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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Dec 25. 2020

그만두는 용기

익숙한 것을 그만두는 용기를 가졌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안돼, 네가 시작한 거니까 끝까지 해!"


어릴 적 엄마는 우릴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엄마가 맞벌이를 시작한 이유가 우리를 피아노 학원에 보내기 위해서였을 만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피아노를 꼭 가르치고 싶어 했다. 선생님이 가르치는 데로 곧 잘 피아노를 치던 여동생과는 달리 나는 음악 관련 분야는 모두 젬병이었다. 그중에서 일등은 피아노. 나는 여동생과 나란히 함께 배우기 시작한 피아노 학원에서 점점 동생보다 뒤처지는 부진아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내가 피아노에 재능이 없음을 익히 느껴서, 몇 번이고 엄마에게 그만두고 싶다고 말해봤지만 엄마는 '네가'시작한 일이니 끝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태권도나 발레 학원을 다니고 싶었지 피아노 학원이 다니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어쨌거나 내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나는 매번 우울한 마음을 안고 피아노 학원엘 다녀야 했다.


이 '끝까지 해'라는 말은 내가 하던 모든 일에 적용이 되어서, 엄마는 내가 학습지를 그만 하고 싶어 할 때에도, 다니던 종합 학원을 다른 곳으로 바꾸고 싶어 할 때에도 매번 네가 하고 싶어 한 거니까 끝까지 해,라고 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학습지 역시 하고 싶어 했던 적이 없다. 그보다는 피아노 학원 옆에 있던 고상해 보이는 '속셈학원'을 다니고 싶어 했으니까. 물론, 내 의견은 보기 좋게 다시 묵살되었지만은.


생각해보면 엄마는 뭐든 쉽게 혹하고 쉽게 지쳐 떨어져나가는 내 성격을 간파했던것 같다. 그래서 내게 뭐든 시작하면 어쨌든 끝장을 보는 성격을 심어주려고 했는지 모른다. 좋은쪽이든 나쁜쪽이든, 엄마의 방법은 성공했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체득해온 좋든 싫든 끝까지 하는 삶은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져서, 나는 이제껏 그 무엇도 그만두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본디 지금 하는 것을 그만둔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서 그럴 것이다. 나는 좋든 싫든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는 걸 싫어해서, '그만두는 것'을 시도해보지조차 못했다. 그래서 내가 평생을 학교라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와 달리 내 여동생은 그만두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목표가 생기면 잘 다니던 대학교도 과감하게 그만두고,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직장도 그만 둘 계획을 세운다. 옆에서 그런 동생의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동생의 그 용기에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내 동생뿐만 아니라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학교에 들어갔다거나 해외 생활을 시작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 마음도 덩달아 그들의 심정에 감정 이입하곤 했다.


실은 내가 직접 겪어본 적은 없는 일이라, 그저 '그만뒀다'라는 단어를 읽으면 떠나는 이의 착잡함과 두려움, 홀가분함이 번갈아 느껴지는 것 같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새로운 곳에 도착했다.'라는 부분에 도달할 때면 내 마음까지 같이 벅차오르는 것 정도였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에 나도 이제껏 하던 것을 그만두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몽글몽글 일었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게 얼마나 멋지고 용감한 일이냔 말이다.


요즘은 유튜브를 틀면 '마지막 출근 브이로그', '직장인 퇴사 브이로그'등 몸담았던 곳을 떠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는 영상이 많다. 코로나라는 역병이 창궐하면서 전 세계 경제가 흔들흔들하고, 직장의 근무 형태가 많이 바뀌었다. 근무 형태와 삶의 방식이 변하면서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기도, 그만 두기도, 혹은 새로운 직장을 찾기아 떠나기도 했다.


나는 그만 둘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서 그만둔다는 결단을 내린 이들의 마음을 온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먼발치의 이곳에 서서 일면식도 없는 이들을 향해 손뼉 쳐주고 응원해주고 싶다. 모두가 지금 각자 다른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겠지만, 이들의 도착지는 모두 꽃길 하나일 것이라고. 당신은 지금 너무나 잘하고 있다고.




이 글은 실은 이전에 올린 '힘들면 그만둬, 괜찮아'와 나란히 썼던 글이다.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관점을 조금만 비틀어 쓴 거라서 글을 다 쓴 후에도 한동안 업로드하지 못하고(그래봤자 3주정도지만) 서랍에 고이 보관해두었던 글이다. 기왕 써 놓은 글이니 읽고 힘을 얻을 수 있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업로드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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