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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Jan 20. 2021

영어 이름이 왜 필요한데?

나를 대표하는 이름이 두 개일 수는 없다.

"네 영어 이름은 Lisa야."


갓 중학생이 되었을 때, 영어라면 그야말로 치를 떠는 나를 위해 엄마는 영어 학원을 수소문했다. 한국인 선생님과 외국인 선생님이 시간을 반반씩 쪼개서 가르치는, 영어를 재미있게 배우게 해 준다던 그 학원. (하나도 재미있지 않았다.) 수업 첫날, 영어 학원의 한국인 선생님은 내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Lisa'라는, 별로 갖고 싶지도 않았던 영어 이름을 지어줬다. 아마 그 학원엔 열명이 넘는 리사가 있었을 거다.


그렇게 영어와 전혀 친해지지 못하고 시간은 흘러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캘리포니아엘 갔다. 두 대학교 간에 맺어진 어학연수 겸 문화 체험 프로그램이었는데, 꽤 많은 수의 현지 대학생들이 버디라는 명목으로 우리의 미국 생활을 돕기 위해 동원되었다. 아무리 애써도 한국식 이름을 어눌하게 발음하는 그들을 위해 친구들은 저마다의 영어 이름을 지어 알려줬다. 덩달아 나도 썩 필요한 것 같지 않은, 한국 이름과 최대한 비슷한 영어 이름을 지어서 알려줬다. 물론 나는 그들의 이름을 그대로 불렀다.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초중등생 대상 영어 캠프에 대학생 협력 교사로 참여했다. 교육청이 고용한 미국의 대학생들과 한국의 대학생들이 1대 1로 짝을 지어 부스를 운영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때도 어김없이 모든 대학생들이 영어 이름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 모두에게도 영어 이름을 만들 것을 요구했다. 나는 캘리포니아에서 만든 영어 이름을 사용했다. 미국인 협력 교사들은 그들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나는 왜 매번 멀쩡한 내 이름을 두고 영어 이름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지 영문을 몰랐다. 내 이름을 영문으로 표기하는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래서 나는 유학을 온 후에도 언제나 내 이름을 사용했다. 내 이름이 외국인들에게 발음하기 불편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잘못된 발음을 하거나, 종종 이름을 잊어버려도 개의치 않았다. 필요하다면 백번이고 내 이름을 다시 말해 줄 용의가 있었으니까.




영어 이름을 만들기 시작한 역사가 언제 시작된 건지 모르겠다. 아마 원어민과 처음 교류를 시작한 사람들이 한국식 이름을 발음하기 불편해하는 이들을 배려하기 위해 영어 이름을 따로 만들며 시작되지 않았을까. 과거부터 일본인들과 교류가 잦았던 사람들은 한자 이름을 일본식으로 읽는 일본 이름을 만들었을 테고, 중국인과 교류가 잦은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중국식으로 읽어 중국 이름을 만들었을 테니 같은 생각으로 당연스럽게 영어 이름을 만들었던 아닐까, 하고 예상해 볼 뿐이다.


실은 영어 이름을 만드는 건 단지 한국인들만의 일은 아니다. 많은 중국인들도 영어 이름을 만들어서 사용하고, 오랫동안 영국령이었던 홍콩의 주민들은 애당초 영어 이름과 중국 이름을 둘 모두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는 왠지 모르게 남의 편의를 위해 이름을 새로 만드는 건 동양인들만의 일인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유독 영어 이름을 만들고 싶지 않아 하는 내 심리의 기저에는, 그들이 주류도, 우리가 비주류도 아닐진대 굳이 이름까지 새로 지어가며 편의를 맞춰주는 것에 대한 심통이 난 걸지도 모른다. 내가 이름이랍시고 어설프게 지어놓았던 그 영어단어들은 들을 때마다 어색하고, 심지어 가끔은 그 단어가 나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깜박하게 하곤 했다.


내 이름은 한국어를 못하는 사람들에겐 발음하기 힘들다. 라트비아어를 쓰는 라트비아 사람들에게도, 독일어를 쓰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영어를 쓰는 내 친구들에게도 내 이름을 발음하기 힘든 건 똑같다. 그렇다고 내 이름을 말하는 게 불가능한 건 또 아니다. 단지 조금 불편하다는 이유로 30년간 불려 온 내 이름을 두고 다른 이름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나 역시 각자 나라의 특성이 묻어나는 친구들의 이름을 발음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매번 연습해 이제는 꽤 그럴싸하게 발음해낸다. 어눌하더라도 서로의 이름을 있는 그대로 부르는 것이 그 사람의 삶과 정체성을 존중하는 방법이 아닐까.


나 역시 이름 외에도 부르는 사람의 애정이 깃든 별명도, 브런치에서 사용하는 글 쓰는 나를 위한 닉네임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나의 특정한 면모를 부각하는 단어들이기에 나 역시 애정을 가지고 사용하지만, 그렇다고 나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지는 못한다. 나와 달리 외국어로 새 이름 짓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원하는 언어, 좋아하는 단어로 짓는 사람들의 선택 역시 존중한다. 그러나 남이 주는 불편한 눈치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낯선 단어를 골라 '이름'이라며 나를 칭하는 말로 정하고 싶지는 않다.


내 이름은 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어릴 적엔 한 반에 두엇이 있을 정도로 흔한 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다. 한때는 이름을 바꿔볼까, 하는 고민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이름을 고집하는 것은, 30년을 함께하며 이제는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내가 내 이름을 닮아버렸기 때문이다. 


중학생이던 시절 영어 문법을 처음 배울 때 선생님은 '고유 명사'에 대해 설명하며 한마디로 말해 '이름'이라고 하셨다. 여러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고유 명사는 이름이야, 하는 설명에 바로 그 성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시 해석해보면 나를 나타내는 고유한 단어가 바로 이름이다. 나라는 사람은 내 이름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잘 드러나고, 이제 내 이름이 아닌 다른 단어는 나를 완전히 표현하기엔 부족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요즘 부모님들은 일부러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한글로도 예쁘고, 영어로도 발음하기 쉬운 이름을 짓는다고 한다. 우리 부모님이 좀 더 앞을 내다봐서 내 이름을 영어로 발음하기 쉽게 지었더라면, 그러면 나는 또 다른 성격을 가진 내가 되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더 웃긴 사실은 영어 이름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은 해외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심했다는 것이다. 영어 이름을 짓는다고 영어 실력까지 원어민이 되는 건 아닐 건데 왜 그렇게 영어 이름을 지어댔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영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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