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보지 못한 세상에 부딪힐 준비를 하는 중이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뭐 봐?"
"음... '스위트 매그놀리아', 그리고 '그레이스와 프랭키'."
두 드라마에 대해 검색해본 친구는 웃었다.
"주부들이 좋아할 드라마네. 이건 원로 배우들이 나오는 거고."
그렇다. 최근 내가 본 드라마는 중고등학생 아이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 그리고 육십이 넘어 예기치 못하게 각자의 남편과 이혼하고 서로 의지하며 살게 된 두 사람의 이야기니까. 나보다 최소 열 살, 많게는 서른 살 이상까지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보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각자가 좋아하는 드라마 취향을 가지고 있겠으나, 나는 그렇다 할 뚜렷한 취향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재밌다고 하면 나도 따라 보는 게 내 취향이라면 취향이다. 그렇게 까탈스럽지도 않고 뭐든 시간 보내기 용으로 잘 보는 타입. 대학생 때까지는 그래도 종종 드라마를 챙겨보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티브이 자체를 켜는 시간도 줄어들고, 굳이 드라마를 챙겨보지도 않게 되었다.
물론 이삼 년 전쯤 넷플릭스가 혜성처럼 우리 앞에 나타나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나도 덩달아 구독을 시작하며 돈을 냈으니 뭐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드라마 목록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당시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할 때였기 때문에 주로 미드, 영드를 챙겨봤었는데 로맨스는 왠지 낯간지러운 느낌이고, 그렇다고 너무 무거운 느낌의 드라마도 보고 싶지 않아서 프렌즈나 How I met your mother 같은 고전을 주로 봤다.
그러다가 내가 보기 시작한 게 '그레이스와 프랭키'였다. 실은 극 중 프랭키의 성격이 나와는 너무 상극이라 보기 힘들 때가 많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6개의 시즌을 완주하게 한 것은 이 드라마 속 인물들이 각자가 원하는 대로 삶을 이끌어 간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스위트 매그놀리아'도 비슷한 맥락이다. 더 좋은 점은 등장인물이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서로 상반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나는 드라마를 보며 여러 사람의 삶을 나름대로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가보지 않은 길을 두려워하는 법이다. 나도 그렇다. 성인이 되고 스무 살에서 서른 살이 될 때까지는 내 몸이 조금 삐그덕 거리는 느낌이 들어도 대체로 비슷한 흐름이었다. 하지만 그 후는? 마흔 살, 쉰 살, 예순 살은? 내가 이미 살아온 날의 두배는 더 살 텐데. 나는 겁이 났다. 내가 앞으로 내가 살아갈 50-60년을 나로 잘 살아갈 수 있을지 확신이 들 지 않았다.
혹시나 결혼을 한다면, 아이라도 생긴다면, 내 정체성을 잃고 누군가의 부인, 엄마로 사느라 나를 잃어버릴까 봐, 혹시나 혼자 내 인생을 쭉 살아가게 된다면 어느 날 문뜩 내가 혼자 있다는 사실이 외롭고 서글프게 느껴지는 순간이 올까 봐 무서웠다. 어느 쪽의 삶이든 한 번뿐인 내 인생이니 내가 선택한 대로 한번 잘 살아보고 싶은 게 내가 바라는 바다.
중장년이 주인공인 드라마를 본다는 것은 나에게, 일종의 예습 같은 거다. 나이를 먹고 혹시나 결혼을 하든 말든, 아이를 낳든 말든, 너의 인생은 여전히 너의 것이고 네가 주도한 대로 흘러갈 것이라는 걸 보여준다. 아, 이런 순간에는 저런 선택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내 시야를 넓어주기도 한다. 내가 몇 살이 되든 나이는 숫자일 뿐이고 지금처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누군가는 고작 드라마를 보면서 네 미래를 논하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맞다, 드라마는 픽션이기 때문에, 현실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거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인지라 드라마를 흉내 내다보면 내 삶을 그들처럼 끌고 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