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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Dec 07. 2020

인간관계에도 수명이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수명이 다하고 나면 그 인간관계도 끝이 나는 거야

"ㅇㅇ 오빠 결혼식에 축의 얼마 할 거야?"

"음.. 글쎄, 십만 원?"


"그거 너무 적은 거 아니야?

너 그 오빠랑 모임도 하는데 더 많이 내야지. 한... 삼십만 원?"


대학생일 적에 정말 인간적으로 좋아했던 친구가 있다. 매사 성격이 둥글둥글해서 모두와 두루 잘 지내던 친구. 사람들 가리고 친구 수가 많지 않았던 나와도 가까워서 우리 엄마가 이름을 아는 몇 안 되는 친구 중에 하나였다. 친구와 나는 외모와 성격이 정 반대였지만, 또 신기하게 관심사와 환경은 딱 맞아떨어져서 대학교 다니는 내내,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주기적으로 종종 만났더랬다.


우리의 만남과는 별개로 나는 그 친구에 대한 애정도가 높았는데, 사람은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는 법이라고 나와는 다른 그 친구의 모습이 부럽고 좋아서 더 그렇게 우리의 관계에 애정을 쏟았던 것 같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을 해줘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라 항상 조금 손해 보듯 하고 만났고, 그게 좋았다.


언제부턴가였다. 친구에 대한 나의 애정이 식은 것일지 아니면 우리가 변한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부터 나는 친구가 우리의 만남에 있어서 계산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본인의 질문에 원하는 답이 아니면 '그런 말 이제 지겨워.'라고 말하거나 나를 통해 연락이 닿지 않는 다른 이들의 소식을 조각조각 모으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부터?


남들이 보기엔 참 속 좁은 생각이었을지 모르지만, 이 사소한 사건은 점점 이 친구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하나가 신경 쓰이기 시작하자 모든 게 눈에 거슬리게 되는 식이라고 할까. 그래, 기분 탓일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결혼을 앞둔 순간부터, 내가 다른 지인들에게 내는 축의금에 간섭하며 묘한 압박을 가한다고 느끼기에 이르렀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다소 회피형 인간이라, 여기에 대해 친구와 대화를 나눠야 할 순간을 회피하고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만남이 불편해져서 조금씩 줄이다가 자연스럽게 연락을 하지 않는 데 이르렀다. 물론 그 친구 결혼식에는 참석했고 친구와 가까웠을 적 계획한 대로 축의를 했다. 그러나 그것이 내 마음이 전과 같음을 의미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인간관계에도 수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태어나 자라고 또 죽듯, 누군가를 만나고 가까워지고 좋다가도 어느 순간 상황이 바뀌고 시간이 흐르면 점차 노쇠해지다가 그렇게 스러지는 것이 인간관계일 것이라고. 한때 수명이 다 한 관계를 잡아보겠다고 몸부림쳐본 적도 있으나, 결국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 없듯 그 관계의 수명이 다하는 것을 멈추지는 못했다.


이렇게 끝난 인간관계를 가끔은 추억하기도, 그리워하기도 했지만 과거에 매여사는 어리석은 짓일 뿐이었고, 어느덧 그 빈자리는 새로운 누군가가 나타나 채웠다. 이제 나는 제법 성숙해져서, 인간관계의 수명이 다해감을 느낄 때 마음이 아프다가도, 그래 이 마음을 의연하게 보내주자, 한다. 이 관계를 보내야 새 관계가 올 것이고, 놓아야 할 때 제대로 놓지 않으면 서로가 받을 상처만 더 깊어진 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렇게 멀어졌던 인간관계를 다시 시작할 때도 있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지난 인간관계가 남기고 간 내 마음속의 상처가 아물고, 서로에게 부족했던 서로가 충분히 성숙해져 다시 만났을 때, 새로운 인간관계가 태어나고 또 자라나는 것이다. 너무 이르게, 혹은 발전하지 못한 채 다시 만난 서로는 다시 상처만 남기고 왜 우리의 인간관계가 끝이 났었는지를 확인하게 될 뿐이었다.


잊히는 것도, 미움받는 것도 두렵지 않다. 나 또한 많은 이들에게 그래 왔으니 자연스러운 관계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인간관계가 끝이 날 때, 다툼과 고성으로 추한 마지막을 남기기보다는 어른다운 성숙한 끝맺음을 하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뿐이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아직 수명이 남은 인간관계를 나의 실수로 잃지 않길, 내가 힘들고 지쳤다는 이유로 한순간 가장 가까운 이에게 상처 주고 멀어지지 않길, 관계가 맺어진 동안은 함께 좋은 기억 많이 남기길.



내가 떠나보낸 그 친구를 다시 만난다면 또 웃고 인사하며 그동안의 근황을 묻겠으나, 서로에게 이전의 우정이 남아있지 않다는 걸 우리 둘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멀어졌으나 또 우리가 함께 한 행복했던 시간은 가슴에 남았기 때문에 나는 그저 내가 지나쳐온 모든 이들이 행복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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