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탈했다. 평범한 하루와 너무 비슷해서.
"아니 내일이 수능이라고?"
해외에 있으니 한국의 소식에 늦다. 그렇다고 수능날을 바로 전날이 되어서야 알다니.
수험생들의 한이 서려서 같은 달의 다른 날들보다 훨씬 춥다는 수능일.
매 년 수능 시험일은 내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날이다.
벌써 11년 전 일이지만 여전히 수능날은 내 기억에 생생하다. 아마 당시 19년 인생을 통틀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사여서 그랬을 거다.
나보다 더 긴장해서 수능 시험장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부모님께, 공부할 때 간식으로 먹던 파리바게트 샌드위치가 먹고 싶다고 했고 부모님은 그런 나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주변 파리바게트를 돌아 샌드위치를 내게 챙겨줬다.
엄마는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내 뒷모습에 눈물이 났다고 했다.
고사장에 들어가기 전 수능 시험장 입구에서 응원 나온 선생님들을 보았다. 3년간 우리 성적을 본인들의 성적 마냥 어떻게든 올려보려 애쓰시던 분들. 한 명이라도 더, 가고 싶은 대학으로 넣어보겠다고 종종거리며 애쓰던 그분들은 실제 시험장 앞에서는 그저 등을 두드려주며 열심히 하고 오라고 했다.
시험장에 앉아서 나는 앞뒤에 앉은 초면의 수험생들과 서로 가져온 초콜릿을 나눠주며 잘 보라고 응원했다. 같은 학교 출신도 아니고 말을 섞어 본 것도 아니었지만 어떤 시간을 보내왔을지 말하지 않아도 알기에. 그들도 나도 하루가 잘 풀리기를 바랬다. 짐을 풀고 긴장을 풀기 위해 같은 시험장에 배정받은 친구들과 인사도 하고 복도에서 오두방정을 떨기도 하며 어떻게든 가슴을 무겁게 누르는 긴장감을 풀어보려고 애썼다.
웃기게도 시험을 보는 과정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시간을 딱 맞춰 풀었던 언어, 쉬워서 두 번 풀고 맞은 답을 틀리게 고쳤던 수리, 듣기 문제를 놓쳤지만 찍어서 맞췄던 외국어. 이 정도? 아, 제2 외국어로 아랍어를 신청했었는데, 읽는 방향이 우리와 반대라는 사실을 수능 끝나고야 알았다.
오히려 점심시간이 기억이 난다. 내가 참 좋아하던 왕눈이 친구와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생각보다 입맛이 없었다. 아마 내가 제일 자신 없는 외국어가 다음이라 그랬나 보다.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나보다 더 긴장하며 도시락을 쌌을 엄마를 생각해 최선을 다해 먹어보았다. 그때 당시 네 과목이었던 사회 탐구 영역이 끝난 후에는 친구와 샌드위치를 까먹으며 사실상 우리의 고등학교 3년의 공통 목표였던 수능이 마무리되어가는 걸 축하했고.
시험을 모두 마치고 나올 때는 아직도 정말 생생히 기억이 난다. 방석이며 담요, 쉬는 시간에 틈틈이 볼 책 등 바리바리 챙겨 온 짐을 싸서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기분이 참 이상했다. 3년을 하나만 보고 매일같이 공부했는데, 직접 겪어보고 보니 그냥 똑같은 하루였다. 내가 이제까지 본 수많은 모의고사 같은 하루. 친구와 나란히 교문 앞에 섰는데 이미 깜깜해져서 주변이 잘 보이지 않는 교문 안과는 달리, 닫힌 교문 너머 와글와글 학부모들이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핸드폰 후레시를 켠 건지, 가로등이 있었던 건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학부모들이 기다리고 있는 그곳만 유독 밝게 보였다. 나는 어둠을 뚫고 빛을 따라 걸었다.
교문을 나서서 보니 학부모들이 딱 한 사람 지나갈 만큼 학생들을 위해 길을 터 놓았는데, 그 시장 통속에서 놀랍게도 부모들은 쏙쏙 내 새끼를 찾아냈다. 제대로 인사를 할 새도 없이 친구와 나는 각자의 부모님께 귀신같이 찾아내졌고, 나는 아침에 아빠가 미리 찾아놓았다며 뿌듯해하는 주차자리에 세워진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그랬고 그럴 것이듯, 나는 큰 실수도 큰 기적도 없이 그저 항상 잘하던 것들은 조금 아쉽게, 조금 부족하던 것들은 좀 만족스럽게, 나름 공부한 보람을 느낄만한 결과를 얻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내겐 고등학교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최선을 다해 살았던 3년이었으며, 투닥거리며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이 좋든 싫든 모두 잘 보기를 바랐고, 시험 날 아침의 차가운 공기와 걱정과 기대가 뒤섞인 눈빛으로 나를 지켜보던 부모님, 시험이 끝난 후의 허탈함이라는 기억이 모두 뒤섞여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는 수능이 세상의 전부인 것 같았는데, 지금 돌아보는 그 날은 그저 내가 살아온 날 중의 하나였다. 수능을 직면한 내겐 인생에 있어서 정말 거대한 나무였지만, 또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니 광활한 숲에 있는 조금 큰 나무 한 그루일 뿐이었다.
혹시나 언제든 수능을 앞둔 이가 있다면, 이 사실을 잊지 말고 최선을 다하되, 또한 너무 연연하지 않는 수능일을 보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