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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Jan 06. 2021

일기검사, 그거 인권침해 아닌가요?

일기 검사를 하고 싶은 백가지 장점과 포기하게 하는 한 가지 단점

"요즘도 학교에서 일기검사 하나요? 그거 인권 침해 아닌가요?"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외부 강사의 연수가 있던 날이었다. 밀린 일을 제치고 연수를 듣는 와중에 강사가 한 선생님께 질문을 던졌고, '일기를 검사할 때 -'라는 그분의 대답이 시작되자마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툭,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던졌다. 갑자기 온 주변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교실을 꽉 채운 선생님들 중 아무도 그 강사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일기 검사. 그래, 어찌 생각해보면 사생활 침해, 인권 침해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여전히 학교에서 일기 검사를 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담임 선생님의 재량에 달렸다고 답하겠다. 교육과정이나 학교에서는 일기검사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보통 일주일에 1회 일기 검사와 1회 독후감 검사를 하곤 했다. 실은 이 일기검사라는 게 간단할 것 같으면서도 제법 손이 많이 간다. 보통 25명쯤 되는 아이들의 일기를 읽어보고, 최소 한두 문장의 답변을 달아준다. 최소 25 문장 넘게 써야 하는 일이다. 일기라는 게 어쨌든 개인적인 기록이다 보니 아이들이 많은 곳에서는 할 수 없다. 결국 아이들이 없는 막간을 틈타 재빠르게 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가끔은 아침에 제출한 일기를 하교 전에 돌려주지 못하는 일도 생긴다. 그래서, 일기를 검사하지 않으면 교사도 편하다.


이전에 말했듯, 일기를 베껴 쓰다 걸려 혼이 난 적도 있을 정도로 나는 일기 쓰기가 정말 너무 싫었다. 그래서 가끔 일기를 제출하지 않는 아이들의 마음도 이해한다. 그래도 어떻게든 아이를 어르고 달래 한 편의 일기를 받아내고야 만다. 일기를 쓰느라 의자에 붙여놓은 엉덩이를 씰룩거리고 입을 삐쭉거리는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나도, 한 편의 글쓰기를 끝내기 전엔 그냥 보내줄 수 없다. 내용이 허술해도, 손글씨가 엉망진창이어도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연필을 이용해 종이에 '글'이라는 것을 쓰게 하려는 담임 선생님의 노력이다.


교사가 되고 보니, 일기 검사를 포기하기엔 장점이 너무나 많다. 우선, 일기만 한 글쓰기 연습이 없다. 하루에 있었던 일에 대해 쓰는 것이기에 소재를 찾기도 쉽고, 모든 일상을 쓰는 아이에게는 하루를 돌아보는 기회가, 기억에 남는 것 하나를 골라 자세히 쓰는 아이에게는 표현을 풍부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요즘처럼 '글' 이란 것을 쓸 기회가 없는 아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활동이다. 


일기 쓰기를 싫어하던 나는 성인이 된 후 마음이 복잡하고 생각이 정리가 안될 때면 싫던 일기를 썼다. 그 일기 쓰기가 나중엔 블로그가 되고 브런치가 되었다. 결국 일기를 쓰게 한다는 건 나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해주는 방법을 한 가지 더 배우는 방법이다.


교사와 아이 간의 라포를 형성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교사가 아이의 일기의 끝에 달아준 답장은 아이와 교사만의 대화가 된다. 가끔 아이가 일기에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을 적을 때면, 교사에겐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아이의 마음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요즘은 뭘 좋아하는지, 뭐가 힘든지, 고민은 없는지. 일기를 통해 교사는 아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써넣고 보니 일기 검사는 인권 침해다. 이미 교사가 읽을 거란 걸 알고 쓴 글이지만 어쨌든 개인적인 일을 읽는 것이니 아이의 사생활을 들춰보는 일이니 인권 침해가 아니라고 부정은 못하겠다. 어쩌면 교사라는 이유로 아이들의 사생활 존중에 안일했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만약 아이와 학부모가 적극적으로 일기 검사에 대해 항의하고 쓰지 않겠다고 버틴다면 교사로서는 이를 강제할 수 없다. 아니, 강제하지 않겠다.


인터넷에서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남자 친구에게 백가지 장점이 있어도 한 가지 단점 때문에 헤어지게 되는 법"이라 했다. 일기의 백 가지 장점이 있어도 한 가지 단점이 있으니 이제 그만 포기해야 하나. 어째 학교로 돌아가는 일은 생각할수록 복잡하고 머리가 아프다.




이래서 나는 수학이 좋다. 뭐든 공식에 넣고 윙, 하고 돌리면 정확한 답이 나오니까. 그러나 학교 안은 수학이 아니라서 그렇지 못하다. 생각할 게 너무 많은, 언어에 가까운 것 같다. 내가 가장 약한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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