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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Jan 04. 2021

라트비아에서 만난 한국인들

라트비아가 맺어준 한국의 인연들

내가 처음 라트비아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야말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에 뚝 떨어진 이방인이었다. 처음엔 즐거웠다. 혼자서 올드타운 구석구석을 구경하고, 미리 수소문해서 알아놓은 맛집이나 유명하다는 곳들을 돌아다니며 '나 혼자 라트비아 100배 즐기기'를 열심히 실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던가, 자유가 좋던 나에게도 고작 삼일 만에 외로움이란 게 찾아들었다. 한국인이 외국에서 외로울 때 이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같은 한국인을 찾는 것이다. 당시 블로그를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던 나는 미리 블로그 이웃을 맺어 놓았던, 한국을 떠나기 전 짐을 쌀 때 '꿀팁'을 얻었던 한국인 교환 학생들에게 라트비아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운이 좋게도 라트비아에 체류 중인 교환학생 두 명과 연락이 닿았고, 곧 라트비아에 체류하는 학생들이 모임을 가질 예정이라며 그때 얼굴을 보자는 반가운 소리를 들었다. 


라트비아에 한국인이 별로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미리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30여 명의 교민들만 라트비아 리가나 주변 도시에 살고 있다고 했다. 한인 사회가 좁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섣불리 이 안으로 들어가기엔 겁이 났지만, 한 학기에서 길어야 일 년을 머무르는 교환학생들을 만나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부담이 덜 한 일이었다. 약속 장소는 올드타운에 하나 있는 한식당.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던 나에게는 더더욱 꼭 참석하고 싶은 모임이었다. 가서 보니 이번 학기의 교환학생은 20명 남짓이었다. 교민과 교환학생의 비율이 1대 1이라니. 내가 정말 남들이 별로 겪어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찾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트비아에 온 교환 학생들은 대부분 성격도 좋고 사교적이었다. 여전히 나이에 관한 한국적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했기에 '파릇파릇한 대학생들 속 직장인 하나'라고 느끼며 경직되어있던 나와 달리,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고 다정하게 굴어주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정해져 있기에 함께할 시간이 정해진 인연이었으나, 나에게 첫 학기에 만난 교환 학생들은 더없이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처음에는 좀 어른스럽게 굴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선생님스러운 걱정을 했던 나는 곧 이들이 부르는 내 명칭이던 '석사 언니'생활에 동화되어 자연스럽게 학생들끼리의 유연한 친구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대학끼리 협약을 맺은 후 교환 학생 프로그램이 진행되기 때문에, 교환 학생을 한국인 학생들의 출신 대학교는 3-4곳으로 정해져 있었다. 어차피 한 학기만 있을 교환 학생들이 뭘 알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들은 이전 학기에 왔던 교환 학생들에게 라트비아 생활을 하며 꼭 알아야 할 것들이라거나 도움이 될 내용들을 전수받았기에 이곳에서 몇 년은 산 듯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 허물없이 나를 대해준 이 한국인 친구들 덕분에 나 역시 이 노하우들의 덕을 톡톡히 보았음은 두말할 것 없었다.


실은 교환 학생 전체가 모이는 일은 보통 한 학기에 한번 정도 있는, 그저 라트비아에 있는 동안 같은 한국인 학생들끼리 인사라도 하고 지내자는 취지의 행사였다. 그러니, 만약 그때 만난 교환학생들이 자신들보다 최소 5살 이상 나이가 많은 나에게 거리를 뒀다면, 나는 이렇게 빠르게 라트비아 생활에 적응을 하지도, 지금도 간간히 연락을 하는 친한 동생들(이라 쓰고 친구들이라 읽는다.)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해외에서 만났다는 자유로움 때문인지, 고국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특별한 계기 없이도 많이 가까워졌고 또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었다. 사람 간의 관계란 게 뭔지, 어쩌면 평생 옷깃도 스칠 일이 없었을 타지의 동생들을 이렇게도 만나 가까워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나의 라트비아 생활은 주로 과 친구들, 라트비아인 친구들과 함께 이루어졌지만, 한국인 친구들은 내가 가장 한국이 그립고 힘들 때 힘이 되어주었다. 한국을 떠나 처음 맞이한 추석날 함께 명절 음식을 준비해 나름의 명절 분위기를 내기도 했고, 학기의 끝이 다가오며 과제와 시험에 치여 제대로 된 식사를 챙겨 먹지 못하는 나를 위해 한상 가득 한식을 준비해주기도 했다. 늘 나를 긴장하게 만들던 외국어에서 벗어나 모국어의 편안함에 안기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는 내게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각종 한국음식들을 나누어주고 갔다.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도움만 받았던 친구들이기에, 고마우면서도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함께 든다. 


교환학생들 뿐만 아니라 한국인 학생이라며 특별 대접을 해주시던 한식당 사장님, 타지일수록 잘 챙겨 먹어야 한다며 종종 불러 분에 넘치는 밥을 사주시던 교수님,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화를 걸어 안전을 확인해주시던 대사관 직원분들까지 내게 한국이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다시게끔 느끼게 해 주신 분들이다.


흔히 '외국에 나가면 한국인을 조심해'라는 말이 있다. 해외에서 만난 한국인들이 사기꾼이라는 의미보다는, 같은 나라 사람에게서 오는 동질감과 기대치가 높다 보니 서운함을 느끼거나 실망하게 되는 일들도 많다는 뜻은 아닐까. 조금만 마음을 열고 생각한다면 해외에서 한국 사람을 만난다는 건 서로에 대한 배경지식이나 편견이 0인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니, 어쩌면 허물없는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 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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