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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Dec 02. 2020

모두 저마다의 강박증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나는 조금 더 많이 가지고 있을 뿐이야.

"현대인은 누구나 마음속 한편에 자신만의 강박을 품고 산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마음속에서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느끼는 강박 말이야. 


그 정도가 심하든 약하든, 겉으로 표시가 나든 안 나든, 

모두들 그 강박을 이겨내고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야."




나는 참 다양한 강박을 가지고 있다. 특히나, 한국인의 전형적인 강박은 거의 다 가지고 있다. 


빨리빨리 강박,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까지. 아, 그리고, 남에게 인정받아야 내 존재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인정 욕구와 갈등을 피하고 보는 회피는 덤이고 가끔 과거의 아프고 슬픈 기억들이 울컥 몰려와 나를 집어삼키기도 한다.


이런 강박들이 유전자에 쓰여있던 건 아닐 거다. 그냥 한국에서 나서 자라다 보니, 이리저리 치이고 눈치를 보고 다니다 보니 저절로 습득하게 된 것이다. 내가 바라지도,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내 강박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대충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뭐든 빨리빨리 돌아가는 사회에서 따라가 보려 허둥허둥하다 얻은 '빨리빨리 강박', 첫째가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에서 얻은 '완벽 강박'과 삼 남매 틈바구니에서 조금이라도 더 관심받고 싶은 마음이 발현한 '인정 욕구', 내성적인 성격인 내가 30년 간 이리저리 치이며 얻은 '회피'. 그리고 가만히 있으면 뒤쳐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불러온 '열심히 살기 강박'.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얻은 상처들이 떠올라 나를 괴롭히는 가끔의 '우울'까지. 


그리고 이 강박들을 거스르려고 할 때면 근본 없는 죄책감이 몰려와 나를 덮친다.


내가 남의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모르긴 몰라도 다들 이 중에 한두 개쯤은 마음 한편에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많고 적음, 심하고 덜함의 차이는 있겠지만 현대인들 모두 마음의 병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거라고. 치료를 받으려고 하기엔 그렇게 심하지 않은 것 같고, 분명히 내 삶을 힘들게 만들기는 하는 그런 마음의 병. 그럼에도 어쨌든 이겨내고 살아보려고 매일 다시 애쓰게 하는 그런 가늘고 긴 감기 같은 병.




한국을 떠난 후 나의 강박들은 한결 가벼워졌다. 내 강박을 만들어내던 원인들에서 한 걸음 떨어지게 된 것도 이유이겠지만, 그간 제대로 가지지 못했던 정신적인 휴식이 내 마음을 자기 치유하게 만든 걸 지도 모른다.


자고 싶은 만큼 자다 알람 없이 눈을 뜨며 자연스럽게 하루를 열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거나 읽고 싶던 책을 뒤적인다. 다우가바 강 옆에서 조깅을 하기도, 주인과 함께 오솔길을 산책 나온 강아지들과 눈인사를 하기도 하고, 하루에 한 번은 블로그나 브런치에 글도 쓴다. 매일 하는 공부와 과제는 내가 지치기 전까지만, 하는 순간 최선을 다해하고 아니다 싶을 땐 그냥 손에서 놓고 다른 걸 한다. 


하루를 느리게 보낼수록 나는 내 자신에게 잘했다고 다독여준다. 그러면 내 안에서 영원히 날 괴롭힐 것 같았던 강박들은, 이곳은 자기들과는 맞는 곳이 아니라며 나에게서 총총총 멀어진다.


어쩌면 그것은 나였을지 모른다.

강박들을 꽉 쥐고 내 삶에서 놓아주지 않았던 건.

그들 없이 세상을 잘 살아갈 자신이 나는 별로 없었던 거였을지 모른다.


이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내가 하고 싶은 만큼만 한다. 그 후론 게으름을 피우거나 딴짓을 하기도 하고, 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해결해준 건 그냥 한 걸음 떨어져 보기로 결정한 나의 용기, 실행력, 그리고 항상 내게 잘했다고 해 주는 나 자신.


현대인은 여전히 마음 한편에 자신만의 강박을 품고 있을 거다. 그 무게를 알기에 나는 이들을 꼭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다독다독, 나도 놓았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고. 이미 잘하고 있으니, 더 괴로워할 것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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