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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Dec 05. 2020

한국에 돌아가서 내가 살고 싶은 집

필요한 것은 나만의 공간, 커피, 햇빛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나는 바로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5-6년쯤 본가를 떠나 근무지 주변에 집을 구하고 살았다. 그러나 내 마음은 언제나 부모님 곁에 남아있어서, 평일에 지내는 근무지의 내 집은 그냥 잠깐 있는 곳이고, 주말에 길어야 이틀쯤 지내는 본가가 내 진짜 집인 것만 같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지내는 공간에도 소홀해져서 꼭 필요한 것만, 가끔은 필요한 것도 갖춰놓지 않고 지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래서 더 외로웠던 것 같다. 퇴근 후 시간을 보내러 간 곳은 내 집이 아니라 내가 2년간 잠잘 곳을 마련하기 위해 남에게 잠시 빌린 공간이었으니까. 그곳의 인테리어도, 집안에 있는 소품도 무엇하나 나의 취향이 없었고, 덩달아 나에게는 그저 정 붙일 곳 없는 외부와 분리된 공간이었을 뿐이었다. 퇴근 후에는 편안하게 쉬고 싶다는 이유로 카페에 갔고, 주말이면 부리나케 본가로 돌아갔다. 나는 그 집에서 3년을 살았는데, 그 집을 떠나는 날 방들을 돌아보며 내가 참 텅 빈 공간에 매트릭스 하나 놓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트비아로, 또 오스트리아로 떠나와 내가 정말 뼈저리게 느낀 것은 내 공간의 중요성이었다. 특히 요즘처럼 코로나로 인해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을 때는 더더욱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내 공간을 가진다는 게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제 내 유학생활의 3/4쯤을 보내고 있는 지금 가끔은 한국에 돌아가서 내가 살고 싶은 집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작은 아파트 전세를 구하고 싶다. 많은 걸 바라지는 않지만 햇살이 잘 드는 집이었으면 좋겠고, 방은 두 개, 하나는 침실로 하나는 옷방으로 쓸 거다. 혼자 살지만 부엌 겸 거실에는 4인용 탁자를, 침실에는 넓은 침대를 놓고 싶다. 그래도 나름대로 미니멀리스트이기 때문에 많은 가구를 살 생각은 없다. 집의 전반적인 색상은 화이트에서 그레이 톤으로 맞추고, 포인트 색깔은 인디핑크로 안락한 느낌을 주고 싶다.


침실에는 침대와 작은 협탁 하나만 두고 싶다. 자기 전에 읽고 싶은 책을 두고 언제든 손을 뻗어 읽을 수 있게. 그리고 침대와 반대쪽 구석에는 화분을 둬서 아침에 눈을 뜨면 초록빛 화분을 보며 기분을 상기시키고 싶다.


4인용 탁자의 한쪽에는 커피를 좋아하는 내가 언제든 내려 마실 수 있게 커피 머신과 캡슐들을 두고 싶다. 출근 전엔 간단한 비스킷이나 빵 한 조각에 커피를 내려 마시고, 퇴근 후에 언제든 마음 내키는 대로 앉아서 간단히 저녁을 챙겨 먹고 노트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옷 방에는 이번 계절에 입을 옷을 걸어놓을 행거 하나, 전신 거울 하나면 될 것 같다. 퇴근 후 게으르고 지쳤지만 또 그래도 깨끗한 집에서 살고 싶은 나를 위해서 로봇청소기도 마련해 둘 생각이다. 화장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니까 화장대는 필요 없고, 로션은 화장실에 두면 될 것 같다.


레몬이나 아보카도 씨앗의 싹을 틔워 키울 생각이다. 하고 싶은 게 많고 이기적인 나라서 아직 반려동물을 들일 그릇은 안되지만 직접 구한 씨앗을 키워 반려 식물 두 그루 정도와 함께 살고 싶다. 이미 어느 정도 자란 식물을 사는 것보다 내 손으로 싹을 틔워 식물을 키우는 것을 좋아한다. 참 신기한 게, 그렇게 직접 싹을 틔운 식물은 어떤 모습으로 자라나든 예쁘고, 조금 기운 없어 보일 때는 온갖 지식을 동원해 살려내게 된다.


밥은 해 먹고, 반찬은 사 먹을 거다. 가끔은 맛있는 요리를 해먹을 때도, 시켜 먹을 때도 있겠으나 퇴근 후 내가 얼마나 피곤할 상태일지 알기 때문에 동네 반찬가게에서 일주일에 2-3번씩 3가지 종류 정도의 밑반찬을 사서 먹을 예정이다. 냉장고에는 맥주 3-4캔, 화이트 와인 1병 정도는 항상 구비해 놓고 싶다. 저녁엔 화이트 와인 반잔 정도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나만의 시간을 갖는 걸 좋아하는데, 또 가끔 맥주가 생각나는 날이 꼭 있다.


혹시 거실에 충분한 공간이 확보된다면, 소파 배드를 놓고 싶다. 주말이면 침대에서 벗어나 2차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고, 가끔 친구나 가족들이 놀러 온다면 잠을 잘 수 있는 장소가 될 수도 있다. 평일에는 카페에 가기보다는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주말이면 느지막이 늦잠을 자고 있어나 느릿느릿 집 근처 카페나 근교의 유명하고 아기자기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책도 읽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작성해 놓고 보니 내게 필요한 것은 그저 돈이겠구나 싶다. 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삶의 질과 돈 중에 중요한 것은 당연히 삶의 질이므로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은 나만의 공간, 따사롭게 드는 햇살,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 한 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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