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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Dec 09. 2020

아빠는 엄마의 손톱을 잘라준다

양극의 성격을 가졌던 두 사람은 점점 닮아가고 있었다.

"손톱 언제 잘라줄 거야? 너무 길어서 불편해"

"이따 저녁 먹고 잘라줄게"


어느 날부터인가 아빠가 엄마의 손톱을 잘라주기 시작했다. 이유를 묻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노안이 와서 지난번 손톱을 자르다 살을 집어 피가 났다며 그 후 아빠가 손톱을 잘라주기로 했노라고 말했다. 엄마에게 노안이라니. 영원히 젊고 씩씩할 것 같던 우리 엄마에게 '노안'이라는 단어가 붙는 것이 당황스러웠고, 비록 교정시력일지라도 아빠가 엄마보다 더 잘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엄마는 항상 시력이 좋았다. 노안이 오기 전까지는 양쪽 1.5의 시력을 유지할 정도로. 반면에 아빠는 엄마를 만났던 시절부터 안경을 쓰고 있었다고 했다. 처음엔 시력이 아주 많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보정하기 위해서 썼고 그 후로 시력이 차차 떨어져 안경이 필수품이 되었노라고. 이미 안경을 쓰고 있던 아빠라 안경을 바꿀 때마다 새로운 시력, 눈의 상태에 맞추어 새로 도수를 조절하고 다초점도 넣고 했을 테니 어느덧 엄마보다 아빠가 세상을 더 잘 보는 세상이 온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한 세월이 벌써 그렇게 되었다.


손톱을 자르기 위해 소파에 서로 마주 보고 앉아 머리를 맞대며 '조심해'라든지 '자꾸 그러면 안 잘라줄 거야'라며 투닥투닥 사이좋게 손톱을 자르는 엄마와 아빠를 보면, 내가 기억하는 시점부터의 부모님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면서 부부라는 게 저런 걸까, 그러니 두 분이 삼십 년을 함께 살 수 있었던 건가, 싶다.




젊은 시절 성격이 까탈스럽고 무뚝뚝했던 아빠와 달리 우리 엄마는 밝고 햇살 같은 사람이었다. 내 기억 속에서도, 가끔 들춰보는 과거사진 속에서도 젊은 시절의 엄마는 꽃같이 활짝 웃고 있고 우리 아빠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다. 심지어 우리 아빠는 결혼식 사진 속에서도 무표정했다.


아빠는 엄마와 있으면 항상 즐거웠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와 결혼이 하고 싶었다고. 동생이 줄줄이 딸린 집 장남이라 외할머니는 결혼을 반대하셨지만 모든 이야기에서 그렇듯 엄마는 사랑하는 남자를 선택했고, 그 선택의 결과 책으로 쓰면 대하소설 열 권쯤 나올 수 있는 시집살이와 모진 세월을 겪으며 그 좋던 시력도, 무한정하던 밝은 기운도 전 같지 않게 되었다. 에너지 보존 법칙이란 게 사람 사이에도 적용이 되는지, 우리 엄마가 그렇게 시력도 잃고 밝은 기운도 조금 잃는 동안 아빠는 엄마 곁에서 관심과 사랑을 쭉쭉 받아 전보다 밝고 다정한 사람이 되었다. 우리 부모님은 어느새 성격도, 시력도 사이좋게 나누어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되었냐면, 예전엔 아빠 기분을 맞춰주려 늘 애쓰던 엄마와 말수도 재미도 없던 아빠에서, 이제는 서글서글 웃으며 먼저 농담을 던지는 아빠와 거슬리는 게 있으면 과감히 한소리 하는 엄마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부부가 되었다. 시집살이에 허리 펼 일 없던 우리 엄마가 고생한 것에 반도 안되지만, 이제는 아빠가 먼저 한 달에 한 번은 외가댁에 가서 용돈도 챙겨드리고 명절이면 외할아버지 곁에서 술 동무 말동무를 해주신다. 엄마 생신엔 외할머니께 전화해 '이쁜 마누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몇 년 전엔가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모시고 가족끼리 해외여행도 다녀왔더랬다.


실은, 어릴 땐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어린 내 눈에도 보이는 시집살이와 시동생들의 만행, 까탈스러운 아빠까지, 왜 엄마는 모든 걸 참고받아주며 살고 있는지. 왜 엄마는 그렇게 그들에게 고분고분하고 큰 빚이라도 진 마냥 동동거리는지. 내가 더 화가 나는 날에는 왜 엄마는 그렇게 다 받아주냐고 되려 엄마에게 성을 냈더랬다. 그러면 엄마는 '안 그러면 너희 아빠가 너무 짠하잖아.' 하셨다. 그때는 짠하긴 뭐가 짠해, 했는데 이제 갓 서른 살이 되고, 일을 시작하고, 그리고 생각하니 아빠가 왜 젊은 시절 그리 까탈스러웠는지, 엄마는 왜 그런 아빠가 그렇게 짠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빠의 어깨에 놓인 짐이 너무나 많았고, 엄마는 그런 아빠의 곁에서 힘이 되어 주고 싶었으리라. 그래서 양극의 성격을 가진 두 사람이었지만 같은 목표를 가지고 살아오며 독한 것은 순화시키고 무른 것은 강화시키며 이 날까지 함께 하는 것일 것이다.


이제는 시력도, 성격도, 입맛까지도 아빠와 닮아진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다. 엄마는 아빠랑 처음부터 결혼하고 싶었어? 했는데 엄마는 아니, 그랬다. 외할머니 말씀대로 장남에, 마르고, 재미없는 사람과 누가 결혼을 하고 싶었겠느냐고. 엄마도 몰랐을 것이다. 까마득히 젊었던 스물두셋쯤 우연히 만난 아빠와 30년을 함께 살게 될 거라고는. 그 고생을 하면서도 참고 견디며 아빠 곁에 남아 서로 의지하며 오늘까지 살아올 줄은. 두 사람이 잘 맞기에 삼십 년을 함께 산 걸까, 삼십 년을 함께 살다 보니 잘 맞게 된 걸까, 내가 볼 때는 확실히 후자다.


아빠는 늘 '죽을 때 느이 엄마 무릎 베고 누워 죽을 거다'하신다. 엄마는 아빠와 함께 있어야 하니 우리들 중 아무도 뺏어가지 말라고. 뭐가 그렇게 할 이야기가 많은지 날마다 붙어있어도 또 날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하하 호호 웃는 엄마 아빠를 볼 때면 두 분이 서로를 만나 참 다행이다, 싶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내 인생에도 저런 사람이 생길까. 내가 과연 그런 존재를 찾는 행운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찾는 동안 그 대상을 '배우자'나 '사람'으로 단정 짓지 않기로 했다. 좋은 친구든, 가족이든, 반려동물이든. 내가 사랑하고 의지되는 무언가를 찾으면 되는 거라고. 꼭 예쁘거나, 똑똑하거나, 잘나지 않아도 내 마음 한 곳 쉴 곳이 되어줄 그 무언가를 찾아내면 나는, 내 부모님이 그래 왔듯 기쁜 마음으로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함께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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