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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Dec 11. 2020

시험기간 없고 월급 나오는 학생이 하고 싶다.

슬그머니 직장생활이 그리워졌다.

직장 생활을 할 때에는 선생님보다는 학생이 하고 싶었다. 후드티와 청바지 차림으로 백팩을 메고 휘적휘적 캠퍼스를 누비며 아직 만나보지도 못한 친구들과 수업을 들으러 가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열심히 과제를 하는 내 모습을 매일 상상했다. 직장 동료들보다는 친구들과 하루를 보내고, 사회생활보다는 학교생활이, 업무보다는 공부가 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하니 거의 6년을 이어온 교직생활이 더 무겁고 지치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 열심히 유학을 준비했고 가벼운 마음으로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완벽한 천국은 없었다. 내가 깜박 잊고 있었던 시험기간이라는 존재가 어느 날 비죽 얼굴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당시 내 학점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실은 그때 당시에 학점관리라는 개념이 아예 머릿속에도 없었고, 수능 이후 목표를 잃은 내가 긴 시간 동안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고 둥둥 떠다니던 시기라서 더 그랬다. 다만 한국인 특유의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타이틀 아래 시험기간이 되면 어김없이 내 몸뚱이를 책상 앞에 눌러놓았고, 받은 스트레스에 비해 영 효율성 없는 학점이었지만 어쨌든 중간은 하는 정석적인 나 같은 모습으로 살았다.


그때도 그랬다. 왜 공부만 하려고 하면 방 청소를 하고 싶은지, 시험 기간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이 그렇게 많아지는지. 왜 보고 싶던 영화는 개봉을 하고, 서점에 보이는 책들은 다 재밌어 보이며, 시험기간 직전에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게 되는지. 정작 나는 시험공부를 포기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러 갈 용기는 없으면서 보람 없이 또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아했다. 그때는 빨리 교대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고 싶었다. 매 학기마다 돌아오는 시험기간이 지긋지긋했고, 나도 어엿한 사회 일원이 되어 어른의 맛을 좀 느껴보고 싶었으니까. 이런 이십 대 초반의 내 모습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딘가 한 구석에 꼭꼭 숨어있다가 내가 공부를 시작하니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거다. '안녕! 시험기간이구나! 그런데 여기 재미있는 게 있어~'하면서.


오스트리아의 학기는 1월 말까지다. 하지만 많은 교수님들이 최종 과제며 기말 시험 일정을 크리스마스와 연말, 신년 연휴가 묶긴 긴 휴가 전에 잡으신다. 연휴 전에 모든 걸 끝내고 이후로는 편히 쉬라는 자애로운 마음에서 나온 계획이겠지만, 글쎄, 그 좋은 교수님들의 마음이 한데 모여서 내게 무시무시한 시험 일정을 만들어주었다. 지난 수요일에는 발표, 오늘은 중요한 시험 두 개, 주말엔 일요일까지 논문 3개를 읽고 개당 2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제출하고 월요일에는 읽은 논문들에 관해서 45분 분량의 발표, 화요일에는 시험 두 개에 프로젝트 제출, 수요일에는 독일어 시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까, 시험을 하나 마무리하고 다른 걸 해 볼 수 있는 시간표가 아니라 그냥 이거 했다 저거 했다 해가며 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 거다. 그리고 나는 이 시험기간이 닥치기 일주일 반 전에 브런치 작가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도 참 한결같은 사람이다. 왜 이렇게 시험기간에 맞춰서 새로운 걸 시도하는지. 아직도 한편에 쌓인 많은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은 마음과 시험기간이라는 현실이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싸운다. 이놈의 시험기간은 겪어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아서,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책상 앞에 강제로 눌러앉아 입을 비죽비죽 거리며 시험공부를 하는 척하다가 오분에 한 번씩 브런치를 뒤적거리고, 또 온갖 뉴스를 챙겨본다. 뉴스를 보니 시티센터에 대형 크리스마스트리와 조명을 설치했다는데, 보러 가고 싶다. 산책은 시도 때도 없이 나가고 싶고.


그래서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냐면, 시험기간 불만에 가득 찬 내 머릿속을 글로 쓰고 있다. 대학생 때보다 많이 용감해져서 이제 스트레스받으면 하고 싶은 걸 해 버린다. 엄청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실은 쓰고 싶었던 글이 있었는데 정작 그건 안 쓰고 시험기간의 횡포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이놈의 시험기간이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또 못하게 한다고. 시험이 없는 학교엘 다니고 싶다. 시험공부를 안 해도 학교만 열심히 나가면 학점이 하늘에서 똑, 하고 떨어지는 그런 학교.


그리고 갑자기 우리 반 애들도 이랬을까, 하는 이해를 하게 된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으니 내가 왜 열심히 다니던 학교에 휴직계를 내고 여기까지 왔나 싶다. 그래도 일하던 시기에는 평일 내내 열심히 시달리며 일하고 주말에는 지친 몸으로 아무 생각 없이 하루 종일 쿨쿨 잠만 자며 보낼 수 있었는데. 학생은 주말도 없다. 갑자기 내 마음속에서는 학생이 더 힘드네 직장인이 더 힘드네 하는 싸움이 시작된다. 아니 사실은 니가 부러워, 네가 부러워, 하며 직장인인 나와 학생인 나가 서로에 대한 부러움을 늘어놓는다. 둘 모두 사는 게 쉽지 않다고 말하는데, 서로는 서로를 부러워한다. 왜 둘 다 살기 힘든 세상인 걸까. 둘 다 행복한 세상일 수는 없나.


아무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시험기간 없고 월급이 나오는 학생인가 보다. 공부는 좋은데 시간에 쫓겨 강제로 해야 하는 상황은 싫고, 월급은 좋은데 사회생활은 버겁다.




아니, 내 의식의 흐름도 어찌 적어보니 한 편의 짧은 글이 되긴 한다.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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