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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Dec 17. 2020

나는 해녀가 되고 싶었다.

모든 조건을 다 제치고, 가장 하고싶었던 일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대학교에 가기 전까지 나를 따라다녔던 질문이다. 장래희망을 묻는 거야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에게 묻는 안부인사쯤이니까, 나도 늘 거기에 맞는 적당한 대답을 했다. 유치원을 다닐 때는 내가 아플 때 빨리 나으라고 매운 주사를 놔주던 간호사, 초등학생일 적에는 미술 시간이 재미있었기 때문에 화가, 중고등학교 때는 사관학교에 들어간 사촌오빠의 영향을 받아 군인이라고 대답했었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할 수 있는 게 정해져서 닫힌 문이 되고 말았지만.


그러나 내게 진짜 되고 싶었던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솔직히 해녀가 되고 싶었다.




7살에 유아스포츠단을 다니며 처음 제대로 된 수영 교육을 접했다. 부모님 말씀에 따르면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몸치에, 운동에는 영 소질이 없어서, 유치원 수업 공개날 다른 친구들이 퐁당퐁당 물에 들어가 쭉쭉 앞으로 나아갈 때 나 혼자 제자리에서 꼬르륵 거리며 맴돌기만 했댔다. 그래서 수영을 가르친 보람이 없었나, 싶었는데, 그 해 여름 동생과 물에 빠졌을 때 한 손으로는 동생을, 다른 한 손으로는 바위를 잡고 버티며 '발장구를 쳐!'라고 소리쳤던 기억이 있는 걸 보면, 어설프나마 나름 보람이 있었다.


물에 빠져 동생과 죽을 뻔 한 뒤에도 나는 물이 좋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우리 부모님은 여름이면 나와 여동생을 나란히 수영장에 등록시키고, 군것질을 하라며 오백 원씩 용돈도 쥐어주었다. 더운 여름날 동생과 수영장에 다닌 기억이 좋은 건지, 아니면 수영 후 사 먹는 아이스크림이나 컵라면 따위의 간식이 좋았던 건지는 몰라도, 나는 여전히 물이 좋았다.


그래서 해녀가 되고 싶었다. 푸른 바다에서 마음껏 물놀이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 물속에서 소라나 전복 따위를 찾아내는 것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찼다. 아무런 도구도 사용하지 않고 홀로 물속에 들어가 목표물을 찾고, 잡아 내는 해녀라는 직업이 얼마나 멋진 일이냔 말이다. 그때야 해녀라는 직업의 어려운 점이야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저 밖으로 보이는 그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나는 해녀가 되고 싶었다.


세상 물정을 알게 된 후로 해녀가 되겠다는 내 바람은 서서히 옅어졌다. 무엇보다 내 수영 실력은 그렇게 뛰어나질 않았고, 바닷가 시골 마을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도, 매일 변화무쌍할 날씨 사정도 걱정이 되었다. 어렸을 때야 매일 하는 물놀이가 좋아 보였지 어른이 된 후 매일 물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육체노동을 뜻한다는 사실도. 날마다 해녀로 산다는 것이 녹록지 않을 거라는 것까지 나의 '무난한 삶을 위한 논리'를 통해 이해하고나서야 나는 해녀가 되는 꿈을 접었다.


흔히 '하고 싶은 게 없다'라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삶의 복잡한 것들을 모두 빼고 단순히 생각하면,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쯤 좋아하는 일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게 수영이든, 악기 연주든, 글쓰기 든. 단지 현실이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게 두지 않을 뿐이다. 내가 몇 살까지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수입은 얼마나 될지, 어디서 살아야 할지, 직업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어떤지 등등을 따지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생각하는 멋진 직업에서 한 발 한 발 멀어지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천 발자국쯤 떨어져서 멀리 반짝거리는 내 꿈을 바라보고 있게 된다.


그러니까 이 글은 나 자신을 향한 잔잔히 고백이다. 실은 아무에게도 솔직히 말하지 못했지만 나도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노라고. 오랫동안 동경했고 꼭 하고 싶었지만, 또한 현실의 조건과 타인의 시선 속에서 꿈을 이루기는커녕 솔직하게 고백 한번 해보지 못한 꿈의 직업이 있었다고. 지금도 마음 한 편에 영원히 이루지 못할 꿈을 품고 열심히 살고 있다고.


나는 여전히 해녀를 동경한다. 해녀로 살고 있는 나를 떠올릴 때면 일렁이는 물결, 밀려드는 바다내음, 자유로운 기분 등이 뒤섞여 내 숨통을 트이게 해 주니까.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그런 것이 하나쯤 있길 바란다. 삶에 지친 당신에게도 마음속 한 편에 담아둔 기억이, 그토록 되고 싶었고 좋아했던 무언가가 바쁜 일상 속 행복한 한 떨기의 힘이 되어 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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