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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Jan 03. 2021

선생님이 나를 영원히 싫어할까봐 무서웠다

그땐 왜 그렇게 사소한 것에도 자유롭지 못했는지

"이거, 선생님이 며칠 전에 읽은 일기랑 똑같은데?"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그때 당시 담임선생님은 매일 일기검사를 하시는 분이었는데, (그때는 귀찮게 왜 매일 일기를 써오라고 하시는 건가 했는데, 내가 일주일에 한 번 일기 검사를 하며 돌이켜보면 우리보다 더 귀찮았을 사람은 그 선생님이었다.) 나는 그놈의 일기 쓰기가 너무너무 싫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손글씨는 엉망진창이고, 매일 똑같은 일상이라 특별히 쓸 것도 없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내가 이전에 쓴 일기를 교묘히 베껴쓰기 시작했다. 처음 한두 번은 괜찮았지만, 결국 나의 비행은 담임선생님께 발각되고 말았다.


있는 듯 없는 듯 늘 조용하던 나의 비행을 잡아낸 담임선생님께서는 내가 일기를 베껴 쓴 날 만큼 반성문을 써 오라는 처분을 내렸다. 고작 3일 정도 베껴 썼었으니, 교사가 된 지금 생각해봐도 과하지 않은 분량에 글쓰기 연습까지 시킬 수 있는, 4학년 짜리가 감당할 만한 벌이다. 그러나 나는 이 일이 있고 나서 한동안 담임 선생님을 의도적으로 피하곤 했다. 이제 담임선생님 눈에 나는 일기나 베껴 쓰는 나쁜 애일 것 같았고, 내 작은 마음은 수치심으로 잠식되었다. 담임 선생님의 출산으로 인해 새 담임선생님이 오시기 전까지 나는 안 그래도 소심한 성격에 걱정까지 더해져 늘 주눅이 들어있어야 했다. 나는 선생님이 나를 영원히 미워할까 봐 너무나 무서웠다.




교사가 되고 경력이 늘면서 나는 머리에 무슨 레이더라도 단 듯이 아이들의 잘못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의도적으로 찾았다기보다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작게는 눈감아 주고 넘어갈 수 있는 사소한 일부터, 크게는 부모님과 상담을 해야 할 일까지, 과거 선생님들이 입에 달고 사시던 '선생님은 다 알아'가 진짜였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달까. 정말 선생님은 우리 반 아이가 무엇을 했는지 다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내게 더 의미 있게 다가온 사실은 아이의 잘못을 잡아내고 난 후 나의 기분이었다. 어릴 적의 나는 늘 담임선생님이 내 실수를 영원히 기억하고 두고두고 그런 애로 기억할까 봐 걱정했었는데, 정작 선생님이 되고 보니 아이가 저지른 잘못은 그저 흘러가는 하루의 일과일 뿐이었다. 학생 개개인에게 관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아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상습적으로 같은 잘못을 하거나, 남을 괴롭히는 고약한 악취미를 가진 게 아니라면 어느 정도 이기심을 부리거나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그저 하나의 성장 과정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잘못도 경우에 따라서는 선생님이 너의 행동을 인지하고 있다는 정도만 알려도 손쉽게 해결되는 것들이 많았다.


내가 겪고 보니, 잘못을 발견하고, 내가 아이의 행동을 인지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때에 따라 교정을 위한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 교사 개인의 감정은 없었다. 그런 행동을 한 아이에 대해 인간적인 평가절하나 분노, 미움 같은 게 전혀 들지 않았다는 뜻이다. 대게는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앞으로는 그러면 안돼.'의 제스처를 보이면서 나의 임무는 완수되고, 이 일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과거가 되어 흘러간다. 다음날이 되면 잘못을 저질렀던 아이의 기록은 다시 리셋되고, 새로운 하루가 새로운 기억과 함께 시작된다. 학교는 법원이 아닌지라, 잘못이 빨간 줄의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중대한 잘못이나 남을 괴롭히는 행위는 또 다르게 다루어진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내가 일기를 베껴 쓴 사건도 나의 담임선생님께는 그 정도의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다만 자의식으로 가득 차 모든 사람이 나만 보고 있는 것 같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그런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고, 나의 잘못을 온 세상이 알고 비난하는 것 같다고 느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이런 내 마음을 우리 반 아이들에게 전하려고 노력했다. 너희가 잘못을 저질러도 선생님은 언제나 같은 마음일 거라고. 그 일에 대한 책임이 끝나고 나면 그 일은 보내주고 우리는 다시 시작할 거라고.


그리고 아이들에도 관대한 만큼 나에게도 관대해지려고 노력한다. 한 사람이 태어나 자라서 결국 죽음이라는 끝을 맞이하기까지, 개인은 수없이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그로 인한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잘못을 깨닫고, 책임지고, 행동을 고쳐 나가는 것 모두 사람이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 일건대, 어쩌면 과거의 나는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게 굴지는 않았나 싶다. 나는 스스로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기대하는지, 얼마나 똑똑하길 바라는지, 얼마나 높은 도덕성을 지니길 바라는지. 각자가 가진 기준은 다르겠지만 요즘같이 날이 선 세상에 나 하나만큼은 스스로에게 너그럽기를, 나에게 다시 한번 주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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