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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Dec 28. 2020

교사도 월급날이 좋다

내가 한 일에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게 좋다.

"오늘 17일 이잖아"


아침부터 나는 기분이 좋았다. 평소에 잘 떠지지 않던 눈은 오늘따라 깜빡깜빡 잘도 떠진다. 출근 준비를 하며 몇 번씩 은행 어플을 들락날락거렸다. '이번 달은 좀 늦네' 하며 집을 나서기 직전 다시 은행 어플을 확인했다. 'ㅇㅇ교육청'이름으로 월급이 입금되었다. 입꼬리가 씰룩씰룩하다 못해 귀에 걸린다. 매번 하는 출근인데 오늘은 발걸음이 가볍다.


나는 월급날을 좋아한다. 많지 않은 월급이지만 나 스스로 벌고 관리하는 게 좋다. 월급날이면 퇴근 후 카페에 앉아 은행 어플을 이용해 여기저기 필요한 곳으로 돈을 이체한다. 용돈 통장, 일반 적금, 비상금, CMA 등등 돈을 보내야 할 곳도 많다. 공과금을 내야 할 돈은 잠시 놔뒀다가 월말에 한 번에 이체를 한다. 새로 돈이 생기는 과정도 아니고 이미 받은 월급을 이리저리 보내는 것뿐인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건지 모르겠다. 모든 일이 끝난 후에는 한 달간 열심히 일한 끝에 맞이한 월급날을 축하하며 맛있는 걸 사 먹는 것도 잊지 않는다. 월급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몽글몽글하고 들뜨는 건 모든 직장인의 공통점이 아닐까.


그러니까, 교사도 여느 직장인들처럼 월급날이 되면 기분이 좋다.




솔직히 월급날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게다가 내가 한 달간 열심히 아이들과 지지고 볶고, 업무에 시달린 끝에 받은 월급이면 더 좋다. 모두 솔직해지자. 사람은 돈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교사도 돈을 좋아한다. 내가 불법 행위를 한다거나 부당 이익을 취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정당한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겠다는 거니까 이 감정을 숨길 이유도 없다.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이 말을 솔직하게 하는 게 쉽지 않았다.


내가 처음 일을 시작 한 해에, 전체 교직원이 학예회로 인해 밤까지 근무를 한 적이 있다. 다 같이 시간 외 근무수당을 신청했는데, 내가 다소 늦게 상신한 탓에 당시 교무부장님은 내 것을 결재하는 것을 깜박하셨다. 그분은 다음날 나를 불러 그냥 수당을 받지 않으면 안 되겠냐고 물으셨다. 사후 결재는 사유를 적어야 하는데, 본인이 결재하는 것을 빠뜨렸다고 관리자에게 가서 사유를 입력하고 시간 외 수당을 결재해달라고 하기 민망스럽댔다. 밤 열 시가 다 되도록 이어진 야근이었지만 나는 선뜻 알겠노라고 했다. 내가 일을 한 대가이지만 왠지 돈을 더 받는 게 나는 영 마음이 불편했고, '제가 일을 했으니 그 대가를 받아야겠습니다.'라는 말은 결단코 해서는 안 되는 말처럼 느껴졌다.


더 나아가 누가 못 하게 하는 것도 아닌데 학기초와 말에 야근을 해도 한 번도 시간 외 수당을 신청하지 않았고, 주말에 청소년 단체 활동 등을 이유로 출근을 하고 시간 외 수당을 받을 때에는 심지어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교사이기 때문에 아이들과 관련된 일은 추가적인 노동은 무상으로 나서서 해야 할 것만 같아서. 내 노동에 대한 당연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나는 내가 시간 외 수당을 신청하면 나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았고, 남들은 나를 비난할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서 '돈'이라는 것은 왠지 모르지만 언급을 말아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우리 사회는 '돈을 좋아한다'이라는 말을 무서워한다. 어느 직업이든 그 말을 가져다 붙이면 '자네는 돈 생각뿐인가!', 라거나 '책임감이 없네.'라는 질책이 따라붙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열심히 살았는데, 그 대가인 돈을 좋아하는 순간 갑자기 나의 책임감이 뿅, 하고 사라진다. 비단 교사뿐이겠나, 직장인이 돈을 좋아하면 책임감 없는 직장인, 공무원이 돈을 좋아하면 책임감 없는 공무원. 이러다간 엄마가 돈을 좋아하면 책임감 없는 엄마, 아빠가 돈을 좋아하면 책임감 없는 아빠가 될 지경이다.


돈이 모든 사람들을 움직이는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라는 걸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과연 월급 안 줄 거지만 책임감으로 일해 줄 사람 손들어보세요, 하면 손 들 사람이 있을까. 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을 때 사람은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되는 법이다. 그러니 내가 한 일의 대가를 받는 것을 주저할 필요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교사도 직장인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교사도 생업에 종사 중이다. 교사로서의 사명감이 우리의 삶에 중요한 일부분이듯, 돈 역시 그렇다. '돈'소리가 나오기만 하면 깜짝 놀라 겁을 먹거나,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째려보기보다는, 당연한 논리를 인정하고 보다 솔직해지는 건 어떨까. 열심히 일하고,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고, 솔직해지는 것. 아마 요즘 교사가 지녀야 할 또 하나의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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