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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Dec 31. 2020

교사에게 반말하는 학부모를 만날 겁니다, 반드시.

반말은 없었습니다. 반존대는 좀 있더군요.

"여러분은 현장에 나가면 교사에게 반말하는 학부모를 만날 겁니다, 반드시."


교대 3학년쯤 어느 날 음악 수업 시간이었다. 한참을 교과서에 나오는 동요의 박자에 대해서 열심히 수업을 하시던 교수님의 이야기가 어딘가로 새더니, 우리가 미래에 어떤 학부모를 만날 지에 대한 예언에 다다랐다. 교수님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에게 신규 발령을 받으면 분명 반말하는 학부모를 만날 거라고 경고했다. 마지막의 '반드시'를 말씀하실 땐 방금 가르치시던 동요 속 박자처럼 강세를 두듯 더욱 힘을 주셨다. 그리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럴 땐 맞 반말로 받아치라시더니 다시 수업내용으로 돌아가셨다.


담임교사의 나이가 어리면 학부모가 얕본다더라, 반말을 한다더라 하는 말을 처음 듣는 건 아니었다. 다만 실제로 겪어 본 적이 없기에 마치 도시괴담처럼 그런 일도 있대, 하는 식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실은 개인적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교사가 뭐 엄청난 사람도 아닌지라 극존칭은 바라지도 않지만, 그저 사회에서 만난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기에 서로를 존중하며 상호 간에 존대를 하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수업 중 교사와 학생 간의 존대도 당연한 세상이 되었는데, 조금 어리다는 이유로 무턱대고 반말을 하는 비상식은 학교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한 편으론 궁금하기도 했다. 과연 내가 교사가 되면 진짜 내게 반말하는 학부모가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거의 6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반말을 하는 학부모는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조금 찜찜하게, 흔히 말하는 반존대를 하는 학부모는 몇 보았다. '선생님 너무 젊다, 여기가 첫 학교예요?' 하는 식의 첫인사를 겸한 탐색전이라든지, '우리 애가 좀 까불긴 하지, 그래도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세요'하는 식의 반말과 존댓말이 반반씩 섞인 애매모호한 말투는 꽤 겪었다. 열정이 넘치던 신규 교사에게는 정말이지 만감이 교차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내게 교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똑같이 반말로 대응했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오'다. 아니오에서 한참 더 가서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소리다. 갓 발령받은 나는 벌써 아이를 초등학생으로 키워낸 학부모들에 비하면 솜털이 보송보송한 풋내기에 불과해서, 무슨 며느리도 아니면서 'ㅇㅇ이 어머님' 혹은 'ㅁㅁ이 아버님' 소리를 하며 학부모들에게 쩔쩔매곤 했다. 이런 불편한 상황도 한 해 두 해 근무하며 시간이 해결해 주었으나,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내게 불쾌한 기억으로 남았다.


우리나라가 워낙 나이에 민감한 터라, 모든 관계를 나이로 정의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다. 심지어 교사와 학부모 사이도 나이로 상하관계를 결정하고 싶어 한다. 교사와 학부모, '나이'라는 조건도 '상하'라는 관계도 어울리지 않는 사이에 말이다. 나이를 가지고 유세를 부리시고 싶어 하신다면 인간적으로야 얼마든 양보해드릴 수 있지만, 그렇게 어른 자리를 꿰차고서 나에게 교사로서 어떤 모습을 기대하는지는 다소 의문이 들었다.


흔히들 요즘은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교권이라는 게 없는 시대에 교사가 된 사람이라, 그 말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교사라는 직업의 사회적 위치가 다시 정의되는 과정에 가깝다고 본다. 이전 세대에서 교사가 학교 안에서 권위를 가진 직업이었다면, 이제는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직업 정도로 여겨지려는 참인 것이다. 다만 여전히 과도기이다 보니 요즘 학교에서는 처음 힘겨루기를 잘해야 주도권을 잡는다는 생각 아래 삼월이면 교사, 학생, 학부모 간에 정신없는 탐색전이 이어진다. 여차했다간 25명의 학생들의 담임이 아니라 25명의 학생과 학부모들을 상사로 둔 말단 직원이 될 처지가 된 교사는 3월이면 항상 곤두서 있다.


교사 역시 여느 직장인과 비슷하다. 다만 직장 생활을 함께 하는 주체가 학생들이라는 것이 타 직종과 차별화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교육이라는 특수한 직무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결국 서로에 대한 존중이 필수적이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그리고 이들의 보호자들까지 누구 하나 소홀히 여겨질 수 없는 곳이 바로 학교인 것이다. 그런 학교에서 학부모가 교사를 나이에 맞춰 얕보는 것은 교사가 수업 중 학생들에게 반말을 하던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과 같은 논리가 아닐까. 어쩌면 교사들보다 교권을 더 그리워하는 건 그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 시기를 헤쳐나갈 것이고, 언젠가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안정적인 시선이 정립될 날이 올 것이다. 이미 답은 나와있으나 모두가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일이 있는 것처럼, 지금 교사들의 상황이 딱 그런 상황이 아닐까.




나는 교사를 함부로 하는 학부모보다 오히려 존중하고 조심히 대해 주시는 분들을 훨씬 많이 만났다. 가끔은 너무 정중하셔서 내가 더 공손해지도록 만드는 분들도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존대했던 학부모들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나쁜 기억이 더 오래가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라고 해 두자.


정작 현장에 있을 때에는 이런 상황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못하다가 유학 휴직 중인 지금에 와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현실에서 한걸음 떨어졌을 때 오히려 현상을 더 정확히 볼 수 있게 되어서 인 것 같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나는 교권이 없는 시절에 교사가 된 사람이라, 교사의 권위가 되살아나야 한다거나 학교의 분위기가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가끔 일어나는 비상식적인 일만 아니라면 나는 지금의 학교가 좋다. 상식적인 학교의 모습이 정착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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