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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Jan 12. 2021

책 한 권을 사는 낭만

기대하지 못한 기쁨을 찾는 것

책 사는 걸 좋아했다. 이건 아주 어릴 적부터 이어져온 나만의 낭만이었다. 초등학생의 내게 책은 상당히 고가의 물건이어서, 엄마가 일주일에 한 번 주는 삼천 원과 친척집을 방문했을 때 받은 용돈들을 차곡차곡 모아 한 달에 한 번쯤은 한 권의 책을 샀다. 이때는 특별히 책을 고르는 기준이나 장르가 있는 게 아니어서 동네 서점으로 가 매대에 놓여있는 책들의 제목과 표지를 비교하고 중간쯤을 펼쳐 몇 문단 읽어본 후 가장 마음에 드는 책으로 골랐다. 단, 만화책은 사지 않았다. 이것은 그 시절 내가 고집한 지적 허영이었다. 만화책만의 강점을 모를 정도로 나는 무지한 독자였다.


그 당시 구입한 책들 중 기억에 남는 책은 엉뚱하다. 그 시절 아빠의 생신 선물이랍시고 산 '단순하게 살아라'라는 책. 지금 방식으로 설명하자면 어떻게 미니멀리스트로 살 수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책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아니면 중학생 때쯤 샀던 책이니 남들에 비해 상당히 앞서간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정작 책의 주인이 된 아빠는 별 관심이 없어했지만 나는 그 책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잊을만하면 한 번씩 방을 뒤집어엎으며 옆구리에 작은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끼고 이것저것 버려댔다. 이게 아직까지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배경 지식 없이 구입한 책들이 내게 제법 많은 영향을 끼쳐 온 것으로 보인다.


중학생이 되고서 나는 컴퓨터 게임의 맛을 알아버렸고, 고등학생이 되고서는 공부하느라 독서는 나중에 해도 되는 것으로 밀려났다. 그렇게 내 인생의 낭만 공백기가 생겼다.


성인이 되고 난 후에는 주로 대형 서점을 방문해서 책을 샀다. 인터넷으로 구입을 하는 것에 비해서 가성비는 한참 떨어졌지만, 친구를 기다리며 잠깐 들어간 대형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나 관심 분야의 신간들을 비교하고, 무겁고 심오한 주제의 글보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에세이 류를 골라 샀다. 가끔은 그림이나 사진이 반을 차지하는 책이나 여행 관련 서적을 구입하기도 했다. 심지어 언어가 통하지 않는 해외의 서점에 갔을 때도 영어로 쓰인 책이 있는 곳엘 가 그전부터 좋아했던 고전의 원서를 사기도 했다. 성인이 된 후 내게 책은 무엇을 배우기 위해 읽는 것보다는 지친 일상을 마친 후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읽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대하지 않고 들어간 서점에서 내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발견해서 나왔을 때의 기쁨은 아마 경험한 사람들만 아는 느낌일 것이다. 책은 참 특별한 힘을 지녔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른 서점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한 권쯤 사고 나면, 치른 값에 비해 곱절은 큰 기쁨을 준다. 왜 다른 소비에 비해 주는 행복이 큰지 그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찌 생각하면 활자가 인쇄된 종이 뭉치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책. 그 안을 작가의 세상으로 가득 채운 책.


저마다 책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을 것이다. 우리 아빠는 한 명의 작가에게 꽂히면 그 작가의 책을 모조리 구매해 읽는 스타일이고, 내 동생은 요즘 세대답게 전자책을 구입해 이북 리더기를 가볍게 들고 다니며 읽는다. 나는 여전히 아날로그를 선호하는 현대인이라 어떤 종류의 책이든 내 감성을 콕콕 찌르는 책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구입해 후루룩 읽는 것을 좋아한다. 저마다 책을 사는 이유는 다르지만 책에서 기쁨을 얻는 건 같다.


책은 사람에게 지식을 전달하기도 하고 작가의 생각을, 감정을, 혹은 독자를 위한 위로를 전달하기도 한다. 마음이 지친 날이면 서점을 찾아가 계획에 없던 책 한 권을 사 보는 낭만을 누리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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