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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Jan 08. 2021

며느라기 말고 '신규라기'

왜 나는 그렇게 이쁨 받고 싶었던 걸까.

처음 신규발령을 받아서 학교에 인사를 갔던 날이었다.


미리 인터넷으로 온갖 '첫 발령 인사'후기를 찾아보고, 빈손으로 가지 말라기에 부족한 시간을 쪼개서 근처 슈퍼에 음료수를 한 박스 샀다. 저렴하고 가벼운 비타민 음료를 살까 하다가 더 크고, 예쁘고, 실속 있어 보이는 데다가 가격대도 더 있는 색색의 과일 주스로 샀다. 후기들이 일러준 대로 첫 실습 때 샀던 흰 블라우스, 검정 치마 조합의 똑 정장도 입고, 거기에 더 얹어 평소엔 발이 아파 잘 신지 않는 구두에 비싼 엄마 코트를 걸쳤다. 혼자 교무실에 멀뚱히 앉아있으면 할 말도 별로 없고 어색하다길래, 알음알음 연락처를 물어 찾아낸 함께 신규발령을 받은 선생님과 같은 시간에 함께 가기로 했다. 


공작새의 털을 꼽은 까마귀처럼, 나 자신 위에 무언가를 더하고 더하고 더한 첫인사였다.


새로 만난 우리 반 아이들과 무얼 할지, 수업은 어떻게 해야 할지, 학교 선생님들과는 어떻게 지내야 할지 등의 생각에 자려고 누워도 잠들지 못했던 시기였다. 학급을 잘 운영하겠다는 의욕 말고도 나는 또 다른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을 시켜도 눈치껏 잘 해내는 똑똑함과 신규 같지 않은 싹싹함으로 이쁨 받는 교사가 되는 것. 


왜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이쁨 받는'교사가 되고 싶었던 걸까. 어쩌면 요즘 나오는 며느라기처럼 나 역시 신규라기를 겪었던 게 아닌가 싶다.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회 초년생이 누구에게나 예쁨 받는 직장생활을 하고 싶은 욕심 말이다. 나는 관리자들뿐만 아니라, 학교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 목표를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더랬다.


물론 사회생활을 해본 누구나 예상했겠지만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늘 그렇듯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못마땅해하는 사람이 나왔다. 학창 시절을 거쳐오며 어딜 가도 꼭 한 명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쪽이었던 나는, 그래서 학생으로서 학교를 떠나 교사로 새로운 학교 생활을 시작하는 이 순간만큼은 완벽한 새 출발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역시, 이번에도 실패였다.


한동안은 내 안에서 문제를 찾으려 부단히 도 노력했다. 처음 인사를 갔던 순간부터 하나하나 내 행동, 표정, 말투, 모든 것을 분석해가며 무엇이 내 중대사를 그르쳤는지 여러 번 되뇌어 보았다. 자괴감도 많이 들었다. 어쩌면 내 성격이 너무 이상해서, 모두에게 이쁨 받기에는 이미 틀린 성격이라 결국 이렇게 나를 못마땅해하는 사람이 생긴 건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내 성격에 어딜 고쳐야 하나, 혼자 성격 개조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다.


시간이 2-3년쯤 지나 신규 교사라는 위치에서 여러 발자국 떨어져 그때의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오히려 모든 상황이 분명하게 보였다. 내 감정도 내 마음대로 안되는데 남의 감정을 어떻게 내 뜻대로 할 수 있을까. 결국 내 노력은 신기루를 쫓는 몸부림이었다. 그럴 시간에 내 노력으로 어찌해 볼 수 있는 나를 더 돌볼걸.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에 실패했더라도 내가 배운 것이 있으면 의미 있는 시도가 된다. '모두에게 이쁨 받는 신규 교사가 되기'의 시도 결과 내가 얻은 결론은 그저 남에게 신경 끄고 내 할 일이나 잘하는 게 최고라는 거였다. 굳이 넘치게 친절할 필요도, 의욕 넘치게 새로운 것을 시도할 필요도 없이 딱 내 할 일만 제대로 하고 선을 긋는 것만큼 현명한 방법이 없었다.


요즘도 가끔 싹싹하기 위해 4층 교실에서부터 1층, 혹은 다른 모든 층의 이곳저곳을 부리나케 다니며 애썼던 내 모습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나를 씁쓸하게 웃게 하면서도, 그래도 그런 힘 넘치는 시절이 있었지, 하는 추억도 되어준다.


최근 드라마 며느라기에 대한 뉴스를 보았다. 실은 드라마화되기 전부터 인터넷 포털 여기저기에서 조각조각 올라온 웹툰을 보았기에 알고 있었던 이름이었다. 며느라기가 이렇게 화제가 될 수 있는 건 이 이야기가 단지 며느리들의 공감대뿐만 아니라 살아가며 'ㅇㅇ라기'를 겪은 모든 사람들의 공감대를 끌어내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면 저마다의 'ㅇㅇ라기'를 겪지 않을까?





최대한 예전 사진을 고르려고 사진첩을 뒤져봤는데, 마침 며느라기와 똑 닮은 머리 스타일을 한 사진을 발견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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