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말없는 관심
이탈리아에서 가장 좋았던 곳을 고르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정말 어려운 문제다. 이탈리아의 모든 도시와 마을에 다 발을 디뎌 본 것도 아닌데, 직접 가보았던 그 몇 군데 안 되는 곳들조차도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전부 좋은 기억으로만 남아버렸기 때문에.
하지만 나에게 가장 자주 생각나는 곳이라면, 의심할 여지 없이 시칠리아였고, 시칠리아이며 또 시칠리아일 것이다. 아무 연결고리가 없는 일상을 보내다가도 문득, 그 맑은 소금기를 머금고 불어왔던 바닷바람, 따가울 정도로 뜨거웠던 햇빛과 반대로 시리게 차갑고 상쾌했던 물보라가 떠올라 버리고 만다. 팔레르모의 투박한 골목길, 그 길목에서 마주친 낯선 사람들과의 시선, 시린 그 곳의 파도와는 다른 느낌으로 그 곳에서 가장 진한 색채를 띄고 있었던 젤라또, 겹친 손의 온기와 함께 받아든 젤라또가 혀 끝에서 녹아 끈적한 흔적만 남긴 그 순간의 여운, 고소한 밀가루와 향긋한 올리브, 비릿한 봉골레의 냄새가 뒤섞인 식탁 위의 공기가 떠올라 버리고 마는 것이다.
물론 시칠리아도 큰 땅덩어리를 가진 섬인지라 그 안에 많은 도시와 마을이 있지만, 나에게 시칠리아의 첫 인상은 팔레르모였다. 공항이 근처에 있기 때문에, 아마 그 곳에 발을 디딘 대다수의 여행자들에게 시칠리아의 첫 인상은 팔레르모일 것이다.
로마, 밀라노, 베네치아 같은 도시와 비교해, 시칠리아는 정보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일행 둘 모두는 시칠리아에 대해 이유 없는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지금 생각해 봐도 왜인지 그 이유를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런 마을일 거라는 것을 은연 중에 느끼고 있었던 걸까, 싶다. 그렇게 기대와 긴장을 동시에 끌어안고 비행기에서 내린 나와 일행에게, 시칠리아는 말없는 관심을 보내왔다. 아시아인이 거의 없어 그런 것 같다고 일행과 쑥덕거리며 추측해 볼 따름이었다. 일주일 정도 머물고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한 정도였다. 일행과 둘이서 길을 걷고 있으면, 길에서 마주한 사람들은 열에 아홉 나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그 말없는 관심은, 친절한 말없는 관심이었다. 팔레르모에서 마주치고 짧은 이탈리아어와 손짓 발짓으로 말을 나눈 모든 사람들이 나와 일행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숙소의 호스트, 숙소 앞의 젤라또 가게 직원, 역 앞의 식당 주인, 길에서 마주친 마을의 주민, 심지어 숙소에서 만난 여행자까지. 길을 걷다가 잠깐 눈이 마주치는 그 몇 초 사이에 얼굴에 띄워주는 미소가, 조금은 당황스러운 동시에 그보다 조금 더 기뻤다. 물론 그 사람 개인의 성격이 아주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었던 것일 수도 있고, 그 날 기분 좋은 일이 있었기에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웃어주었던 날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시칠리아의 팔레르모가 보내는 작은 소식, 무언의 애정 같은 것처럼 느껴졌다.
시칠리아의 팔레르모는 비단 사람들만이 그런 섬세한 관심을 보내주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곳에서 보낸 일주일 중 하루, 계획 없이 팔레르모의 바닷가를 따라 산책하다가 작은 해변을 발견했다. 사람이 없는 그 곳에서 나는 시칠리아의 바다를 마치 프라이빗 비치인 것처럼 즐겼다. 그 바다는 내가 본 것 중 가장 아름답고 섬세한 바다였다. 발 끝에 치대는 파도는 투명하고 부드러웠고, 바닷물에 젖은 모래는 밀가루보다도 고왔고 포근했다. 시칠리아가 내게 보내온 것만 같은, 부드러운 무언의 관심이었다.
바다와 바람, 햇빛까지 그랬으니, 나에게 팔레르모는 그 모든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유 없이 정겹고 애정이 넘치는 것들이 모여 한 덩어리가 되어서 다가왔다. 그리고 그대로 나의 기억 속에 박혀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