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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Jan 07. 2021

라트비아의 홈 파티

라트비아의 단독 주택에서 경험한 노래방

미드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다들 홈파티에 대한 내용을 본 기억이 있지 않을까. 마당이 딸린 전형적인 미국식 주택에 사람들이 빨간 일회용 컵을 들고 맥주를 마시며 와글와글 떠드는 그런 홈파티. 실은 파티라고 해서 거창할 것도 없는 게, 그냥 집에서 각자 음식과 음료를 준비해와 함께 시간을 가지는 게 이들에게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에서 4주 지냈을 당시 두어번 경험해 보았기에 특별한 로망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리가 올드타운과 시티센터에는 주택이 없고 모두 과거 유럽식의 건물들이 대부분이라 미국에서 즐겼던 홈파티를 가질 기회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두 번째 라트비아인 친구인 베아트리스 덕분에 라트비아에서도 친구들과 그런 좋은 시간을 가질 기회를 얻었다.


베아트리스의 집은 리가 시티센터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마루페'라는 주택이 모여있는 도시에 있다. 추석 디너파티를 함께 보낸 후 베아트리스는 자신의 집에 가라오케(노래방 기계를 이들은 가라오케라고 부른다.)가 있다며 자신의 집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각자 취향에 맞는 마실 것과(나는 피나콜라다를 만들어 먹기 위해 말리부와 파인애플 주스를 사 갔다.) 주전부리를 준비해서 베아트리스의 집에 모였는데, 그곳은 일반적인 단독 주택을 생각한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 곳이었다. 티브이에서 봤던 일반적인 가정집용 단독 주택 세 채와 테니스장, 넓은 마당에 베아트리스가 연못이라고 주장하는 누가 봐도 수영장인 시설, 흔들 그네까지 갖춰져 있는 정말인지 거대한 전원주택이 내 눈앞에 펼쳐졌으니까. 


우리가 파티를 가진 곳은 그중 가족들이 이용하지 않은 독채였는데, 일층에는 큰 티브이와 함께 노래방 기계가 설치되어 있고, 소파, 큰 원목 테이블, 실제로 장작을 태울 수 있는 난로, 큰 창문에 주방시설, 사우나까지 있는 데다 바깥쪽에는 바비큐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베아트리스가 집을 구경시켜준다기에 이층도 함께 올라가 보았는데, 2개의 침실이 넓게 자리 잡아 있어서 정말인지 한 가족이 살만한 공간이었다. 이 공간은 베아트리스 집 울타리 안에 있는 3개의 주택 중 가장 작은 규모의 주택이었고, 보통은 손님용 집으로 이용하는 것 같았다. 덕분에 우리는 우리만의 시끌벅적한 홈파티를 즐길 수 있었다.


집 근처에 큰 마트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다 같이 그곳으로 몰려가 멜론가 몇 가지 음료를 추가로 구입했다. 나는 한식당 사장님께 구입한 신라면과 불닭볶음면 비슷한 매운 볶음 라면을 챙겨갔는데, 신라면은 끓여서 우리 모두의 애피타이저가 되었고, 한국인 하면 매운 맛을 떠올리는 베아트리스를 위해 볶음 라면은 선물로 두고 왔다. 베아트리스가 스시(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그냥 롤이다.)을 주문하고 채식주의자인 본인이 먹지 않는 스테이크까지 구워준 덕에 정말 먹을 것으로 가득 찬 홈파티가 되었다. 미리 음식을 다 차려놓기보다는 함께 멜론을 자르고, 라면도 끓이고, 스테이크도 구우며 함께 한다. 후식은 크리스가 리가에서 유명한 머핀가게에서 사 온 20개의 머핀이었다. 


우리는 몇 시간에 걸쳐 웃고 떠들고, 노래방 기계와 노트북을 연결해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내가 회식 때면 트로트를 부르곤 했다는 말에 호기심에 가득 찬 크리스와 베아트리스의 요청을 받아 나도 내 애청곡인 '사랑의 배터리'를 불러야 했다. 내가 라트비아까지 가서 그 노래를 부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 각자 취향에 맞게 준비해 간 음료는 당연히 대부분 술이었고, 이것 저것 시도해보던 나는 분명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도 금방 알딸딸해지는 놀라운 현상을 경험했다. 결국 가장 나이 많은 나는 피곤에 찌들어 한구석의 소파에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우리의 홈파티는 오후 7-8시쯤 시작해 새벽까지 이어졌고, 친절한 크리스가 불러준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와 보니 거의 새벽 3-4시였던 걸로 기억한다.


내게는 잊지 못할 첫 학기의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이 이날의 홈파티다. 사실 홈파티가 처음이었던 건 아니지만, 대부분 아파트에서 사는 리가의 주거 특성상 친구들과 함께 요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넷플릭스를 보는 정도인데, 베아트리스 덕분에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나에게 신기하게 느껴졌던 것은, 사람을 초대하면 손님이 도착하기전에 모든 요리와 세팅을 마치는 우리나라와 달리 함께 요리하고 준비한다는 것이었다. 파티를 주최하는 사람의 부담도 줄이고 모두가 함께하는 시간도 늘리는 좋은 방법으로 보였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홈파티 문화는 이제는 제법 익숙해져서 나도 아파트를 구한 뒤 베아트리스와 친구들을 초대하고 함께 요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이제 홈파티는 불법이 되어버렸고, 라트비아로 돌아간 후에도 친구들을 얼마나 자주 만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코로나 상황이 진정돼서 다시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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