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수호)_조치원 도시재생 청년 서포터즈 6기
조치원 도시재생 서포터즈 6기 활동의 두 번째 막이 열렸다. 이번 활동에서 처음 쓴 글이 조치원의 도시재생사업과 관련한 자유주제였다면 두 번째 글은 서포터즈 청년들과 나눈 대화를 토대로 작성될 예정이었다.
네 개의 조와 한 팀이 되었다. 네트워크 행사를 통해 만나게 되는 서포터즈 청년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만남을 하루 앞두고 그들이 운영하는 SNS 계정에 들어가 보았다. 그들은 '전통시장 활성화'를 주제로 활동하고 있었다. 각 조의 아이디어 실현 과정을 모니터링하며 파악한 공통점이었다.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내용들을 메모하며 같은 청년의 범주에 속하지만 시작에 가까운 서포터즈 청년들과 끝자락에 맞닿은 나와의 만남은 어떠할지 한편으로 기대가 되었다.
두 조와 만남이 이루어졌다. 나머지 두 조는 학교 일정으로 불참하게 되었다. 주어진 40분 정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아이디어 구상 동기나 과정,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나누어야 했다. 각 조의 조장들을 통해 조 이름 소개와 그동안의 활동에 대해 간략하게 듣는 데에만 15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서로에 대한 소개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적인 얘기를 하기에는 무리이며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청년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들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들은 저마다 어떠한 관점으로 조치원을 경험했을까?'
참여자들의 고유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주로 꺼낸 질문은 "어떤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였다.
그들과 나는 청년이라는 점 외에도 또 다른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는 아직 조치원에 서툴렀다.
익숙하지 않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간혹, 어렸을 때 조치원에 살았다거나 성인이 되어 방문한 적이 있기도 했지만, 조치원에 처음 가 본 청년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도시재생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조치원을 알게 되었고, 들르게 되었다. 서포터즈 청년들과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어진, 대면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을 그들의 생생한 경험을 듣기 위해 사용했다.
비록, 화면은 켜지지 않았지만, 목소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진심으로 추억을 회상하고 있다는 것을. 서포터즈 청년들은 전통시장을 떠올리며 오일장, 테마거리, 맛집을 얘기하기도 했고, 조원들 간의 특별한 우정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다. KTX를 타고 갈 때면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도 했는데, 여행을 떠나는 듯한 기분은 나만 느낀 게 아니었다. 서포터즈 청년들 한 명, 한 명의 목소리는 그들의 이야기로 상상하는 나에게 함께 조치원을 다녀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했다.
우리는 도시재생사업이 균형 있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력하는 역할도 수행하지만, 설레는 마음을 가진 한 명의 여행자로서 조치원에서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도 수행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세 번째 조치원 방문은 ‘어딘가를 뜯고, 고치고, 개선해야 보다 살기 좋은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눈에 쌍심지를 켜는 게 아니라, 한 명의 여행자로서 순수한 마음으로 먹고, 마시고, 걸으며 조치원의 정수를 경험하기로 결심했다.
조치원에 도착하여 처음 방문한 곳은 당연하게도 전통시장이었다. 서포터즈 청년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리며 냉면집을 찾았다. 식당 이름은 기억나지 않고, 사장님 혼자 운영하는 곳이며, 양이 많다고 들었는데 아무리 검색해도 어느 곳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결국, 유력해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가 냉면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향한 곳은 테마거리에 있는 루프탑이었다. '마실 커피'에서 주문한 커피를 받아 들고 계단을 올라갔다. 더운 날씨 탓에 예쁘다는 느낌을 받긴 어려웠으나 아무도 없는 공간에 혼자 앉아있는 기분은 상쾌했다.
우리는 사람에게 둘러싸여 살아간다. 조치원에 와서 루프탑에 도착하기까지 많은 사람들을 지나쳤다. 버스에서, 기차에서, 시장으로 걸어오며, 시장을 걸으며, 점심을 먹으며, 커피를 주문하며 주변 사람들을 자연스레 의식했다.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 심지어 눈빛이나 걸음걸이조차 누군가에게 나를 판단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서서히 녹아가는 얼음에 시원해진 아메리카노를 입에 머금고, 선풍기를 바람을 쐬며, 청량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오직 나만이 유일한 존재인 이곳에서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그들을 의식하는 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빈 커피잔을 반납하고 시장으로 나왔다. 시장의 활기가 피부로 전해졌다. 시장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이다. 상인과 손님이 뒤섞여 시장 곳곳은 저마다의 인상을 띤다. 상인과 손님은 대부분 주민이라는 교집합으로 묶여있다. 한 장소에서 오랜 세월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상품의 경쟁력도 필요하겠지만, 흐른 세월만큼 단단해진 관계가 또한 중요하다. 관광지 개념의 시장이 아닌 지역 시장의 특성상 새로 유입되는 사람보다 한 번 방문했던 사람이 다시 찾을 가능성이 높다. 조치원 전통시장을 걸으며 보았던 채소를, 고기를, 떡볶이를, 떡을, 반찬을 구입하는 모습은 결코 오늘 하루 우연히 만들어진 장면이 아니라는 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상인과 손님으로서의 굳고 굳어진 신뢰를 말미암아 내일도, 모레도 다시 만날 수 있는, 익숙한 광경임을 알아차렸다. 건네는 손과 받는 손 사이에 퍼지는 미소가 걸음을 옮기는 나의 눈가로 다가와 미세한 떨림을 느끼게 했다.
시장을 나와 역 주변을 걸었다. 일찍이 역에 들어가 열차를 기다리기에는 아쉬워서. 보이는 풍경들이 어느새 익숙하다. 저 길을 따라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저 모퉁이를 지나면 무엇이 보이는지, 상상하는 내 앞에 환하게 펼쳐졌다. 벌써 세 번째 방문이다. 지난 두 차례의 마음가짐이 또렷이 기억난다. 첫 번째는 낯선 지역을 처음 방문한다는 긴장과 설렘. 두 번째는 의미 있는 무언가를 발견해야 한다는 부담과 압박. 그리고 세 번째인 오늘에 이르러서야 한 명의 여행자가 되어 조치원을 둘러보았다. 여유가 숨 쉬는 도시이다. 서울에서의 속도에 지쳐 여전히 '해야 된다'라는 생각에 쫓기며 서두르는 나에게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고 도시의 분위기는 말한다.
여느 관광지보다 특별히 기억나는 경치나, 음식이 적다. 보거나 먹기 위해 찾아다닌 곳이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느 관광지보다 생생하게 떠오르는 게 하나 있다. 조치원 곳곳을 걷고, 보며 느꼈던 발자국의 시간이다. 때때로 소란스러우나 조용한, 때때로 서두르나 여유로운, 때때로 북적거리나 한적한 조치원은 서울로 돌아와 3주라는 시간을 보낸 나에게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누군가 나에게 조치원이 어떤 곳인지 묻는다면 나는 고민이 있거나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월차를 내고 마음껏 걷고 싶은 도시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하고 싶다. 서울에서의 하루가 또다시 지나간다. 조치원을 다시 만날 그 어느 날을 기약하며, 조치원으로의 여정에 흐릿한 쉼표를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