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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Dec 08. 2020

힘들면 그냥 그만둬, 괜찮아.

그건 실은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나는 이 일이 안 맞는 거 같아.

해도 해도 늘지 않아."


벌써 근무한 지 2년이 가까워져 가는 내 동생이 말했다. 일은 해도 해도 늘지를 않아 자괴감이 들고, 새로 온 고참 간호사는 이유 없이 동생을 미워하며, 환자와 보호자에게 치이고 무시당하는 것도 지친다고 했다. 타지에서 혼자 자취를 하는 것도 외롭고, 이제는 가족 옆에서 지내며 다시 취직 준비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로 새 직장 찾기가 저만큼 더 어려워진 것을 아는 부모님은 금세 근심스러워하셨다. 힘들지 않은 직장이 어딨냐며 조금 더 버텨보는 건 어떻겠냐고. 내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힘들면 그냥 그만둬, 괜찮아.

그렇게 너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일할만큼 가치 있지 않아. 네가 제일 중요해."


실은 그건,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동생의 졸업식엘 갔었다. 간호대였기 때문에 졸업식 절차 중에 나이팅게일 선서가 있었다. 기억을 잘 떠올려보면 나 역시 졸업식에서 교육자로서 선서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날 동생은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의료인이 되겠다고 다짐했을 거고, 나도 학생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달랐다. 우리의 선량한 의도야 어떻게 되었든, 불합리한 대우를 당하기도 하고 부당한 일이 일어나기 부지기수였으며, 나와 가깝다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뒤통수를 맞기도 하고 나의 노력이 한 줌 재가 되어 날아가버린 적도 있었다.


학생일 적엔 미처 몰랐다. 교사면 그냥 학생들만 잘 가르치면 되고, 간호사면 환자들만 잘 돌보면 되는 줄 알았다. 직장생활 역시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 되고, 그러면 다 잘 흘러갈 줄 알았다. 그런데 부딪혀보니 사회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뭐가 이렇게 복잡한지, 삼단 결재처럼 단순한 절차로 이루어질 것 같았던 모든 일들이 한 겹만 벗겨내면 사실 온갖 이해관계로 어지럽게 얽혀있으며 그 안에 던져진 순진한 신입사원은 손쉬운 먹잇감이 되고 만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나의 교직 생활도 여느 신입 사원들과 마찬가지로 열정에 가득 차 시작했으나 발에 차이고 땅에 굴려졌다. 당장 다 그만두고 이곳들 떠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을 때도 많았지만 그러나 또 애써 좋은 면을 찾아가며 버티고 또 버텼다. 20대의 나는, 그런 부당함에 내가 적응해 사는 게 맞는 줄 알았다. 그래서 기존에 만들어진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용기보다는 불합리를 꾹 참고 '존버'정신으로 버텨보기를 택했었다. 그렇게 버틴 내게 돌아온것은 그저 내 마음에 깊이 패인 상처, 지금도 가끔 올라오는 아픈 기억들.


집에 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 힘들었다거나, 슬펐다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선생님들 다들 잘해주고, 아이들은 귀엽고, 학부모들은 협조적이며 나는 학교에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부모님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고, 이대로 밀려나면 남들은 다 잘 지내는데 나 혼자만 힘들어하는 사회적 부적응자로 낙인찍힐까 두려웠다. 사실은 모두 다 같은 상처를 안고 산다는걸 그땐 미처 몰랐다.


나는 그때 내가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내 동생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사랑하는 사람일 또 다른 많은 이들은 나처럼 꾹 눌러 참고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일 중요한 것이 내가 한 달에 한번 받는 월급이나 직장 내에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직장 안의 삶이 힘든 만큼 직장 밖의 세상이 두렵고, 또 어딜 가나 비슷할 거라고 합리화하고 싶을 수도 있으나, 아니, 힘들면 그만둬야 한다. 너를 희생시킬 만큼 가치 있는 곳이 아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당신에게 딱 맞는, 너란 인재를 소중히 여기고 함께 열심히 일 할 곳이 반드시 있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힘들면 그만둬, 괜찮아. 마음에 담겼던 괴로운 기억을 훌훌 털어내고나면 그곳보다 더 좋은, 너를 아껴줄 곳이 눈에 보이기 시작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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