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R Jan 15. 2021

나를 살아가게 하는 일상

소소한 행복이 나를 살아가게 할 때

나는 타고난 체력이 0인 사람이다.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어릴 적 엄마가 봤다던 사주에서도 다 좋은데 건강만 주의하면 된다고 했댔고, 여름철 기력이 딸려 찾아간 한의원에서는 원래 선천적으로 힘이 없는 사람이랬다. 그래선지 나는 뭐든 의욕이 없는 편이었다. 어릴 적엔 부모님이 설거지를 대가로 내건 용돈에 관심이 없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그저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었다. 이런 나에게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매 순간 엄청난 노력을 요하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나에게도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있었다.

나를 살아가게 하는 일상.


생각해보면 내게는 늘 나를 살고 싶게 하는 일상 속 작은 행복들이 있었다. 엄마의 잔소리로 힘들 적엔 오후 5시에 챙겨보던 만화가, 사춘기가 와 매사에 삐뚤던 중학생이던 시절엔 학원을 마친 후 사 먹었던 떡볶이나 붕어빵, 그리고 성적에 대한 압박에 늘 시달렸던 고등학생 때는 점심시간을 틈타 친구들과 운동장을 걷던 30분이.


성인이 되어서도 비슷했다. 5분만 더 자고 싶다는 유혹을 떨치고 출근하는 길에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학생들과 복작복작한 하루를 보내다가 모두가 하교한 후 조용해진 교실에 혼자 앉아있는 순간, 가까운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티타임이나 자기 전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보며 시간을 낭비하는 시간이 나를 버티게 하는 것들이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이 날까지 인생을 살아가게 만든 것은 크고 거창한 꿈이나 목표가 아니라 일상 속에 누리는 작은 행복들이었다. 수능 고득점을 하는 상상보다는 이 공부를 끝내고 친구들과 가질 시간이, 멀게 느껴지는 주말보다는 당장 마실 수 있는 커피 한 잔이 내가 하루를 버티게 만들었다.


그러나 가끔 이런 일상 속 행복을 망각할 때가 있다. 보통은 삶이 굉장히 고달플 때 오히려 행복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고달파졌다. 커피 한 잔이,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주는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스트레스에 절여져 둔감해졌을 때. 내겐 왜 고달픈 일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심지어 더 이상은 이런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시간은 갔고 영원히 괴로울 것 같던 나에게도 다시 일상 속 행복한 순간은 돌아왔다. 그래서 이제 마음이 아플 땐 벗어나려 몸부림치기보다는 거북이처럼 움츠러들어 견뎌본다. 결국 이 시간도 지나고 행복한 나의 시간이 돌아온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알기 때문이다.


나는 비행기를 탈 때면 꼭 창가에 앉는다. 비행 끝에 도착한 곳에서 여행을 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그곳을 향해 날아가는 순간도, 창 밖의 풍경을 보는 것도 좋으니까. 사람들은 가끔 눈 앞의 소중한 것을 놓치곤 한다. 멀리 있는 목표를 향해 뛰느라 작은 행복을 놓치기보다는 내 눈앞의 행복함을 즐기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도 의미 있는 일 아닐까.




조금은 흔한 이야기를 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제게 꼭 필요한 이야기라서 글로 써 봤습니다. 저는 요즘 학기를 마무리하느라 힘듭니다. 매 학기마다 보는 시험이고 과제인데, 왜 매번 이렇게 고달픈지 모르겠어요. 과제와 시험공부로 지친 하루를 보내지만, 또 브런치에 글을 쓰는 행복을 원동력 삼아 힘내 보려고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결혼식에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