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적는 기도

작은소설 006

by 숲풀 supul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존재하는지조차 증명할 수 없는 나의 마음을 명명백백한 글자로 자아내며 보이고자 하고 있습니다. 한 획, 한 자를 쓸 때마다 기도문을 한 음, 한 줄 읊는 것처럼, 온 마음을 담아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습니다.


신께 거짓 없는 기도를 올리고자 하면서도 사람은 거짓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나는 믿습니다. 그러니 지금 기도를 하는 것과 같이 적어내려가고 있는 이 글에도 한 톨의 거짓 없는 온전히 순수한 마음 뿐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순수를 뒤덮은 거짓을 읊어서라도 나의 기도가 글로써 전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 나는 햇빛이 스며 그 자체로 빛나는 것만 같이 보이는 성소聖所에 있습니다. 이 공간을 가득 채운 성스러운 빛은, 마치 새벽의 첫 빛인 것도 같고 저녁의 마지막 빛인 것도 같습니다. 이 장소가 어느 신을 위한 것인지는, 눈 앞의 신이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신께 기도를 올리는 것처럼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지금의 나에게 신이란 이 글을 받는 자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오로지 순수 만이 허락받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성스러운 빛 속에서, 나는 이 글을 받는 사람을 위한 최대한의 아름다운 거짓으로 나를 꾸미고 글자를 적어가고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최소한의 순수와, 분명하게 가지고 있을 최대한의 거짓으로 가장 아름다운 한 문장을, 가장 고운 한 기도를 드리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 장소를 채운 공기는 몹시도 가벼우면서 또 무겁게 느껴집니다. 나무의 시원한, 이끼의 축축한, 석회의 씁쓸한 냄새가 뒤섞여 울리고 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의 햇빛이 지닌 은은한 향내도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공기 중에서 빛이 끓어 넘치고 있습니다. 햇빛의 온기를 지닌 부드러운 뜨거움이 몸을 감싸고 있습니다. 그보다도 뜨겁게, 마치 끓어 넘치는 듯 느껴지는 건 나의 마음이 글 적는 기도에 다 담기지 못해 속에서부터 나를 태우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향이 짙어지니 혀 끝에서 그 맛이 녹아내리는 듯 합니다. 나의 가장 아름다운 거짓이 만들어내는 단 맛은 사탕으로 만든 실처럼 부드럽게 녹아 사라집니다. 공기는 조금 텁텁한 끝맛을 남기고, 나의 가장 고운 순수는 마치 방금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과 같이 짠 맛이 납니다. 나도 모르게 몇 번이고 그 맛을 목울대 너머로 넘기게 됩니다. 이미 입 안에서 녹아 사라졌는데도 말이지요.


나는 무릎을 꿇고, 나의 기도를 나의 신에게 전해 줄 낡은 종이와 흑연을 경건히 받쳐 올리고, 그 위로 몸을 둥글게 말고, 느리게 손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마치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은 움직임입니다. 아무런 처리가 되어있지 않은 거친 돌바닥은 닿은 부분부터 나를 차갑게 식혀가고 있지만, 내 안에서 새까맣게 타고 있는 불씨는 겨우 그 정도로는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거세게 타올라 나를 타고 넘쳐 이 곳까지 모조리 불태우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입니다. 나의 기도는 나의 세계를 전부 집어삼켜 재조차 남기지 않고도 모자랄 것임을 알기에,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를 전부 태운 후에는 나의 손을 타고 내려와 글 적는 흑연을 게걸스레 집어삼키고, 곧바로 나의 글 적은 기도로 옮겨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금의 수분도 허용하지 않고 빳빳하게 펴진 채 흑연의 궤적을 품은 오래된 종이는, 눈 깜짝할 새에 불씨에 집어삼켜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감싸는 공기는 여전히 차분하고, 아주 조금 노란 개나리 빛을 띄고 있습니다. 눈을 감고 있으면,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공기의 소리가 들립니다. 나라는 장작을 불태우는 열기의 소리도 울립니다. 이건 나의 착각인 걸까요? 아니면 정말로, 이제는 더이상 내 안에서는 만족하지 못해 밖으로 흘러나온 걸까요. 그렇다면 곧 이 기도는 불타 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단 한 문장의 소망을 남길 수 있다면, 이 마음은 불타 사라져도 이 기도는 나의 신에게 가 닿기를 바랄 뿐입니다. 비록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존재하는지조차 증명할 수 없는 마음 뿐이라도 말입니다.




#장면하나

#2000자

#짧은글

#작은소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