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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플랫폼 May 09. 2022

느티나무 / 나무샤프

  

"네오야! 이거 보호수 느티인데 샤프 한번 깎아봐" 

나무 펜 만드는 카페의 지인이 느티나무 블랭크 몇 개를 선물로 들고 공방에 들리셨다. 목공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인지라  늘 나누는 이야기도 나무 이야기가 많다. 그날도 마을 어귀에 서있던 보호수 느티가 태풍에 큰 가지가 찢어진 이야기며 엊그제 제재한 측백나무 속이 너무 썩어서 속상했던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한참 그분 빈자리에 놓인 나무를 만지며 살펴보다 무늬 좋은 느티나무 동가리 하나를 들고 공방으로 올라선다. 


오늘은 느티나무 샤프 하나 깎아보자


느티나무 샤프 만들기

1. 길이 116mm, 사면이 20mm로 나무 재단하기

2. 재단된 나무에 샤프 본체가 들어갈 구멍 뚫기

3. 구멍에 동관 넣기

4. 블랭크 뒷면 정리하기

5. 목선반에서 샤프 형태로 깎기

6. 조립하기

     


나무로 샤프를 만들려면 길이 12센티가 살짝 못 미치고 두께는 2센티 정도의 각재(이것을 블랭크라고 부른다)가 필요하다. 

- 재단 완료된 블랭크 -



이렇게 재단된 나무에 드릴로 길게 구멍을 뚫고는 동관에 본드를 발라 끼워준다.

블랭크와 동관



이렇게 동관을 품은 나무는 습기에도 휘지 않을뿐더러 내구성도 높아진다. 본드가 마르길 기다려 블랭크의 뒷부분을 살짝 깎아 본드 자국도 없애고 동관과 평을 이루도록 한다. 

- 블랭크 평 잡기 -



목선반으로 걸어 초벌 깎기를 한다.

- 목선반 -




목선반에 블랭크 걸어서 깍은 모습




블랭크를 깍을때 나오는 잔재

 


처음부터 잘 깎기는 사실 쉽지 않지만 대여섯 자루만 깎아도 금방 선물해도 좋은 만큼의 모양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배우는 게 어렵지 않고 성과도 금방 나오다 보니 처음 목공을 접할 때 배우면 나무가 주는 다양한 즐거움을 만끽하기에 참 좋은 분야다.


나무 샤프는 참 다양하다. 만드는 나무 종류도 다양하고 깎는 사람에 따라 모양도 다양하다. 사실 처음 깎을 때에는  다른 사람들이 만든 걸 흉내 내지만  점차 자신만의 모양이 잡히기 시작한다. 나도 많은 샤프를 만들면서 나만의 샤프 형태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제일 좋아하는 건 우리가 잘 아는 샤프 기본 형태에 아무 멋도 내지 않은 것이다. 이 기본형의 나무 샤프가 나무의 멋을 제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단순할 때 나무가 가진 본연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난다. 여기에 무얼 더할까. 


 잘 깎은 블랭크에 사포 작업이 끝나면  마감재를 발라 주는데  무늬가 확연히 돋보이고 나무를 오염이나 습기로부터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마감재도 끝났으니 이제 조리만 해주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유니크한 나만의 샤프가 완성이 된다


   

- 나만의 샤프 -

  

그날 그분이 가져다 주신 느티는 겉보기에는 느티 고유의 무늬를 가진 흠 없는 블랭크였다. 그런데 나무를 깎다 보니 뜻밖에 속 일부가 시커멓게 썩고 심지어 구멍까지도 나 있었다.

돌리던 목선반을 멈추고 멍하니 바라보게 되었다. 처음 겉보기에는 그리 단단해 보이고 화려한 무늬에 기대가 컸었는데......  


그렇지만 이 블랭크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른다. 수많은 블랭크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 친구를 버릴 수가 없었다.

살려보자! 먼저 굵은 사포로 블랭크의 썩지 않은 부분을 갈아서 고운 나무가루를 모은다. 나무가루에 목공용 본드를 넣고 잘 섞어 준 후 블랭크의 상처에 채워 넣고 상처 주변과 잘 어우러지게 다듬어 준다. 본드가 마르기까지 하루를 기다렸다.


다음날 일을 마치고 공방에 올라가 보니 본드가 덕지덕지 묻은 모습이 뭔가 안쓰럽다. 칼을 예리하게 잘 갈아 목선반 앞에 섰다. 조심스레 깎고 사포를 마쳤다. 마감재를 바른다. 제 모습이 확 드러난다

우와~ 멋지다!!!

상처 부분이 훌륭한 매력포인트가 되었다. 이렇게 이쁜 아이를 그냥 버렸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이런 멋진 친구를 되살려낸 안목에 스스로 감사하면서 찬찬히 살펴보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너도 많이 아팠구나! 속이 썩을 정도로 아팠는데 내색도 하지 않고 잘 버텨줘서 고맙다" 마치 친구의 깊고 아픈 고백을 들은 것 같은 그런 생각에 마음이 애잖해져 왔습니다. 그런데  블랭크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새살을 넣는 작업이 어쩌면 나를 위로했던 작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내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치도 않은 척 괜찮은 척 살아가지만 사실 매일 상처받고 시름하던 나의 내면이 이 느티 샤프를 통해 스스로 위로하고 치료하는 그런 작업이었는지 말이다

     

우리 모두는 아픔을 안으로 잘 갈무리하고 나아갈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해 덧나고 진물이 나는 경우도 있다. 나무도 그렇다. 우리 동네 입구에서 늘 마을을 지켜주던 느티나무도 그렇게 아픔을 감싸 않고 살아왔던 것이다. 난 그렇게 위로받았다. 그날 오래된 느티나무가 나를 안아 주었다. 


         

※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 않는다. 여러 과실수처럼 열매가 맛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예부터 늘 마을 어귀에서 마을을 지키는 나무였다. 한여름 더위에 지친 농부가 쉴 수 있도록 큰 가지를 펴 그늘을 만들어 주고 멀리 떠나 있던 사람들이 고향을 떠올릴 때 상징이 되어주던 나무이기도 하다. 지금도 시골 마을 곳곳에서 우리네 고향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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