 동네를 싹 갈아엎고 (재개발) 대형 아파트단지를 세울 것인가. 어떻게라도 잘 보존해서 (도시재생) 주민들이 살기 좋은 마을로 꾸려나갈 것인가.      

수도권 내 낙후한 동네들은 그렇게 차례로 제모습을 잃어갔다. 80년대, 90년대의 모습을 간직한 동네는 드물다. 땅을 갈아엎고, 차곡차곡 발라진 시멘트 위로 높은 건물이 들어선다.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아파트 천지다. 동네만의 개성은 사라진 지 오래다. 창신동은 그런 의미에서 고민이 깊었다. 한국전쟁 이후 몸뚱어리만 건사한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해 생겨난 마을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와 근현대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동네. 밤낮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와 원단 나르는 오토바이 소리로 메워지는 봉제 거리. 병풍처럼 마을을 에워싼 화강암 절벽에서 바라보는 서울 하늘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개발과 보존끝없는 딜레마      


당장 하루하루 삶이 버거운 이들에겐 역사며 개성이 무슨 소용일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예전 프로그램으로 취재차 창신동을 찾았던 날, 단칸방에 사는 주민을 만날 수 있었다. 세입자였다. 개발도 보존도 그들은 안중에 없었다. 어차피 재개발되는 순간 더 열악한 길거리로 쫓겨날 운명이니까. 그가 말끝을 흐렸다. 새로 지어질 아파트는 그들의 것이 아니었기에. 없는 살림이지만 이웃들과 옹기종기 모여 사는 게 낙이라 했다. 그런 그의 앞에서 재개발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문득 공허해지기도 했다.      


고심 끝에 서울시가 내린 결론은 도시재생이었다. 창신동에 거주하는 주민 대다수가 고령자인 점을 감안해 교통수단부터 늘려나갔다. 수도나 전기 문제로 고충을 겪는 이들에겐 지원사업을 제공했다. 채석장이 보이는 지점에 카페를 만들고, 을씨년스러웠던 공터에 아이들이 뛰어놀만한 대형 놀이터를 만들었다. 물론 이러한 결과물이 주민들의 고충을 십분 해결했다곤 볼 수 없겠다. 그럼에도 도시재생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던 건 한 번 사라진 마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어금니에 충치가 생겨 치과를 찾았을 때 "그냥 뽑고 임플란트하세요." 라고 말하는 의사와 "제가 살려볼게요." 라며 남은 치아로 고군분투해주는 의사가 있다.  어떻게든 본연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발버둥치는 절박함이란 그래서 더욱 애틋하다.      


창신동은 그렇게 도시재생 1호 사업지가 되었다. 억소리나는 예산이 투입됐고 사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뒤따라 전국 곳곳에 도시재생을 시작하는 지자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요즘 눈여겨 보는 곳은 세종시 조치원이다. 개발과 보존의 끝없는 딜레마를 여러 번 취재해 오면서 늘 마무리단계에서 바라봤을 뿐 과정을 지켜본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글로 기록해보겠냐는 제안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웠다.    

  

'청춘'이 만날 '조치원'     

조치원에서 이루어지는 도시 재생사업이 유독 눈길을 끄는 건 '청춘'이라는 타이틀 때문이었다. 2018년부터 청년 서포터즈를 모집해 올해까지 총 810명이 활동을 해왔다. 대학생들에겐 도시재생사업이 어떻게 비춰질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딛을 그들에겐 동네가, 마을이, 지역공동체가 어떤 존재로 다가갈지 몹시 궁금하다.       


마포구 망원동에 망원재래시장이 있다. 나름 명물이다. 망리단길 대표 관광코스가 되기까지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었다. 주차공간이 협소하고 현금으로만 결제가 가능한 기존 재래시장이 가졌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새벽배송과 간편결제에 익숙한 2~40대 소비계층을 끌어들여야 했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SNS와 방송을 통해 소개되면서 가장 먼저 달라진 점이 있다. 청년들이 망원시장 곳곳에 점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홍어무침을 사러 가면 시음용 막걸리 한 컵 내밀며 한잔하시라며 넉살 좋게 웃는 청년이 있다. 그 옆 가게엔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나무주걱으로 떡볶이 국물을 휘젓는 어머니가 서 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투명 가림막을 설치해놓고 수타면을 만드는 청년이 있다. 청년의 짜장면집 옆엔 갓 캐내 온 쑥갓이며 산나물을 바구니에 내놓고 파는 할머니가 앉아있다. 강원도에서 막 도착한 싱싱한 오징어라며 목청껏 호객하는 청년. 이렇듯 망원시장은 남녀노소가 어우러져 공생이 이루는 곳이 되어있었다. 노년층의 연륜과 여유로움, 청년층의 활기와 열정이 어우러지면 발길은 자연스레 몰린다.     


세종시는 이번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360억이라는 예산을 투입한다. 5년에 걸쳐 이루어지는 사업이다. 그 도약에 함께할 이들이 청년이란 뜻에서 ‘청춘조치원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쇠퇴해버린 구도심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다. 시민들의 주거문제와 일자리 창출에 힘을 쏟고, 교통수단이나 낙후한 공공시설과 같은 고질적인 문제들도 개선될 예정이다. 문화산업, 지역공동체, 지역상권, 청년창업과 같은 주거 인프라도 구축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기대를 걸고 있는 테마는 재래시장이다. 조치원에는 1770년(영조 46년)부터 무려 250년 동안 맥을 이어온 전통시장이 있다. 제주에 가면 꼭 찾는다는 동문시장, 종로 5가의 명물 광장시장, 현대식 전통시장인 망원시장, 전국 최대규모인 강원도 정선 아리랑시장, 부산 앞바다와 어우러지는 자갈치 시장. 경남 하동의 화개장터. 전국에 수백 개가 넘는 재래시장이 존재한다. 고장의 특색을 가장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장이다. 지역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산물인 복숭아로 테마공원도 만들고, 젤리도 만들고, 디퓨저도 만들겠다며 발벗고 나섰다는 소식이 연일 들려온다. 250주년을 맞이해 역전 3km에 달하는 도로를 토요장터거리를 조성하겠다는 소식도 반갑다. 어떤 모습으로 탈바꿈할까. 청년들의 활동이 기대되는 이유다.       


브런치 작가 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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