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성격에 정답은 없다.
"나는 릴리가 좋아."
어릴 적에 오후 5시가 되면 꼭 티브이 앞에 앉아 만화를 봤었다. 만화 속 주인공들은 언제나 밝고, 활기차며 조금은 말괄량이이지만 정의로운 마음으로 가득 찬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 옆엔 언제나 조용한 성격의 친구가 있었다. 웨딩피치에서는 릴리가 그랬고, 천사소녀 네티에서는 이름도 기억이 안나는 수녀 지망생 친구, 빨간 머리 앤에서는 다이애나. 나는 만화를 볼 때면 항상 가장 가운데 서 있는 주인공보다는 그 옆에 서는 조용한 친구가 좋았다.
어린 마음에도 그 주조연에게 마음이 쓰였다. 만화 영화의 마지막 회에 가까워져서는, 정작 지구를 지킨 장본인은 되지 못해도 그 과정에서 의미 있는 희생을 하는 그런 주조연의 등장인물. 분명 비중이 있는데 이야기 속 완전한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게 조금은 안쓰러웠고, 종종 주인공을 더 눈에 띄게 하기 위해 이용되기도 하는 게 안타까웠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내 가는, 위기에 처할 땐 타고난 침착함으로 위기상황을 해결하고 친구가 힘들 때는 조곤조곤 조언도 해 주는 그런 괜찮은 비중의 주조연이 나는 왠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다들 웨딩 피치를 외칠 때 나는 우리 집 거실에 앉아 조용히 릴리를 응원했더랬다.
외향적인 성격이 정답인 줄 알았던 때가 있다. 내성적인 내 성격은 그들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만화 영화에서도 외향적인 성격의 주인공들이 매번 가장 가운데 서 있었던 것처럼, 외향적 성격이 우리 사회가 바라는 인간상이고 내성적인 성격은 한 발자국 옆에 떨어져서 그들을 위해 옆자리를 지키는 사람인 것만 같았다. 언제 어느 상황에 던져놓아도 금세 무리를 만들어 어울려 다니는 이들이 부러웠고, 가만히 있다 사귄 친구 한둘과 조용히 속닥거리는 나는 힘이 없게 느껴졌다. 그런 기분이 들 때면 내 자존감도 덩달아 같이 땅을 파고 들어갔다. 왜 나는 저렇게 하질 못할까, 하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당시의 우리나라 교육도 이런 내 마음에 한 짐을 더 얹었던 것 같다. 그때 당시 어린이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단어는 '활발한'이었다. 마치 활발하지 않으면 올바른 어린이가 아닌 것처럼 온갖 책에 보면 '활발한~'하고 인물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활발한 편이 아니었던 나는 대체 언제 나 같은 어린이가 주인공인 이야기가 교과서에 나올까 하고 기다렸던 것 같다. 하지만 이야기며 책에 나오는 내성적인 성격의 등장인물은 대부분 마음에 상처가 있거나 점점 '밝은' 성격으로 변해가는 게 주된 역할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나는 내 성격이 이상한 건가, 내성적인 건 안 좋은 건가, 하는 고민을 가지기 시작했다.
한때는 내 타고난 성격을 바꿔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조용히 앉아 시간을 보내길 좋아하던 내가 맞지 않게 큰소리로 떠들어도 보고, 친구 한두 명만 있으면 행복하던 내가 이 사람 저 사람 다양한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했다. 가끔은 내가 진짜 성격이 바뀌었나 착각이 들 정도로 나는 제법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흉내를 훌륭하게 해낸 적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외향적인 사람 흉내를 내고 보니, 내가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이 친구 저 친구 약속을 잡고 시간을 가지는 게 힘에 부쳤고, 사람들에 둘러싸여 하루를 보내고 나면 녹초가 되어 침대 위에 풀썩 쓰러져 꼼짝을 못 했다.
만화 영화를 챙겨보는 나이를 졸업하고 난 후 나는 조금은 더 성장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해리포터를 봤고, 그러고 나서는 반지의 제왕, 헝거게임도 보았다. 해리 포터, 프로도, 캣니스 모두 다소 내성적이지만 등장인물들 중 한가운데 서는 주인공들이었다. 반가웠다. 이젠 내성적인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세상이 온건가, 내성적인 성격도 리더가 될 수 있는 건가, 생각했다. 내 성격이 특이한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고, 사람들이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주인공들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이유 없이 뿌듯했다.
그런데, 조금 생각해보니 그게 뭐가 중요한가 싶어 졌다. 내석적인 성격의 주인공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갑자기 그 성격이 다른 성격들보다 월등해져서가 아니라 세상의 입맛에 맞는 주인공 상이 바뀐 것뿐이라는 사실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내성적인 주인공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한게 아니었다. 항상 그 자리에 있었으나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일뿐. 세상은 언제나 자신의 입맛에 맞게 주인공을 세우고, 또 시간이 좀 지나면 자신이 원하는 주인공을 바꿔놓는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선호하는 외모도, 선호하는 인재도, 선호하는 성격도. 그러니까 내 성격이 열등한 적이 없었으며, 외향적인 성격이 월등한 적도 없이, 다 그냥 같은 수평선 위의 성격들이었던 거다. 그냥 세상이 주목하는 성격이 그때그때 바뀐 것뿐.
사람의 성격에 정답은 없다. 내성적인 성격도 외향적인 성격도 서로 다를 뿐이지 정답은 아니다.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적 밖에서 보기에 화려해 보이고 세상의 입맛에 맞는 내가 되려고 애써봤으나, 오히려 나를 잃을 뻔했다. 남에게 맞추기 위해 나를 바꾼다는 것 자체가 생각해보면 참 의미 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결코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는 성격을 가질 수는 없다. 다만, 나 자신이 될 수는 있다.
내성적인 성격도 좋은 성격이다. 외향적이던 웨딩 피치, 내성적이던 릴리 모두 사랑받는 등장인물들이었고, 해리포터, 프로도, 캣니스는 모두 내성적이면서도 또 각자 다른 매력으로 사람을 끌었다. 내성적인 성격도 좋은 성격이라는 걸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더라면 내 학창 시절도, 내가 살아온 모든 순간도 조금씩 더 행복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본인들이 얼마나 멋진 성격을 가졌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내성적인 성격도, 주인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