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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Dec 02. 2020

수능의 기억

허탈했다. 평범한 하루와 너무 비슷해서.

"아니 내일이 수능이라고?"


해외에 있으니 한국의 소식에 늦다. 그렇다고 수능날을 바로 전날이 되어서야 알다니.

수험생들의 한이 서려서 같은 달의 다른 날들보다 훨씬 춥다는 수능일. 

매 년 수능 시험일은 내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날이다.




벌써 11년 전 일이지만 여전히 수능날은 내 기억에 생생하다. 아마 당시 19년 인생을 통틀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사여서 그랬을 거다.


나보다 더 긴장해서 수능 시험장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부모님께, 공부할 때 간식으로 먹던 파리바게트 샌드위치가 먹고 싶다고 했고 부모님은 그런 나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주변 파리바게트를 돌아 샌드위치를 내게 챙겨줬다.


엄마는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내 뒷모습에 눈물이 났다고 했다.


고사장에 들어가기 전 수능 시험장 입구에서 응원 나온 선생님들을 보았다. 3년간 우리 성적을 본인들의 성적 마냥 어떻게든 올려보려 애쓰시던 분들. 한 명이라도 더, 가고 싶은 대학으로 넣어보겠다고 종종거리며 애쓰던 그분들은 실제 시험장 앞에서는 그저 등을 두드려주며 열심히 하고 오라고 했다.


시험장에 앉아서 나는 앞뒤에 앉은 초면의 수험생들과 서로 가져온 초콜릿을 나눠주며 잘 보라고 응원했다. 같은 학교 출신도 아니고 말을 섞어 본 것도 아니었지만 어떤 시간을 보내왔을지 말하지 않아도 알기에. 그들도 나도 하루가 잘 풀리기를 바랬다. 짐을 풀고 긴장을 풀기 위해 같은 시험장에 배정받은 친구들과 인사도 하고 복도에서 오두방정을 떨기도 하며 어떻게든 가슴을 무겁게 누르는 긴장감을 풀어보려고 애썼다.


웃기게도 시험을 보는 과정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시간을 딱 맞춰 풀었던 언어, 쉬워서 두 번 풀고 맞은 답을 틀리게 고쳤던 수리, 듣기 문제를 놓쳤지만 찍어서 맞췄던 외국어. 이 정도? 아, 제2 외국어로 아랍어를 신청했었는데,  읽는 방향이 우리와 반대라는 사실을 수능 끝나고야 알았다.


오히려 점심시간이 기억이 난다. 내가 참 좋아하던 왕눈이 친구와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생각보다 입맛이 없었다. 아마 내가 제일 자신 없는 외국어가 다음이라 그랬나 보다.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나보다 더 긴장하며 도시락을 쌌을 엄마를 생각해 최선을 다해 먹어보았다. 그때 당시 네 과목이었던 사회 탐구 영역이 끝난 후에는 친구와 샌드위치를 까먹으며 사실상 우리의 고등학교 3년의 공통 목표였던 수능이 마무리되어가는 걸 축하했고.


시험을 모두 마치고 나올 때는 아직도 정말 생생히 기억이 난다. 방석이며 담요, 쉬는 시간에 틈틈이 볼 책 등 바리바리 챙겨 온 짐을 싸서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기분이 참 이상했다. 3년을 하나만 보고 매일같이 공부했는데, 직접 겪어보고 보니 그냥 똑같은 하루였다. 내가 이제까지 본 수많은 모의고사 같은 하루. 친구와 나란히 교문 앞에 섰는데 이미 깜깜해져서 주변이 잘 보이지 않는 교문 안과는 달리, 닫힌 교문 너머 와글와글 학부모들이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핸드폰 후레시를 켠 건지, 가로등이 있었던 건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학부모들이 기다리고 있는 그곳만 유독 밝게 보였다. 나는 어둠을 뚫고 빛을 따라 걸었다.


교문을 나서서 보니 학부모들이 딱 한 사람 지나갈 만큼 학생들을 위해 길을 터 놓았는데, 그 시장 통속에서 놀랍게도 부모들은 쏙쏙 내 새끼를 찾아냈다. 제대로 인사를 할 새도 없이 친구와 나는 각자의 부모님께 귀신같이 찾아내졌고, 나는 아침에 아빠가 미리 찾아놓았다며 뿌듯해하는 주차자리에 세워진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그랬고 그럴 것이듯, 나는 큰 실수도 큰 기적도 없이 그저 항상 잘하던 것들은 조금 아쉽게, 조금 부족하던 것들은 좀 만족스럽게, 나름 공부한 보람을 느낄만한 결과를 얻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내겐 고등학교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최선을 다해 살았던 3년이었으며, 투닥거리며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이 좋든 싫든 모두 잘 보기를 바랐고, 시험 날 아침의 차가운 공기와 걱정과 기대가 뒤섞인 눈빛으로 나를 지켜보던 부모님, 시험이 끝난 후의 허탈함이라는 기억이 모두 뒤섞여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는 수능이 세상의 전부인 것 같았는데, 지금 돌아보는 그 날은 그저 내가 살아온 날 중의 하나였다. 수능을 직면한 내겐 인생에 있어서 정말 거대한 나무였지만, 또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니 광활한 숲에 있는 조금 큰 나무 한 그루일 뿐이었다.


혹시나 언제든 수능을 앞둔 이가 있다면, 이 사실을 잊지 말고 최선을 다하되, 또한 너무 연연하지 않는 수능일을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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